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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22일 목요일

에이즈 바이러스의 기원


이 글은 Firefox 에서 가장 잘 보이며, Internet Explorer 에서 제대로 보이지 않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다른 브라우저에서는 어떤지 몰라요(......) [이 기회에 Firefox 다운받기]


어느 날, 블로그 유입로그를 보다가 어느 네이버 블로그 주소[1]가 찍혀 있길래 들어가 봤다. 근데 그 글에 에이즈 바이러스에 대한 기원이라며 내 글이 링크되어 있었다. 링크되는 거야 기분좋은 일이지만, 그래도 그 글은 에이즈 바이러스의 기원이라는 제목을 달기에는 내용이 너무 부족하지 않나 싶어 살짝 뻘쭘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 약간의 쪽팔림을 해소해야겠다는 생각과, 문득 스스로도 에이즈 바이러스의 기원이 궁금해져서 논문을 좀 뒤적거려 봤다. 다만 바이러스학이나 분류학 쪽을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으니 내용은 아마도 수박 겉핥기 식일 것 같고, 논문 내용을 파악한 대로 옮긴다고 옮겼는데 어쩌면 틀린 내용이 좀 있을지도 모르겠다. 혹시나 잘못된 정보를 유포하는 건 아닌지 조심스럽지만, 아무튼 시작해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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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의 분류

그림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아래 그림은 위키피디아[2]에서 가져온 그림인데, 아마도 Reeves와 Doms의 논문[3]에 실린 그림을 편집한 것 같다. HIV는 HIV-1과 HIV-2가 있고, HIV-1은 다시 그룹 M, N, O로 나누어지고(HIV-1/M, N, O), 그 중에 인간에서 가장 널리 유행하고 있는 형태는 HIV-1의 M 그룹에 속한 녀석들이다. HIV-2 역시 A형부터 G형까지로 구분되지만 A, B 형 외에는 극히 드물다.

HIV와, 관련된 바이러스들의 계통도


HIV의 발견

HIV-1

1980년대 초반, 뉴욕과 캘리포니아 지역의 남성 동성애자 집단에서 주폐포자충 폐렴(Pneumocystis carinii pneumonia)과 카포시 육종(Kaposi’s sarcoma)의 집단발생이 보고되었다. 주폐포자충 폐렴은 건강한 사람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으며 약물로 쉽게 치료가 가능하지만 이상하게도 어떤 치료도 잘 듣지 않았고, 카포시 육종은 노인들에게서 드물게 나타나는 양성종양이지만 젊은 이들에게 나타난 것은 훨씬 공격적인 형태였다. 이후 비슷한 증상에 대한 보고가 각지에서 있었고, 이런 증상들에 AIDS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1982년 여름부터였다[4],[5]. 이후 1983년에 그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가 분리되었고[6],[7], 이 바이러스가 현재의 HIV-1이다. 현재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된 HIV-1은 1959년 AIDS와 비슷한 증상으로 사망한 사람의 혈청에서 분리된 것이다[8].

 

HIV-2

사람에서 에이즈가 발견된 얼마 후, 미국 영장류 센터에서 사육되던 Asian rhesus macaque 원숭이들에서 소모성 질환과 심각한 감염 증상이 유행했던 사실이 알려졌고, 이는 원숭이 AIDS(simian AIDS)로 명명되었다. 이 동물에서 분리한 혈청은 HIV-1 항원과 교차반응을 보였으며, 분리된 원인 바이러스는 SIVmac로 명명되었다[9]. 이후, 세네갈의 성性노동자의 혈청을 검사한 결과 HIV-1보다 SIVmac에 더 잘 교차반응하는 것이 발견되어, HIV-1보다는 SIVmac에 더 가까운 바이러스에 노출되었음을 시사하였다[10]. 이어서, 기니비사우나 케이프 베르데에서 온 서아프리카 에이즈 환자들에서도 HIV-1 보다 SIVmac에 더 가까운 바이러스가 분리되었다[11]. 이 바이러스는 HIV-2로 명명되었다.


유인원에서 사람으로의 전파

HIV-1

HIV와 SIV의 유사성 때문에, HIV는 유인원으로부터 사람에게 전파되었을 것이라고 예상되고 있다. 여러 종류의 유인원에서 SIV가 발견되었지만, 그 중 침팬지(Pan troglodytes)에서 발견된 SIV(이하 SIVcpz)가 HIV-1과 가장 유사한 형태를 가졌기 때문에 HIV-1은 침팬지에서 전파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12]. 그러나 침팬지를 HIV-1의 근원으로 단정하기에는 침팬지의 SIV 감염률이 너무 낮다는 문제가 있었다[13]. 하지만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을 통해 침팬지에는 4개의 아종(Pan troglodytes verus, P.t. vellerosus, P.t. troglodytes, P.t. schweinfurthii)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지고, 또한 그 중 중서부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P.t. troglodytesP.t. schweinfurthii 에만 SIVcpz(이하 각각 SIVcpzPtt, SIVcpzPts)가 존재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낮은 감염률의 문제는 해결되었다[14]. 이후의 계통발생학적 연구 결과 HIV-1은 SIVcpzPts 보다 SIVcpzPtt 와 유전적으로 가깝다는 것이 확인되어 Pan troglodytes troglodytes 가 HIV-1의 근원이라는 설이 유력해졌다[15]. Keele 등은[16] 아프리카의 정글에서 유인원들의 배설물을 채취하여 해당 유인원이 어떤 종인지, 그리고 그 유인원이 어떤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지를 분석함으로써 이를 재확인하였다.

(좌) SIVcpzPtt와 SIVcpzPts, 그리고 HIV-1 사이의 유전적 거리를 나타내는 계통도. HIV는 SIVcpzPtt(색깔 입혀진 글자들)와 더 가깝다. Keele 등의 논문[17]에 수록된 그림을 일부 수정하였음.

(우) 4종의 침팬지 아종들의 서식지. Keele 등의 논문[18]에서 발췌.

 

계통분류학적으로 HIV-1의 각 그룹(M, N, O) 상호간의 유전적 거리가 다른 SIVcpzPtt 들과의 유전적 거리보다 멀다는 점에서, HIV-1이 인간에게 전파된 후 M, N, O 의 세 그룹으로 나누어진 것이 아니라, 각각이 침팬지로부터의 독립적인 전파의 결과, 즉 침팬지로부터 인간으로의 바이러스 전파가 최소 3회 이상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19]. 한편 HIV-1/O 의 경우, SIVcpzPtt 보다도 고릴라에서 발견된 SIV(이하 SIVgor)와 더 비슷한 형태를 갖는다. SIVgor과 O형 HIV-1이 모두 SIVcpzPtt로부터 유래한 것인지, 아니면 SIVcpzPtt 가 고릴라를 거쳐 사람에게 전파된 것인지는 불확실하다[20].


HIV-1/O 와 SIVgor 사이의 예상되는 관계. Takehisa 등의 논문[21]에서 발췌.

 

한편, 지금까지 발견된 HIV-1의 RNA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HIV-1이 처음 인간에게 전파된 시기는1920년대 초쯤으로 생각되고 있다[22],[23],[24]. P.t. troglodytes 서식지 부근의 식민지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 또한 비슷한 시기라는 점[25]을 고려해볼 때,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생각된다.

 

HIV-2

미국 영장류 센터에서 사육되던 Asian rhesus macaque 원숭이들이 원숭이 AIDS로 죽어간 적이 있었다[26]. 그러나 Asian rhesus macaque 원숭이들에서 SIV가 발견된 예가 없었기 때문에 다른 원숭이로부터의 감염이 의심되었고, 아프리카의 Sooty mangabey 원숭이에서 Asian rhesus macaque 원숭이들에서 발견된 것과 비슷한 형태의 바이러스(이하 SIVsm)가 발견되었다[27]. 1960년대에 미국 영장류 센터를 설립하면서 들여온 Sooty mangabey 원숭이가 Asian rhesus macaque 원숭이들에서 발생한 AIDS의 원인으로 생각되고 있다[28]. SIVsm 은 HIV-2와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있어 HIV-2 는 Sooty mangabey 원숭이로부터 전파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다[29].

 

HIV-1의 경우와 비슷하게, HIV-2의 A형과 B형도 각각 독립적으로 인간에게 전파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30]. Lemey 등은[31] 분자시계를 이용하여 HIV-2/A는 1940±16년, HIV-2B는 1945±14년에 인간에게 전파되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한편 HIV-2는 HIV-1(M형)에 비해 전염력이 훨씬 약함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의 기니비사우 지역에서는 HIV-2가 유행하고 있다. Lemey 등은 인구통계학적인 방법을 이용하여 HIV-2 감염이 해당 지역에서 급격히 확산되기 시작한 시점을 1955~1970년 사이로 추정하였다. 저자들은 이를 1963~1964년에 걸쳐 벌어졌던 독립전쟁(기니비사우는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과 연관지어, 전쟁으로 인해 바이러스의 전파에 적합한 환경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유럽에서 처음 보고된 HIV-2의 사례가 독립전쟁에 참여했던 포르투갈 군인들이었다는 점이 이 추측을 뒷받침한다[32].

