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9일 수요일

에이즈 바이러스의 뿌리?

“에이즈 바이러스 뿌리, 고대 호랑이”
“호랑이가 원숭이 물어서 전파” (코메디닷컴 2009.12.7)


제목이 나름 자극적이었다. 유전자 진화에 대한 연구는 언제나 흥미롭다.
(그걸 내가 얼마나 이해하느냐는 일단 논외로 하고-_-;; )

아무튼, 무려 호랑이[footnote]정확히는 현재 호랑이의 조상이 된 호랑이와 비슷하게 생긴 어떤 동물이겠지만.[/footnote]에게 물리고서도 어떻게 살아남아서 동족에게 새로운 바이러스를 전파한 고대 원숭이[footnote]그 고대 원숭이가 어떻게 됐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호랑이에게 물려서 그 자리에서 잡아먹혔다면 바이러스가 원숭이 집단에 퍼질 수 없었을 테니, 어떻게든 살아서 도망쳤다고 봐야겠지.[/footnote]에게 경의를(...) 표해야 할까. 호랑이에게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은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구나[footnote]다만 이상한 바이러스가 묻어 올 수는 있겠다 -ㅅ-[/footnote].

다만, 그렇게 원숭이에게 넘어온 바이러스가 원숭이들 안에서 돌다가 결국 사람에게 넘어와 모두가 후덜덜하는 HIV가 되었다는 걸 생각하면 마냥 신기해할 일만은 아닌 듯. 여담이지만 항간에 돌던 원숭이-사람 성접촉 기원설은 틀렸다는 게 요즘 대세인 것 같다. 다른 설명을 어디선가 봤는데 까먹었다-_-a

그건 그렇고, 기사에서 말하고 있는 연구팀의 논문은 이건데,
A sequence similar to tRNA3Lys gene is embedded in HIV-1 U3–R and promotes minus-strand transfer
Dorota Piekna-Przybylska, Laura DiChiacchio, David H Mathews & Robert A Bambara


나도 virology 를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 이 논문을 다 이해하지는 못한다[footnote]근데, 레트로바이러스의 기원이 retrotransposon일 거라는 내용은 흥미로웠다. 진핵생물의 일부였다가 뛰쳐나간 존재들이 이제는 원래 한몸이었던 진핵생물들을 위협하고 있다는 거잖아 :D[/footnote](그래서 바이러스 하는 사람들은 멋있어 보인다-_-;; 솔직히 반도 이해 못 한 것 같다 orz). 다만, 적어도 저 논문의 주된 내용이 '에이즈 바이러스의 조상이 호랑이에서 건너왔다' 는 건 아닌 것 같다. 에이즈 바이러스 유전체에 있는 특정 염기서열의 기원을 따지면서 호랑이 원숭이 얘기를 하고 있긴 하지만 적어도 호랑이 원숭이 얘기가 이 논문의 요지는 아니다. 아마도 미디어에서 소개하면서 흥미 유발을 위해 지엽적인 부분을 부풀린 것 같다. 하긴 그렇게 안 했으면 내가 이 기사를 클릭했을 리도 없고, 논문을 찾아볼 일도 없었겠지.

근데,
밤바라 교수는 “이 연구는 에이즈 바이러스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이해를 도와 에이즈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외에도 신종플루처럼 인간과 동물 사이에 감염되는 질병에 대한 이해도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다”고 기대했다.
(코메디닷컴 기사 중)
...아무리 그래도 HIV의 조상을 밝힌 걸로 에이즈 치료에 도움이 될 거라니, 이건 좀 이상하잖아. 에이 설마 하면서 이 연구가 소개됐다는 미국 웹진을 찾아봤다.

AIDS May Date Back to Ancient Tiger
Researchers find signs of feline DNA in virus


내용을 옮겨 가며 해석하는 건 귀찮고, 확실히 밤바라 교수가 저런 식으로 말한 건 맞다. 다만 다른 학자들은 이 연구 결과로 에이즈 치료에 있어서 뭔가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성과를 기대하는 건 무리라고 분명히 덧붙이고 있다. 확실히 멋있고 훌륭한 연구인 건 맞는데, 나 보기에도 임상적인 의미는 솔직히 별로 없어 보인다. 물론 절대 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솔직히 정신적 사치일지도 모르겠지만, 신약 개발이나 새로운 치료법 개발 같이 뭔가 와닿고 뭔가 도움되는 게 있는 것보다 이런 어찌 보면 뜬구름 잡는 것 같은 기초연구 보고 있는 게 더 재밌다(......)

근데, 아무리 상대는 힘센 호랑이고 이쪽은 연약한(...) 인간이지만, 이쪽만 괜히 바이러스 하나 받고 끝나는 건 억울하잖아. 호랑이들한테 받은 게 있으면 이쪽도 뭔가 주는 게 있어야지. 그래서,

Who ate whom? Adaptive Helicobacter genomic changes that accompanied a host jump from early humans to large felines.
Eppinger M, Baar C, Linz B, Raddatz G, Lanz C, Keller H, Morelli G, Gressmann H, Achtman M, Schuster SC.
PLoS Genet. 2006 Jul;2(7):e120. Epub 2006 Jun 15.
[footnote]사실 이 논문을 예전에 보고 재밌어서 나중에 간단하게 글이라도 써볼까 했는데 역시 게으름이 문제. 일단 이번엔 간단히 소개만.[/footnote]

...인류의 선조도 호랑이 조상에게 선물을 줬으니, 바로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footnote]일단 글은 이런 식으로 쓰고 있지만, 에이즈 바이러스의 조상이 원숭이에게 넘어온 것과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가 원시 인류에서 호랑이 쪽으로 넘어간 것 중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확실치 않다. 자료 찾아보기 귀찮다(......)[/footnote]

"아주 고약한 세균이죠"


그 어느 옛날, 호랑이 조상이 인간 조상을 잡아먹었는데, 인간 조상의 위 속에 살던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이 같이 넘어가 현재 고양이과 동물들의 위 속에 살고 있는 Helicobacter acinonychis 균의 조상이 되었다는 훈훈한 이야기(......)

...그래도, 아무리 하나씩 주고 받았다지만 에이즈 받고 위장질환 준 건 웬지 손해본 느낌(......)






댓글 3개:

  1. 재밌어요~ 특히 마지막이요~ ^ ^ㅋ

    HIV와 헬리코박터라니 확실히 등가교환은 아닌 것 같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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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부두인형 - 2009/12/14 10:41
    재미있으셨다니 감사합니다 :D 그래도 좋은 항바이러스제가 계속 만들어지고 있으니 조금씩 공평해지고 있다고 할까요;;; 참고로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위까지 생각했다는 어떤 발효유는 정작 헬리코박터에 대해서 별로 효과가 없다지요(근거를 물어보시면 곤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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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rackback from: 에이즈 바이러스의 기원
    이 글은 Firefox 에서 가장 잘 보이며, Internet Explorer 에서 제대로 보이지 않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다른 브라우저에서는 어떤지 몰라요(......) [이 기회에 Firefox 다운받기] 어느 날, 블로그 유입로그를 보다가 어느 네이버 블로그 주소[1]가 찍혀 있길래 들어가 봤다. 근데 그 글에 에이즈 바이러스에 대한 기원이라며 내 글이 링크되어 있었다. 링크되는 거야 기분좋은 일이지만, 그래도 그 글은 에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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