 

유인원에서 사람으로의 전파경로[33]

(이 부분의 내용은 모두 국제 에이즈 자선단체 AVERT 사이트에 정리된 내용을 참고하였음)

그럼 침팬지나 원숭이 등 유인원에서 돌던 SIV가 어떻게 인간에게 넘어왔을까? 이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 국제 에이즈 자선단체인 AVERT 사이트에 정리되어 있는 내용을 참고해서 간단히 정리하면,

 

사냥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론이다. 침팬지를 사냥하고 잡아먹는 과정에서 침팬지의 피에 들어 있던 바이러스가 마침 사냥꾼이 가지고 있던 상처 같은 것을 통해서 전파되었다는 주장이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바이러스는 다른 종에 넘어가서는 잘 증식하지 못하고, 또 사람의 면역체계도 이종의 바이러스를 격퇴하겠지만, 개중 성공적으로 증식하는 돌연변이가 가끔씩 나타나게 마련이다. 실제로도 유인원만을 감염시킨다고 생각되었던 바이러스가 사람에서 발견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고 한다.

 

소아마비 백신

1950년대 후반에 아프리카 지역에 광범위하게 투여된 소아마비 백신이 SIVcpz에 오염되어 있었다는 주장이다. 백신을 만들기 위해 소아마비 바이러스를 증식시키는 데 침팬지의 신장 세포를 이용했는데, 그 침팬지가 SIVcpz에 감염되어 있었다는 거다. 다만 이후의 조사 결과, 그때 사용된 백신은 macaque 원숭이의 신장세포에서 만들어졌다는 것(macaque 원숭이에는 SIV가 없다)이 밝혀졌고, 해당 백신은 먹는 백신이었다는 점(SIV나 HIV는 혈류로 직접 전파되어야 한다) 등을 고려하면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오염된 주사바늘

사냥꾼 이론의 확장판이라고 봐도 되겠다. 1950년대 아프리카 지역에서 활동하던 의료진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주사기를 멸균 과정 없이 재사용하는 바람에 HIV가 광범위하게 전파됐다는 주장이다. 그 가운데 SIV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끼어 있었다면 그 SIV는 수많은 사람에게 전파되었을 것이고, 그 중 한 사람에서 오늘날 HIV의 기원이 되는 돌연변이가 탄생했을 수도 있겠지.

 

식민지 이론

이것도 역시 사냥꾼 이론에 기반한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이 유럽국가들의 식민지였다. 식민지 노예들의 생활 수준이야 뻔한 것, 가혹한 노동과 부족한 영양상태, 위생수준은 최악. 건강상태가 나빠진 사람들이 더러운 환경에서 모여 산다. 병원체가 전파되기에 최적의 조건이 형성되었을 거라는 주장이다. 거기에 노예들에 대한 예방접종 시 소독되지 않은 주사바늘이 사용되었을 거라는 주장과, 노예주들이 노예들을 위해(?) 매춘부들을 적극적으로 고용했다는 주장까지 고려한다면...

 

음모론

HIV가 누군가(미국 정부라던가 CIA)에 의해서 ‘제조’됐다는 주장. SIV와 HIV 사이의 유전적 연관성을 무시하고 있으며 대부분이 추측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말할 가치도 없다.

 

침팬지 SIV(SIVcpz)의 기원[34]

(이 부분의 내용은 모두 이 논문의 내용을 참고하였음)

그럼 좀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HIV의 기원이 된 바이러스, 침팬지의 SIV는 어디서 왔는지 더 거슬러 올라가보자. 많은 유인원들은 종마다 조금씩 다른 형태의 SIV, 즉 종 고유의 SIV를 갖는다고 한다. 그리고 유전적으로 좀더 가까운 유인원들끼리는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SIV끼리도 유전적으로 더 가깝다는 것이 밝혀짐에 따라, 현생 유인원 종들의 공통 선조가 SIV의 선조격인 바이러스에 감염된 후, 유인원들이 다양한 종으로 분화됨에 따라 SIV도 그 숙주와 함께 다양한 형태의 SIV로 진화했다는 추측을 하게 되었다. 물론 바이러스의 경우는 종간 전파도 일어나기 때문에 이런 바이러스의 계보를 추적하는 건 미토콘드리아 DNA를 이용하여 그 숙주인 유인원들의 종분화를 추적하는 것보다 더 복잡하다.


다만 침팬지의 경우에는 좀 이상한 문제가 있었다. 앞에 나왔던 침팬지의 4개 아종들(P.t. verus, P.t. vellerosus, P.t. troglodytes, P.t. schweinfurthii) 중 P.t. verusP.t. vellerosus 에서는 SIVcpz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거대영장류 중 하나인 보노보의 경우도 SIV가 발견되지 않았다(2005년에 나온 이 논문에서는 고릴라에서도 SIV가 발견된 바 없다고 하고 있으나, 2009년에 나온 다른 논문에서 고릴라에게도 SIV가 존재한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고릴라는 초식성이고 다른 원숭이를 사냥하지 않기 때문에 그 전파경로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저자들은 침이나 배설물 등을 통해 전파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다만, 지금까지 SIV가 발견되지 않은 유인원들도 조사 표본 숫자가 늘어나면 SIV가 발견될 수도 있겠다. 그러면 지금까지의 해석을 수정해야겠지). 침팬지의 경우, P.t. verus, P.t. vellerosus 아종들이 분리된 이후, 그리고 P.t. troglodytes, P.t. schweinfurthii 아종들이 분리되기 전 SIV에 감염된 것으로 보이며, 이는 약 150만년 전쯤으로 추측되고 있다.


침팬지의 SIV는 Cercocebus torquatus 원숭이와 Cercopithecus nictitans 원숭이에서 발견된 SIV를 섞어 놓은 형태를 가지고 있어서, 침팬지가 이들 원숭이를 잡아먹는 과정에서 원숭이가 가지고 있던 SIV에 감염된 것으로 생각된다(침팬지는 원숭이를 잡아먹기도 한다고 한다).

SIVrcm은 Cercocebus torquatus 원숭이, SIVgsn은 Cercopithecus nictitans 원숭이에서 발견된 SIV다. SIVcpz의 유전체는 앞부분은 SIVrcm, 뒷부분은 SIVgsn과 비슷한 형태라고 한다. 침팬지가 이들 원숭이를 사냥하면서 각각의 바이러스에 노출되었고, 이 바이러스들이 침팬지의 몸 속에서 재조합된 것이라는 해석이다.

 

SIV의 기원

아예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사실은 이게 이 글을 쓰게 된 진짜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저 기사를 보지 않았다면 문제의 글을 쓰지도 않았을 테고, 그럼 이 글을 쓰게 될 이유도 없었을 테니까.

 

“에이즈 바이러스 뿌리, 고대 호랑이”

“호랑이가 원숭이 물어서 전파” (코메디닷컴 2009.12.7)

 

저 기사는 Bambara 연구진의 최신 논문[35]을 소개하면서 원숭이와 호랑이에 대해 썰을 풀고 있지만, 사실 호랑이와 원숭이 얘기는 저 논문의 주된 내용이 아닐 뿐더러, SIV가 고양이과 동물로부터 기원했을 거라는 가설은 그 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현재 고양이과 동물들을 감염시키는 FIV(Feline Immunodeficiency Virus)가 SIV의 선조인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HIV와 비슷한 바이러스는 양, 염소, 말, 소 등의 다른 포유류들에서도 발견되지만, 그 중 고양이에서 발견되는 바이러스가 SIV와 HIV에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Gifford 등[36]이 논문에서 제시한 렌티바이러스의 계통도를 보면 사람의 HIV는 다른 영장류들의 SIV와 한 가지로 묶이고, 이어서 고양이과 동물들의 FIV와 한 가지로 묶인다. 즉, 기사의 내용처럼 고양이과 동물이 원숭이 조상을 물어서 바이러스를 전파했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Gifford 등은 계통도의 중간 부분에 있는 pSIVgml 에 주목했다. pSIVgml은 마다가스카 섬에 사는 회색쥐여우원숭이(grey mouse lemur)의 게놈에서 발견된 렌티바이러스의 유전자 서열이다. 계통도에서 보다시피 pSIVgml은 다른 모든 SIV, HIV와 가장 먼저 갈라지는데, Gifford 등은 이것을 바탕으로 고양이과 동물로부터 영장류에 SIV가 전파된 시점을 추정하여 세 가지 가설을 제시했다. 첫번째는, 본토 유인원들과의 공통선조로부터 SIV를 물려받았다는 가설이다. 이 경우 전파 시점은 최소한 직비원아목(haplorrhine) 원숭이와 곡비원아목(strepsirrhine) 원숭이가 갈라지는 시점인 대략 8천 5백만년 전쯤이 된다. 둘째로, SIV에 감염된 원숭이가 마다가스카 섬에 들어가 본토와 다른 형태의 SIV를 진화시켰다는 가설이다. 이 경우 전파 시점은 최소한 마다가스카 섬에 포유류가 마지막으로 이주한 시점인 약1천 4백만년 전쯤이 된다. 세번째 가설은, 마다가스카와 아프리카 본토를 날아서 왕복할 수 있는 제 3의 생물에 의해 바이러스가 전파되었을 거라는 가설인데, 여러 가지 이유로 저자들도 이 가설에는 별로 비중을 두지 않고 있다[37]. 


한편, Goudsmit는 그의 저서[38]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책 전문을 다 볼 수는 없었지만, Google 도서를 통해 페이지를 건너뛰며 띄엄띄엄 읽은 내용을 정리해 보면, 고양이과 동물의 FIV는 얼룩말(당연히 얼룩말의 오랜선조겠지만)로부터 전파되었을 거라는 얘기다. 사자(의 조상)가 얼룩말(의 조상)을 사냥하는 과정에서, 격렬하게 저항하는 사냥감에게 어쩌다가 물린 모양인데, 그 와중에 얼룩말이 가지고 있던 바이러스가 사자에게 넘어갔을 거라는 추측이다. 그리고 얼룩말이 가지고 있던 바이러스는 아마도 벌레한테 물려서 전파되었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고.


이 추측을 조금만 확장시켜 보면, 그러니까 벌레에 물려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동물이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자에게 잡아먹혀야 된다면, 그 문제의 동물이 벌레에 물려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시점은 적어도 포유류에서 식육목(carnivora)이 분리된 이후일 거다. 그러니까 대략 4천 2백만년 전보다 늦은 시점이다[39]. 그리고 앞에서 말한 Gifford 등에 따르면 유인원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시점, 그러니까 고양이과 동물에게 물린 시점은 최소한 1천 4백만년전보다 앞서야 하니까, 결국 FIV-SIV-HIV의 선조가 된 바이러스가 벌레에서 동물로 넘어온 건 대략 4천 2백만년 전~1천 4백만년 전 사이의 어느 시점이라는 이야기.

포유류의 계통도. 토끼(lagomorpha)와 고양이(carnivore)가 분리된 이후에 소(artiodactyla)와 말(perissodactyla)가 분리된다(그림 출처는 http://tolweb.org/Eutheria/15997 참고문헌을 마지막까지 예쁘게 편집하고 싶었지만 실수로 빼먹었음. 뒷수습이 귀찮아서 더 이상은 무리!).

 

그래서, 간단하게 결론을 내 보자.


1. 얼룩말 비스무리한 동물이 벌레에 물려서 바이러스에 감염됨.

2. 사자 비스무리한 동물이 그 동물을 사냥하다가 바이러스에 감염됨.

3. 지나가던 원숭이 비스무리한 동물이 사자에 물려서 바이러스에 감염됨.

-> 위 세 단계가 약 4천 2백만년 전~1천 4백만년 전 사이에 발생

4. 침팬지가 다른 원숭이를 잡아먹다가 바이러스에 감염됨. 약 150만년 전.

5. 사람이 아프리카에서 침팬지를 사냥하다가 바이러스에 감염됨. 20세기 초.


...약간의 추측과 상상이 가미됐고, 더 궁금한 게 많지만 여기서 끝.



[1] “오뎅제왕의 EXILE 여정 :: 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ohryan77/60099817639.

[2] “HIV -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http://en.wikipedia.org/wiki/HIV.

[4] “History of AIDS up to 1986,” http://www.avert.org/aids-history-86.htm.

[5] “Pneumocystis pneumonia -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http://en.wikipedia.org/wiki/Pneumocystis_pneumonia#Treatment.

[10] Ibid.

[15] Ibid.

[17] Ibid.

[18] Ibid.

[21] Ibid.

[25] “The Origin of HIV and the First Cases of AIDS,” http://www.avert.org/origin-aids-hiv.htm.

[27] V M Hirsch et al., “An African primate lentivirus (SIVsm) closely related to HIV-2,” Nature 339, no. 6223 (June 1, 1989): 389-392.

[32] Ibid.

[37] Ibid.

[39] “Carnivora -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http://en.wikipedia.org/wiki/Carnivora#Phyloge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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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아쉬워서 써보는 후기>


읽다 보면 궁금한 게 계속 생기지만, 더 이상 손대다가는 바이러스의 진화와 바이러스 유전자가 숙주 DNA에 섞이는 과정과, 포유류의 계통수를 그리는 단계까지 올라가게 될 것 같아 GG. 더 파고들어가는 것도 퍽이나 재미있겠지만, 이걸 붙잡고 있는 사이에 일요일이 네 번 지나갔다(물론 일요일에만 작업했다). 처음엔 재밌었는데 이제 진짜 더 이상 못해먹겠다.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닌데, 이게 계속 신경쓰여서 지금 붙잡고 있(다고 생각만 하고 있)는 다른 주제들에 대해서는 신경도 못 썼다. 그러니까 진짜 끝. 포기. 혹시 누가 물어봐도 이제 몰라. 정말이지 이거 할 시간에 전공 공부를 더 했으면...orz


*이렇게 레퍼런스를 달아놓고 보니까 무지 많아 보인다. 같은 논문을 연달아 인용해도 zotero가 하나로 묶어주질 않고 Ibid. 로 계속 새 번호를 달아주는 바람에 실제 펴본(읽어본 게 아니라) 논문 숫자보다 거의 두배로 뻥튀기가 됐다. 그래도 이 정도로 정리된 게 어디야... zotero 만세다!


*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영어 사용은 최대한 자제하려고 했는데, 생전 처음 들어보는 각종 원숭이, 침팬지들의 한글이름이 제대로 달려 있지 않아서 도저히 어쩔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이탤릭체 학명을 그대로 사용했더니 똑같은 말이라도 뭔가 훨씬 더 어려워 보이는 효과가...orz


* 이 글을 쓰게 되면서 알게 된 괜찮은 곳들

- AIDS & HIV information from the AIDS charity AVERT

국제 에이즈 자선단체인 AVERT라는 단체의 웹사이트. AIDS에 관련된 각종 정보들이 잘 정리돼 있다. 이 글에 큰 도움이 된 좋은 자료들을 많이 얻을 수 있었고. 여기를 발견 못했으면 작업시간이 더 늘어나면서 중간에 포기했을지도.


- Tree of Life Web Project

웹상에서 생명의 나무를 구현하려는 프로젝트인 듯. 방대한 참고자료와 함께 생명의 계통수가 잘 정리돼 있다. 마우스 클릭으로 생명의 나무 줄기를 따라가볼 수 있다는 게 재미라면 재미.

2010년 1월 29일 금요일

의대와 치대가 분리된 이유?

돌아다니다 어느 사이트에서 저런 질문을 봤다.
예전 어느 수업시간엔가 지나가는 얘기로 저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이제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문득 궁금해진 김에 이번 기회에 확실히 해 두고 싶어서 검색을 해 봤다.

그랬더니 이런 게 나오는데,

http://www.histden.org/journal.htm

...미국 치의학사학회(?) 라는 곳에서 내는 치의학사 저널이란 게 있나 보다. 살짝 놀랐지만, 역사는 중요한 거니까. 아무튼 그 덕분에 예상 이상의 소득이 있었다. 재밌는 내용이 많을지도 :D

그래서,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와서, 치과대학은 왜 의과대학과 분리되어 있는 것인가에 대한 답은 여기에,

http://www.histden.org/journal/jhd_v51_2003_secured.pdf[footnote]이 자료에서 인용하고 있는 책들을 찾아보면 더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학교 도서관에도 없는 것 같고, 더 이상 파고들 열의도 없고 여유도 없으니 이쯤에서 패스.[/footnote]

PDF 파일의 45~49 쪽을 보면, (미국) 최초의 치과대학의 설립과정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18세기 초에야 비로소 치의학 교육이 어느 정도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면서 치과진료가 '아무나 하는 것'에서 '교육받은 전문가'의 손으로 넘어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9세기 초에는 (당시의)치과의사들의 단체와 학술지가 만들어졌고.

초기 치과의사의 한 사람인 Horace H. Hayden 은 체계적인 치의학 교육과정이 필요함을 깨닫고, 의과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치의학을 강의하는 등, 의과대학의 교육과정에 치의학을 포함시키려 노력하지만 결과는 실패. 해당 자료에 실린 Henry Willis Baxley 의 편지 내용으로 볼 때, 그 이유는 '기술적인 성격이 강하고 학문으로서의 체계가 부족하다...'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Some years before that time (i.e. the summer of 1839), Dr. H. H. Hayden, also of Baltimorem had delivered to a few medical students of the University of Maryland some lectures on Dental Physiology and Pathology. I was one of his class, and found the lectures very speculative and unsatisfactory. Certain it is, that those engaged in tooth pulling, filming, and filling, which then seemed the sole basis of the craft, took no interest in Dr. Hayden's attempt to enlighten them. Nevertheless, he is entitled to an effort, however unsuccessful, to give dentistry better claims to public confidence.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건, 치과치료가 이발사나 약장수들의 손에서 행해지던 시절에도 의학은 벌써 대학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거다. 확실히 의학과 치의학의 발달 과정은 역사적으로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그래서 현재의 모습과 관계없이 사람들이 의학과 치의학에 대해 갖는 인식의 차이는 이런 역사적 차이에서 어느 정도 기인하는 게 아닐까 싶다.

아무튼, 그 결과, 의과대학의 교육과정에 치의학을 포함시키는 것을 거절당한 치과의사들은 독자적으로 치과대학 설립을 추진하고, 그 결과 1840년 2월, 최초의 치과대학인 Baltimore College of Dental Surgery 가 만들어진다. 이 학교는 현재까지도 운영되고 있는데, 이 학교의 홈페이지에도 그에 대해 간단히 언급되어 있다.

그때는 그랬다 치고, 그럼 지금은 어떨까? 의학도 물론 엄청나게 발전했지만, 현재의 치의학도 그 때랑 비교하면 이젠 곤란하다. 현재는 (아마도)전 세계에서 의과대학과 치과대학이 분리되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적어도 이제는 의학 교육 과정에 치의학이 포함되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학문체계의 통일성이라던가, 의료인 상호간의 의사소통 문제 등을 고려한다면 말이지... 근데 19세기 초 이후 치의학이 의학과 별개의 길을 걸어오는 동안 만들어진 체계와 방대한 양의 지식을 생각해 보면, 안 그래도 많은 의대생들의 짐에 그것까지 얹어주는 건 인간적으로 할 짓이 못 되는 것 같다. 뭐, 혹시나 정말로 합치는 쪽이 더 낫다고 하더라도, 경로의존성이란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아마 가까운 시일 내에 가능할 리는 없겠지.

의학을 'Art & Science' 라고 하기도 한다. 의학적 지식은 과학을 근거로 하지만, 그 지식이 의사의 손을 거쳐 환자에 적용되는 과정은 예술과 같다는 얘기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흔히 '치과의사 = dentist = 기술자' 라고들 생각하지만, 그런 단순노동 같고 그저 손기술일 뿐인 것 같은 치과치료행위도 이제는 수많은 과학적 지식에 근거해서 이루어진다. 오죽하면 유명한 치과 교과서 중 하나의 제목은 아예 'Art & Science' 일까.

애초의 질문에서 벗어난 잡담이 길어졌는데, 이왕 길어진 김에 몇 마디 더 해 보자면, 그러니까 의료행위란 건 과학적 지식에 근거해야 한다는 거다. 과학적 근거가 없으면 손기술이 아무리 용하고 신통해도 그건 의료행위가 아니라 그냥 무당짓이다. 요설로 사람들을 홀려서 사람들의 건강에 쓸데없이 해를 끼치고 쓸데없는 의료비 지출을 야기하는 사람들에 대한 해결책이 시급하다. 꼭 누구라고는 말 않겠다...




2010년 1월 26일 화요일

Iron lung


그제 들었던 어떤 강연에서 나왔던 사진이다. 처음엔 무슨 영화 장면인 줄 알았는데, 실제상황이었다고 한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저건 1953년의 사진. 사진 속에 쭉 늘어선 원통형의 기계가 바로 제목에 적은 iron lung 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저건 호흡을 대신해주는 기계다. 환자를 기계 안에 눕히고 머리랑 목만 내놓게 한 다음, 기계를 밀폐하고 작동시키면 기계 내부의 압력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호흡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거다. 기계 내부의 압력이 빠지면 가슴이 팽창해서 공기가 환자의 폐 속으로 들어가고, 기계 내부의 압력이 올라가면 환자 폐 속으로 들어갔던 공기가 빠져나오는 식의 원리다.

저 기계는 1928년에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지금이야 뭐 기관내삽관을 통해서 저런 거대한 장비 없이 간단하게(물론 기관내삽관은 훈련받은 의사만 할 수 있지만) 호흡을 시킬 수 있지만 그 시절엔 그런 게 없었으니까.

아무튼, 그래서 저 기계는 기관내삽관법이 개발되기 전까지 유용하게 사용되었고, 특히, 1900년대 중반 소아마비로 인해 전신이 마비ㅡ호흡근을 포함해서ㅡ된 환자들에게 널리 사용됐다고 한다. 기관내삽관법이 개발되어 Iron lung의 사용을 대체해 갔지만 기관내삽관이 불가능한 환자의 경우에는 계속 사용되었다고 하고. 그래서 당시 소아마비로 저 기계에 들어가서 최근까지도 살아계셨던 분들의 이야기들이 있다[footnote]http://www.smh.com.au/national/dead-after-60-years-in-iron-lung-20091101-hqyy.html?autostart=1[/footnote][footnote]http://www.nytimes.com/2009/05/10/us/10mason.html?_r=2&scp=1&sq=iron%20lung&st=cse[/footnote].

저 기계 안에서 무려 60년간 계셨던 분도 있다. 소아마비 백신이 50년대 초에 개발됐으니 저 기계에 의존하는 분들이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당연히 60년 가까이 저 기계 신세를 진 걸로 계산되기는 하지만, 아무튼 나로서는 저렇게 누워 있는 기분이 어떨지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거기다 60년이라니. 그래도 저 기사들에 나온 분들은 그런 상황에서도 뭔가 열정을 쏟을 일들을 찾으셨으니 존경스럽달 밖에.

지금이야 소아마비 예방접종은 필수로 맞게 되어 있고[footnote]http://niptmp.cdc.go.kr/nip/schedule/ptninjschedule.asp[/footnote], 예방접종 덕에 소아마비는 박멸되었다고 선언된 상태[footnote]http://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health_detail&sm=tab_txc&ie=utf8&query=%EC%86%8C%EC%95%84%EB%A7%88%EB%B9%84[/footnote]니 저런 걱정은 거의 안 해도 되겠다. 의학이 그 정도 수준으로 발전한 것도 따지고 보면 인류의 역사에서 극히 최근의 일이고 보면, 현재의 인류는 그 수많은 생명의 위협을 견뎌내며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대한 존재 아닐까. 의학을 발전시킨 인류만이 아니더라도,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며 번식하고 있는 종이라면 무엇이든 다 위대하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p.s. 강의 내내 딴짓하다가 우연히 본 사진이 기억에 남아 적어 봤는데, 어쩌다가 얘기가 여기까지 샜지?


2009년 12월 9일 수요일

에이즈 바이러스의 뿌리?

“에이즈 바이러스 뿌리, 고대 호랑이”
“호랑이가 원숭이 물어서 전파” (코메디닷컴 2009.12.7)


제목이 나름 자극적이었다. 유전자 진화에 대한 연구는 언제나 흥미롭다.
(그걸 내가 얼마나 이해하느냐는 일단 논외로 하고-_-;; )

아무튼, 무려 호랑이[footnote]정확히는 현재 호랑이의 조상이 된 호랑이와 비슷하게 생긴 어떤 동물이겠지만.[/footnote]에게 물리고서도 어떻게 살아남아서 동족에게 새로운 바이러스를 전파한 고대 원숭이[footnote]그 고대 원숭이가 어떻게 됐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호랑이에게 물려서 그 자리에서 잡아먹혔다면 바이러스가 원숭이 집단에 퍼질 수 없었을 테니, 어떻게든 살아서 도망쳤다고 봐야겠지.[/footnote]에게 경의를(...) 표해야 할까. 호랑이에게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은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구나[footnote]다만 이상한 바이러스가 묻어 올 수는 있겠다 -ㅅ-[/footnote].

다만, 그렇게 원숭이에게 넘어온 바이러스가 원숭이들 안에서 돌다가 결국 사람에게 넘어와 모두가 후덜덜하는 HIV가 되었다는 걸 생각하면 마냥 신기해할 일만은 아닌 듯. 여담이지만 항간에 돌던 원숭이-사람 성접촉 기원설은 틀렸다는 게 요즘 대세인 것 같다. 다른 설명을 어디선가 봤는데 까먹었다-_-a

그건 그렇고, 기사에서 말하고 있는 연구팀의 논문은 이건데,
A sequence similar to tRNA3Lys gene is embedded in HIV-1 U3–R and promotes minus-strand transfer
Dorota Piekna-Przybylska, Laura DiChiacchio, David H Mathews & Robert A Bambara


나도 virology 를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 이 논문을 다 이해하지는 못한다[footnote]근데, 레트로바이러스의 기원이 retrotransposon일 거라는 내용은 흥미로웠다. 진핵생물의 일부였다가 뛰쳐나간 존재들이 이제는 원래 한몸이었던 진핵생물들을 위협하고 있다는 거잖아 :D[/footnote](그래서 바이러스 하는 사람들은 멋있어 보인다-_-;; 솔직히 반도 이해 못 한 것 같다 orz). 다만, 적어도 저 논문의 주된 내용이 '에이즈 바이러스의 조상이 호랑이에서 건너왔다' 는 건 아닌 것 같다. 에이즈 바이러스 유전체에 있는 특정 염기서열의 기원을 따지면서 호랑이 원숭이 얘기를 하고 있긴 하지만 적어도 호랑이 원숭이 얘기가 이 논문의 요지는 아니다. 아마도 미디어에서 소개하면서 흥미 유발을 위해 지엽적인 부분을 부풀린 것 같다. 하긴 그렇게 안 했으면 내가 이 기사를 클릭했을 리도 없고, 논문을 찾아볼 일도 없었겠지.

근데,
밤바라 교수는 “이 연구는 에이즈 바이러스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이해를 도와 에이즈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외에도 신종플루처럼 인간과 동물 사이에 감염되는 질병에 대한 이해도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다”고 기대했다.
(코메디닷컴 기사 중)
...아무리 그래도 HIV의 조상을 밝힌 걸로 에이즈 치료에 도움이 될 거라니, 이건 좀 이상하잖아. 에이 설마 하면서 이 연구가 소개됐다는 미국 웹진을 찾아봤다.

AIDS May Date Back to Ancient Tiger
Researchers find signs of feline DNA in virus


내용을 옮겨 가며 해석하는 건 귀찮고, 확실히 밤바라 교수가 저런 식으로 말한 건 맞다. 다만 다른 학자들은 이 연구 결과로 에이즈 치료에 있어서 뭔가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성과를 기대하는 건 무리라고 분명히 덧붙이고 있다. 확실히 멋있고 훌륭한 연구인 건 맞는데, 나 보기에도 임상적인 의미는 솔직히 별로 없어 보인다. 물론 절대 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솔직히 정신적 사치일지도 모르겠지만, 신약 개발이나 새로운 치료법 개발 같이 뭔가 와닿고 뭔가 도움되는 게 있는 것보다 이런 어찌 보면 뜬구름 잡는 것 같은 기초연구 보고 있는 게 더 재밌다(......)

근데, 아무리 상대는 힘센 호랑이고 이쪽은 연약한(...) 인간이지만, 이쪽만 괜히 바이러스 하나 받고 끝나는 건 억울하잖아. 호랑이들한테 받은 게 있으면 이쪽도 뭔가 주는 게 있어야지. 그래서,

Who ate whom? Adaptive Helicobacter genomic changes that accompanied a host jump from early humans to large felines.
Eppinger M, Baar C, Linz B, Raddatz G, Lanz C, Keller H, Morelli G, Gressmann H, Achtman M, Schuster SC.
PLoS Genet. 2006 Jul;2(7):e120. Epub 2006 Jun 15.
[footnote]사실 이 논문을 예전에 보고 재밌어서 나중에 간단하게 글이라도 써볼까 했는데 역시 게으름이 문제. 일단 이번엔 간단히 소개만.[/footnote]

...인류의 선조도 호랑이 조상에게 선물을 줬으니, 바로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footnote]일단 글은 이런 식으로 쓰고 있지만, 에이즈 바이러스의 조상이 원숭이에게 넘어온 것과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가 원시 인류에서 호랑이 쪽으로 넘어간 것 중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확실치 않다. 자료 찾아보기 귀찮다(......)[/footnote]

"아주 고약한 세균이죠"


그 어느 옛날, 호랑이 조상이 인간 조상을 잡아먹었는데, 인간 조상의 위 속에 살던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이 같이 넘어가 현재 고양이과 동물들의 위 속에 살고 있는 Helicobacter acinonychis 균의 조상이 되었다는 훈훈한 이야기(......)

...그래도, 아무리 하나씩 주고 받았다지만 에이즈 받고 위장질환 준 건 웬지 손해본 느낌(......)






2009년 11월 17일 화요일

우크라이나 변종플루?

동유럽 신종플루보다 무서운 변종 확산 중
(코메디닷컴, 입력일F 2009.11.17 15:03ㅣ수정일 2009.11.17 15:03 )

낮에 이런 기사가 떴었다. 근데 더 치명적이고 강력하다 어떻다 하는 것보다 신기했던 건,
"감기 바이러스와 캘리포니아 플루가 합쳐진 변종"

캘리포니아 플루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플루라니까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겠지. 근데 감기 바이러스라면 아마도 리노바이러스나 코로나바이러스일 텐데, 그러면 저런 식으로 다른 종류의 바이러스끼리 짬뽕되는 것도 가능하단 얘긴가? 바이러스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아무튼 사실이라면 흠좀무... 라고 생각하고는 잊어버렸다. 일단 우크라이나는 너무 멀고(사실 신종플루의 전파속도를 떠올려보면 절대 먼 게 아니지만), 그보다도 일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에...-_-;;

그러고 나서, 집에 와서 보니 이번엔 이런 기사가 올라와 있었다.


동유럽, 新신종플루 출현 확산중
(코메디닷컴, 입력일F 2009.11.17 15:15ㅣ수정일 2009.11.17 22:37)


"해당 바이러스는 캘리포니아 독감 바이러스와 또 다른 두 종류의 계절독감 바이러스 등 총 세 가지 바이러스가 조합돼 변이된 형태"

응, 캘리포니아 독감이랑 두 종류의 계절독감이니까 어쨌든 셋 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란 말이지. 이제 좀 그럴 듯하네. 어쩐지 좀 이상하다 했지. 서로 다른 바이러스들끼리 짬뽕된다는 건 모르긴몰라도 좀 이상하잖아? (물론 나에게 그 사실여부를 판단할 능력 따위 없지만 orz)

바이러스학은 쥐뿔도 모르지만 어디 논문이라도 좀 찾아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오늘은 바쁘니까 무리. 그러고 열심히(!) 일하다(물론 주말에 팽팽 놀아버린 죄지만 orz) 문득 보니,


“슈퍼 변종플루 출현 아니다”
(코메디닷컴, 입력일T 2009.11.17 22:40ㅣ수정일 2009.11.17 22:40)


"신종플루 바이러스일 뿐이라고"

...이거 뭥미?

밀려오는 허무함에 잠시 넋놓고 있다가, 문득
"당초 영국 일간지 데일리 익스프레스 등 일부 외신은"

부분이 눈에 띄어 검색해봤더니, 네이버 백과사전의 설명 중 다음 부분이 눈에 띄었다.
선정적인 뉴스와 외신()의 심층보도로 유명한데...

선정적인 뉴스로 유명... 설마 낚인 걸까? 글쎄, 데일리 익스프레스 등... 이라고 쓴 걸 보면 데일리 익스프레스가 단독보도한 것도 아닌 것 같고, 다른 기사에 보면 '영국 북동부 지역의 권위지'라는 "노던 에코" 를 인용하고 있던데, 이건 어느 정도 수준의 신문인지 알아볼 길이 없어서 포기. 데일리 익스프레스는 네이버 백과사전에라도 올라가 있지, 노던 에코는 이거 뭐... 영국 북동부 지역의 무려 권위지씩이나 된다는데 그런 설명조차도 없으니. 하기사 네이버 백과사전이 영국 지역일간지 정보까지 제공할 거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아무튼, 오늘은 낚인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코메디닷컴 너마저 orz). 그나저나 전 세계적으로 호들갑이 심한 모양이다. 아니면 우크라이나 상태가 좀 엉망인 건가? 얼핏 검색해 보니 우크라이나 의료상태가 별로 안 좋다고 하는 것 같긴 하던데... 에이. 잠이나 자야지ㅜㅜ




p.s. 근데 정말 궁금한 게, 리노바이러스나 코로나바이러스랑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짬뽕되는 게 가능할까? 일단 셋 다 RNA 바이러스긴 한데 글쎄, 바이러스야 워낙 단순하니까 어쩌면 정말 가능할지도.

...혹시나 지나가다가 이 글을 보시는 바이러스학 고수분이 계시다면, 도와주세요ㅜㅜ



2009년 11월 13일 금요일

신종플루에 대한 잡생각 둘

#1. 심심해서 해보는 점쟁이 놀이

 

아마 다음주부터 신종플루 환자가 급증할 거다. 왜냐면 수능이 끝났거든.

 

...기침이 나고 열이 나도 공부가 소중했던 일부 용가리 통뼈 학생들의 커밍아웃이 시작될 테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던 일부 학생들은 그 교실에 바이러스를 퍼뜨렸을 테니까.

 

그래 봤자 계절감기 수준의 사망률을 넘어갈 것 같지는 않지만, 영유아나 노인들보다 오히려 젊은 층의 사망률이 높다는 건 좀 걱정스러운 일이다. 기껏 공부 열심히 해서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는데 대학생활의 맛도 못 보고 신종플루로 죽어 버리는 그런 눈물나는 이야기를 뉴스에서 보지 않게 되기를 바랄 뿐.

...근데 그래도 호들갑은 떨지 말자.

 

 

#2. 신종플루 음모론을 제안함

 

신종플루가 퍼지면서 너도나도 긴장 또 긴장하고 다니는 바람에 엉겁결에 엉뚱한 데서 국민건강이 증진됐다.

 

신종플루 효과? 식중독·교통사고 환자 '뚝' (조선일보 2009.11.12)

이번 겨울이 지나가 봐야 확실히 알 수 있겠지만, 최소한 지금까지 보기엔 신종플루는 그 위력에 비해 훨씬 더 과도한 관심을 받았다. 별 것 아닌 바이러스로 인해 이 정도 효과를 볼 수 있다면, 아예 정부에서ㅡ질병관리본부라던지ㅡ에서 해마다 바이러스를 만들어서 몰래 퍼뜨리는 게 어떨까? :D

 

물론 사람들이 죽으면 안 되니까 그 위력은 그냥 감기바이러스(독감 말고) 수준으로 약하게, 혹시나 돌연변이가 생겨서 이상한 놈이 탄생하면 안 되니까 RNA 바이러스보다는 DNA 바이러스로, 그리고 바이러스 게놈에다가 3'->5' exonuclease 유전자를 집어넣어서 proofreading 까지 하도록 만들어 주는 거다. :D

 

근데 언론에는 미리 이상한 정보를 흘려서 호들갑을 떨게 만드는 거지. 그러면 사람들이 잘 나돌아다니지도 않고 손도 매일매일 잘 씻을 거 아냐. 사람들이 집에 있으면 교통체증과 교통사고가 감소할 거고(더불어 인터넷 키워질의 활성화와 솔로의 증가를 기대할 수도;;; ), 손을 잘 씻으면 위 기사에 나와있다시피 기타 감염성 질환이 감소하겠지.

 

이런 거나 생각하고 있다니, 정신줄 논 듯 :D

 

 

 

 

2009년 11월 10일 화요일

호들갑은 떨지 말자 #1

최근 충남대 서상희 교수와의 인터뷰라면서 아래와 같은 내용의 글이 여러 군데 돌았다.

<충남대 서상희 교수 인터뷰>


링크를 안 하고 굳이 전문을 여기다 복사해둔 건 도무지 원 출처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검색어를 이리저리 바꿔가면서 검색해본 결과 위 글이 블로고스피어나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 돌기 시작한 건 11월 2일부터인 걸로 추측된다. 위 글과 같은 내용의 글이 가장 먼저 올라온 곳은 아무래도 여기인 것 같다(11월 2일 오전 8시경).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global&uid=122159

근데 이거, 읽고 있자니 정말 찝찝한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서프라이즈에 올라온 글에도 출처는 네이버 블로그라고 달려 있는데, 그 "네이버 블로그"를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는 거다. 원글이 인터뷰 형식으로 되어 있다는 건 누군가가 서상희 교수를 인터뷰했다는 건데, 설마하니 일개 블로거가 서상희 교수를 인터뷰하는 데 성공해서 그걸 자기 블로그에 올렸을 것 같지는 않다. 또 서상희 교수쯤 되는 사람이 일개 블로거의 인터뷰 요청을 받아들여 저렇게 시간을 내줬을 것 같지도 않고. 그래서 혹시나 서상희 교수가 자기 생각을 혼자 인터뷰 형식으로 풀어서 쓴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봤는데, 대충 검색해본 결과로는 서상희 교수는 네이버 블로그 따위 없다. 충남대 수의대 홈페이지에 딸려 있는 서상희 교수의 홈페이지나 미니홈피에도 위 인터뷰와 관련된 어떤 내용도 없다.

한편, 서 교수가 언론과 한 인터뷰 중에 위 글과 (그나마) 비슷한 것들이 있었는데, 다음과 같다.
"AI 대유행시 인류 멸망할 수도. 인플루엔자 대유행, 인류의 영원한 화두" (뉴스한국 2009.9.9)
“신종플루 백신 안전성 철저한 검증을” (대전일보 2009.10.9)

보면 윗글과 비슷한 내용이 어느 정도 들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위 뉴스한국이나 대전일보 인터뷰에 없는 내용도 들어 있고, 비슷한 내용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같은 인터뷰 내용을 가지고 쓴 거라고는 보기 힘든 표현의 차이나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 혹은 내용 배치의 차이 등등... 아무튼 찝찝한 구석이 많다. 최근에 인터넷에 돌던 맨 위의 글은 아무래도 뉴스한국 인터뷰를 기본으로 해서, 서상희 교수 관련 몇 개의 기사와 (누군지 모를) 글쓴이의 창의력이 조금 가미되어 만들어진 것 같다. 한 마디로, 조작인 것 같다는 얘기다.

그리고 또 한가지 찝찝한 것은, 누가 무슨 의도로 만든 건지는 모르겠지만, 과장되었거나 잘못된 내용이 많다는 거다.

...게다가 정부 당국과 A 제약회사의 유착관계로 인해 국민의 생명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시기를 놓쳤다며 둘 다 국민에게 큰 죄 를 짓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런 독감 대유행에 관한 정부 정책 시행은 직접 바이러스를 연구하고 팩트를 가지고 있는 전문가에게 자문 을 구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비전문가들의 추측성 말만 믿은 결과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

 글쎄, 일단 정부당국과 모 제약회사의 유착관계는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다. 그건 그렇고, 독감 대유행에 관한 정부 정책 시행은 일차적으로 역학이나 공중보건학 전공자들의 일이다. 해당 병원체를 연구하는 전문가의 의견 역시 중요하겠지만, 어디까지나 자문역일 뿐이다. 서상희 교수도 수의과대학을 졸업했고, 수의학과에도 수의공중보건학이라는 과목이 있는 모양이지만,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예방의학이나 공중보건학과는 좀 컨셉이 다른 과목인 것 같고, 또한 현재의 서상희 교수는 역학 전문가가 아니라 바이러스학 전문가다. 그런 정책 결정 과정에 있어서는 서상희 교수 같은 사람들보다도 역학 전문가들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맞다. 지금의 상황이 역학 전문가들의 판단 착오 때문이라면 안타까운 일이고, 애초에 그 자리에 역학 전문가들도 아닌 전혀 엉뚱한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면 그건 욕을 먹을 일이지만...

...또한 정부와 모 제약회사가 지금 생산한다는 백신은 동물실험도 안 거친 상태인데다 면역증강제를 쓴 백신을 대량으로 접종할 경우 분 명 사망자가 나올 것이라며 그렇지 않아도 짧은 시간에 대량으로 제조한 백신을 맞아야 하는 상황에서 부작용이 없을 수는 없는 데 큰 일이라고 말했다. ...

 그 '모 제약회사'가 어딘지는 모르겠다. 근데 그게 녹십자라면 이 부분은 다 틀렸다. 녹십자에서 개발하여 지금 접종중인 백신은 동물실험과 임상시험 모두 통과했고, 면역증강제도 안 들어가 있다.

...지난 27일부터 접종이 시작된 신종플루 백신은 (주)녹십자가 자체 개발·생산한 그린플루-에스다. 이 백신은 지난 6월 시제품 생산에 착수한 뒤 3~4개월여 만에 동물실험과 임상시험을 모두 마쳤다. 일반적으로 백신 개발부터 허가가 1~2년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에 비해 이번 신종플루 백신은 신속심사를 거쳤다....

신종플루 백신 부작용 없다고 하지만... (코메디닷컴 2009.10.30)


녹십자가 면역증강제를 사용해 내년에 생산 예정인 신종플루 백신 중 1000만 도즈 가량이 정부와 추가 계약될 전망이다. 현재 정부가 확보한 백신은 1200만 도즈(면역증강제 미사용)로, ...

녹십자, 신종플루 백신 1000만 도즈 정부와 추가 계약할듯 (헬스코리아뉴스 2009.10.26)

 
...서 교수는 지난 5월 세계 최초로 신종플루 백신을 만드는데 성공했지만 정부가 의도적으로 쓰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
 내 주제에 이런 말 해도 될지는 모르겠는데, 서상희 교수의 자질을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솔직히 이 대목이 조작이었으면 좋겠다. 근데, 아무래도 이 분은 진짜 진지하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중앙일보) ... 지난 5월 백신개발이후 복지부에서는 백신생산 초기 단계인 ‘후보 바이러스주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으며, 식약청에서는 ‘실험적 연구로는 의미가 있을 수 있으나,

              WHO에 의해 백신 생산용으로 검증되지 않은 만큼, 동 연구결과를 백신 생산과 연관

              지어 확대 해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두 기관에서 본인의 연구를 평가

              절하하는 것은 아닌가?
(서상희) 서운함 마음을 가진 것도 사실입니다. ...

[인터뷰] 독감바이러스 권위자 충남대 서상희 교수 (중앙일보 2009.10.6)


(서상희) ... 신종플루 표준바이러스를 국가기관보다 먼저 입수했고 백신 개발에도 성공했다.

             국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이것을 무상 제공할 용의도 있다고 밝혔다. ...
(대전일보) 보건복지가족부나 식양청에서는 이것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서상희)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그 전에도 이와 유사한 일이 반복됐다. 해외에서는 인정하는

            데, 국내에서는 오히려 평가절하하는 풍토에 대해 서운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 이유를

           안다....
(대전일보)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일종의 ‘괘씸죄’에 걸린 것인가?
(서상희) 많은 일들이 있었다. ...

“신종플루 백신 안전성 철저한 검증을” (대전일보 2009.10.8)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난 이런 음모론적 사고방식은 무지 싫어한다. 일단 그들이 그들의 음모론에 대한 근거라고 제시한 것들은 확인 혹은 통제가 가능한 사안이 아니다. 맞는지 틀리는지 확인할 방법도 없는 주장을 징징대면서 계속 반복재생하고 있으니 정말 짜증나는 일이다. 게다가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그들은 항상 옳고, 또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 해 왔으며, 모든 문제는 외부의 (부패한) 권력집단 때문이다. 즉 모든 원인이 외부 때문이며 자신은 아무 잘못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주변 환경이 아무리 변해도 이 사람들은 안 되면 남 탓만 하기 때문에 발전이 없다. 예전에 서상희 교수가 세계 최초로 신종플루 백신을 개발했고, 그걸 미국 CDC에 보냈다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그 후로 어떻게 됐는지 한번 보자면,

...앞서 5월말 서상희 교수팀은 자체 개발했다는 후보바이러스를 미CDC(질병통제예방센터)에 우송한 바 있으나, CDC측은 서 교수의 바이러스를 두고 "서 교수가 사용한 방법은 (백신) 후보로서 적합하지 않으며, 고려하고 있지도 않다"고 미CNN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

일양약품 "충남대와 신종플루 백신 개발" (아시아경제 2009.6.15)


참고로, 서상희 백신에 대한 식약청과 보복부의 반응을 보면,


... 이에대해 식약청 관계자는 18일 정책설명회에서 “현재 일양약품의 신종플루개발은 2~3년은 걸린다고 봐야한다”면서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복지부 또한 “서 교수팀의 신종플루 백신 개발 보도는 백신생산 초기 단계인 ‘후보 바이러스주’인 것으로 추정된다”며 신종플루 대유행에 대비하기에는 물리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

 ...해외에서는 인정하는데 국내에서는 오히려 평가절하한다면서? 저 기사 내용만 보면 오히려 미국 CDC의 평가가 보복부나 식약청보다 더 가혹해 보이는데. 미국 CDC마저도 한국정부와 보복부 식약청에 손에 놀아나고 있는 걸까? 세상엔 참 다양한 종류의 매트릭스가 존재하는 것 같다. 아무튼, 서상희 교수팀의 백신은, 뭔가 만들기는 했는데 뭔가 좀 부족하다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이 이후 내용에 대해서도 뭔가 해보고 싶은 말은 많지만, virology를 제대로 공부한 적도 없으면서 덤벼드는 건 너무 무모한 짓인 것 같아서 관둔다. 귀찮기도 하고... 다만 계속되는 정부와 모 제약회사 유착 음모론과, 공중보건학의 영역과 자신의 영역을 구분하지 못하는 모습, 면역증강제 첨가 여부에 대한 일관된 착각. 기껏 긴 글을 시간내서 읽은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 일이다. 더군다나, 맨 마지막에, 보복부와 식약청에서 2~3년 정도 걸릴 거라고 예상한 바로 그 백신. (세계 최초로 개발했으나) 미국 CDC 에서 부적합하다고 판단한 바로 그 백신을 어쨌든 공장 완공되면 대량생산하겠다고 큰소리치고 있으니 참 걱정된다. 국민건강은 둘째치고(그런 백신이 돌아다니는 건 보복부나 식약청에서 적절히 차단해줄 테니까), 괜히 애먼 회사 하나ㅡ일양제약ㅡ말아먹는 건 아닌지 참 걱정이다...


 조작된 내용으로 보이는 부분을 빼고 보면 좀 양호한 편이지만(...사실 그런 것 같지만도 않다 orz), 서상희 교수가 인터뷰에서 직접 한 말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에서도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잘 모르고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필요 이상으로 위험을 과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쯤 되면 (정말 이러고 싶지는 않지만) 서상희 교수의 의도가 의심되기도 한다. 나름 공부 좀 한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궁금해서 BRIC에 가 봤는데, 서상희 교수의 인터뷰에 대한 BRIC의 반응은 싸늘한 편이다. (정말이지 어떤 댓글러의 말처럼 연구비가 다 떨어져가는 건 아니신지... )

http://bric.postech.ac.kr/myboard/read.php?Board=sori&id=38048
http://bric.postech.ac.kr/myboard/read.php?Board=sori&id=25587
http://bric.postech.ac.kr/myboard/read.php?Board=sori&id=25167
http://bric.postech.ac.kr/myboard/read.php?Board=sori&id=25307

http://bric.postech.ac.kr/myboard/read.php?Board=sori&id=27869


그리고 결정적으로 서상희 교수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는 건,

Science. 2005 Mar 4;307(5714):1392.

Infectious diseases. Experts dismiss pig flu scare as nonsense.
Enserink M.

 

2005년 사이언스지에 뉴스 형식으로 가볍게 실린 내용인데, 원문은 셀프 :D ...고, 그 내용만 아주 간단히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2004년 말 서상희 교수 팀에서 한국 돼지에서 나온 바이러스의 것이라면서 Genbank에 몇 개의 partial RNA 시퀀스를 올렸다. Niman 이란 사람이 그걸 보고 WSN/33이라는 바이러스와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 WSN/33은 실험실에만 있고 자연에 존재하지 않으며, 매우 위험한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Niman 은 그걸 WHO에 알렸다.

 WHO에서는 단순한 실험실 실수인 것으로 판단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그래도 Stohr 라는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했다. Stohr 은 RNA 시퀀스를 검토한 결과 실험실 실수로 플루 바이러스와 WSN/33 이 섞인 것(RNA contamination)으로 결론지었다. 서상희 교수와 같이 일한 적이 있는 Webster 도 서상희 교수가 자기 실험실에서 WSN/33을 받아간 적이 있다며 contamination 설에 무게를 실어 주었다.
 
 그러나 서상희 교수는 WSN/33 같은 거 받은 적 없다며 부인. 다른 랩에서 contamination 아니란 걸 입증해 줄 것이라며 샘플을 Peiris 랩과 Kawaoka 랩에 보냈다. 그러나 해당 랩들에서는 대답을 거절했다. 한편 한국의 수의과학검역원에서도 실험결과 재현에 실패했다고 알려 왔으며, 분자생물학자 Fouchier 또한 contamination 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Niman 은 굴하지 않고 자기 홈페이지에 계속 관련된 글을 썼으며. 결국 Nature에서 Niman의 주장을 실어 주었다. 이에 짜증난 Stohr 은 Niman 은 연구성과도 별로 없으며 플루 전문가도 아니라고 까발렸고, Webster 또한 인터넷에서 사람들 선동하기가 너무 쉽다며 거들었다......

 

뭐, 판단은 알아서들 할 일이지만, 기사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한 마디가 참 가슴을 울린다.

 

"It’s so easy these days for somebody with a Web site to create a lot of panic.”


 RNA contamination 이야 일차적으론 직접 실험한 사람 책임이겠지만, 그게 Genbank 까지 올라갔다는 건 그 실수를 집어낼 능력이 그 랩에 없었다는 얘기고, 그건 좀 문제다. 그리고 이쯤 되면 (아마 그 랩의 지도교수였을) 서상희 교수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더구나, WSN/33 샘플을 준 사람은 있는데 받은 사람은 없는 상황이라니. 이런 말까지 해도 되나 싶기는 한데, 황우석 부류의 냄새가 난다. 또 (자칭) 세계최초 신종플루 백신개발과 관련한 피해의식과 음모론에서는 광우뻥 당시 우희종/우석균/박상표 부류의 냄새도 난다. 뭐 아직까지는 그들에 비하면 훨씬 양호한 상태인 걸로 보이지만 까딱 방심하면 언제든 그들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 같은 가능성이 엿보인다. 무려 Nature medicine 까지 쓰신 분이 어떻게 저럴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황씨는 사이언스도 썼는데 뭐. 어쩌면 그리 머지 않은 미래에 황우석-김양곤-양동봉 등과 함께 대한민국이 낳은 위대한 과학자의 반열에 올라설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2009년 11월 7일 토요일

헌혈이 심장에 무리를 준다고?

최근에 여러 사이트에서 아래와 같은 글이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대충 검색해보니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몇 달 전에도, 작년에도, 그리고 몇 년 전에도 돌았던 모양이다. 그럼 도대체 원 출처는 어디일까 궁금했지만 이런 글의 특성상(...) 추적이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되어 그만 포기.

헌혈의 진실(...일 리 없지만 아무튼 펼치기)


참 글이 짜집기에 내용도 중구난방인 것만큼이나 여러 사이트에서 거기 달리는 반응들도 중구난방이었다. 다만 개인적으론 우리나라에서 적십자의 이미지도 참 나쁘다는 걸 알게 됐다는 게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달까. (근데 도대체 왜? 의사라면 다 까고 보는 사람들이니 불똥이 적십자에도 튄 걸까? ) 아무튼, 대충 돌아다니면서 살펴본 네티즌들의 "적십자 까는 패턴" 은 대개 아래의 패턴 중 하나로 보였다.

1. 헌혈증 내면 공짜라더니 천원밖에 안 깎아준다 (윗글 33세 가장의 유형)
1-1. 헌혈증 내면 우선적으로 수혈해주는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2. 적십자가 제약회사에 피팔아 돈번다
2-1. 적십자가 혈액사업 독점했다
2-2. 적십자 비리 많다
3. 헌혈 위험하다
3-1. 에이즈, 간염 ㅎㄷㄷ
3-2. 심장에 무리가 간다

글쎄, 그 즈음 해서 이글루스의 Charlie님이 쓴 글이나, 대한적십자사의 해명글(직접링크가 걸리지 않는다-_-; 상단 질문나눔이-자유게시판-헌혈에 대한 진실)로 대부분의 의혹(애초에 그런 의혹들이 제대로 된 근거를 갖고 있지도 않았지만)은 해소되었을 거라고 본다(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저렇게 해 줘도 그 모든 게 조작이고 음모이며 우리는 적십자의 혈액매트릭스에 살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을 거다).

저 글을 처음 보고는 나름 재밌어서 마침 아직 집에 굴러다니고 있던 법규 책 뒤져가며 혈액관리법 공부도 하고 그랬는데(그 결과 대부분 개소리임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보다 더 관심이 갔던 건 바로 "심장에 쇼크가 누적돼서 나이들면 고생한다"는 소리. 물론 이 주장 또한 근거는 없었다(아니, 있었다. '아는 의사'가 그랬다! 고......).

그래서 자료를 한 번 찾아봤다. 사실 쉽지 않았다 orz 한참을 PubMed랑 씨름한 후에야 적절한 검색어를 찾을 수 있었고, 참고할 만한 논문들이 검색에 걸리기 시작했다. 근데,

헌혈과 심장질환 사이의 관계를 살펴본 논문 따위 아무리 찾아봐도 개뿔 없는 거다.

헌혈의 합병증complication 혹은 부작용adverse effect에 대해서 다룬 논문들은 왕왕 있었는데, 맨 혈종hematoma이나 멍 bruise, 끽해봐야 일주일 갈까말까 한 헌혈부위 변색이나 통증이고. 좀 심한 케이스로 나오는 게 혈관미주신경성 반응vasovagal reflex로 인한 실신 정도니 영 재미가 없는 거다. 오죽하면 사실 실신하는 건 별 문제가 아닌데 실신하는 과정에서 넘어져 다치는 게 더 큰 문제라고 할까. 몇 건의 논문을 살펴봤는데 미국 적십자의 BH Newman 이란 사람이 잘 정리해놓은 것 같다.

Curr Opin Hematol. 2004 Sep;11(5):339-45.
Blood donor complications after whole-blood donation.
Newman BH.

원문은 셀프 :D ...지만, 대강의 내용이 정리된 표 하나만 옮겨 보면(저, 저작권...;; )

(클릭하면 커집니다)


이 사람들은 두 번 조사를 했는데, 한 번은 헌혈하는 바로 옆에서 관찰, 한번은 헌혈 3주 후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헌혈한 자리에 멍이 들거나 통증이 생기는 경우는 흔하고, 어지럼증을 느끼거나 실신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는 모양이다.

물론 신체에 아무 손상없이, 아무 영향없이 피만 뽑아낼 수 있다면야 참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즉, 헌혈을 할 때도 예상되는 부작용을 고려해서 나름 손익계산을 해야 된다는 얘기다. 팔에 멍들거나 좀 아픈 건 기껏해봐야 일주일이고, 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니 사람에 따라서 좀 어지럽거나 다른 전신적 반응을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 역시 길어야 일주일. 그래서 헌혈한 당일은 격한 운동은 자제를 해 줘야 되는 것이고... 혈관미주신경반응은 헌혈행위 자체보다도 헌혈자의 정신적, 심리적 상태에 더 큰 영향을 받는 문제니까 사전에 충분한 설명과 긴장 및 불안감 해소, 그리고 통증을 최소화하는 게 중요하겠지(특히 처음 헌혈하는 사람일수록 더더욱). 헌혈 끝나고 바로 떠나지 말고 15분 정도 쉬다 가는 것도 좋겠고.

이 정도 리스크까지 감수해 가며 도저히 헌혈을 할 수 없다 하는 사람은 헌혈을 안 하면 된다. 다만 그걸로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기는 쉽지 않을 거다.

...이상이 헌혈시 발생할 수 있는 나름 '흔한'부작용들이고, 애초의 주제였던 심장으로 돌아가 보면,
표의 맨 아랫줄에 MI, stroke, etc 등이 있고, very rare 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없지 않다는 얘기다. Newman은 헌혈로 인한 심장질환과 관련하여 3편의 논문을 참고하고 있는데, 해당 논문들은 아래와 같다.

Complications arising in donors in a mass blood procurement project.
Am J Med Sci 1945, 209:421–436.
Boynton MH, Taylor ES

Reports of 355 transfusion-associated deaths: 1976 through 1985.
Transfusion 1990, 30:583–590.
Sazama K

Severe outcomes of allogeneic and autologous blood donation: frequency and characterization. Transfusion 1995, 35:732–737.
Popovsky MA, Whitaker B, Arnold NL

두 번째와 세 번째 건 원문 파일을 구할 수가 없었고(도서관에 가면 복사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영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orz), 오히려 무려 1945년에 나온 첫 번째 논문의 PDF 파일이 구해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Boynton의 1945년 논문은 1942년부터 1944년까지 미국에서 행해진 약 700만건의 헌혈(350만명의 헌혈자)을 대상으로 합병증의 발생을 조사했는데, 그 중 18명에서 헌혈 48시간 이내 심장질환이 발생했고, 그 중 10명이 사망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저자가 보험회사의 자료를 인용하면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는 일반적인 심장질환 사망률과 차이가 '없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고려할 점은, Boynton의 조사는 1940년대에 이루어졌고, 지금은 2009년이라는 점. 피 뽑는 기술도 많이 발전했을 테고, 헌혈자 선별하는 기준도 더 엄격해졌다. (실제로, 당시 헌혈 후 사망한 사람들을 지금 기준으로 검사하면 반 이상이 헌혈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된다)

그래서 결론, 헌혈의 위험성은 저 정도라는 거다. 물론 똑같은 숫자를 보여 줘도 개개인이 느끼는 위험의 크기는 다를 수 있다. 문제는 그게 얼마나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느냐는 거겠지. 어쨌든 위의 자료만 놓고 얘기할 수 있는 건,

"헌혈하고 심장질환으로 죽을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P
(물론 헌혈이 원인이라는 증거 따위는 없다. 즉 애초에 심장마비로 죽을 사람이 마침 헌혈을 했단 이야기 :D)

...그러니까 나한테 저걸 해석하라고 하면 '하나도 안 위험하니까 걍 헌혈하삼' 이라고 대답할 거다.
물론 "그래도 지금 헌혈이 100% 안전하다고 보장할 수 없다는 거잖아요!!!" 라고 개드립칠 사람들이 눈에 선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뭐. 광우뻥 때도 그렇고 하루이틀 보는 일도 아니니 :D

다만 아쉬운 건, 헌혈 심장쇼크 드립을 치는 사람들 주장의 요지는 '심장에 쇼크가 누적되어 먼 훗날 문제가 생긴다'는 건데, 그걸 확인할 수 없었다는 거다. 지금까지 본 사망사례들은 헌혈 후 48시간 이내에 발생한 것들이니까. 그걸 확인하려면 젊어서부터 헌혈 많이 한 사람들이랑 헌혈 안한 사람들을 선정해서 계속 추적, 심장질환 발병률을 추적해야겠지? 한 20년 정도 걸릴까? 통계적으로 제대로 된 결과를 뽑아내려면 표본 크기는 얼마나 잡아야 될까? 이런 거, 가능하기는 할까? 글쎄, 그런 거 전산 데이터베이스 관리만 잘 된다면 어떻게 생각보다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다 orz

근데, 애초에 아무 자료가 없는 상황이라면 처음부터 그런 주장을 펴는 것 자체가 문제인 거잖아 :D 근거를 가지고 오라는 말은, 도대체 어디서 뭐하는 누가 어떤 상황에서 한 말인지도 모르는 말을 들고와서는 '아는 의사가 그랬음ㅇㅇ'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해줘야 되는 말이다. 헌혈은 안전하다. 설마 또 사전예방의 원칙 어쩌고 하면서 안전하다는 증거가 없으니까 일단 위험하다고 봐야 된다는 족속들은 없겠지. 난 헌혈로 인해 심장에 무리가 가서 죽을 가능성보다 불의의 사고를 당했는데 혈액이 모자라 죽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데 100원 걸겠다.

이쯤에서 앞부분에 썼던 적십자 까들의 패턴을 다시 한번 살펴보면,

1. 헌혈증 내면 공짜라더니 천원밖에 안 깎아준다 (윗글 33세 가장의 유형)
1-1. 헌혈증 내면 우선적으로 수혈해주는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2. 적십자가 제약회사에 피팔아 돈번다
2-1. 적십자가 혈액사업 독점했다
2-2. 적십자 비리 많다
3. 헌혈 위험하다
3-1. 에이즈, 간염 ㅎㄷㄷ
3-2. 심장에 무리가 간다

적십자의 해명자료로 빨간 글씨로 된 것들이 충분히 설명이 되리라 본다. 내가 알아보고 싶었던 건 어디까지나 3-2에 국한되어 있었던 거다. 물론 적십자 자료에서도 500회 이상 헌혈한 사람의 사례를 들고 있고... 자, 그래서 이제 적십자 까면서 헌혈 안하겠다는 사람들에게 남아 있는 옵션은 "2-2. 적십자의 비리"뿐. 그래, 까는 것도 좋고 헌혈 거부하는 것도 좋은데, 앞으로는 그러면서 다른 이유 대는 꼴은 안 봤으면 좋겠다. 그들에게 남은 구실은 단 하나다. '적십자 비리 때문에 싫어요!' (있는지 없는지 난 모르겠지만... ) 그런 이유라면야 그들의 존중도 조금은 취향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난 헌혈하라면 할 거지만.

세줄요약 :
1. 헌혈이 심장질환을 유발한다 -> X
2. 헌혈하면 심장에 쇼크가 누적되어 장기적으로 안 좋다 -> 전혀 근거없음
3. 헌혈 ㄱㄱ



p.s. 근데 도대체 누구였을까? 뭐 하는 사람이었을까? 도대체 왜? 설마하니 수혈을 거부하는 모 종교단체와 관계있는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