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28일 토요일

엄마친구아들

‘공학박사 가수’ 논문으로 일내다… 루시드 폴 연구물 ‘네이처’ 계열 저널에 게재

사실 난 루시드 폴이 외국인인 줄 알았다(...혹시 어쩌면 외국 국적일지도 orz). 그보다도 사실, 음악하는 사람이라는 건 알았는데, 난 루시드 폴이 옛날 사람인 줄 알았다. 대충 8~90년대 활동하던, 그래서 지금은 나이많은 중년의 신사 정도 되는 줄 알았는데 이럴 수가.

공학박사에, 졸업논문은 간지나는 데 실리고, 음반이 네 장째... 더구나 불과(?) 서른넷에, 무려 잘생기기까지 했다. 깔 게 없다... orz

근데,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서 좀 찾아보려고 했는데, 보다 보니 뭔가 좀 이상하다.

음유 시인이자 공학 박사인 루시드 폴(조윤석·34)의 논문이 세계적 과학저널 네이처 23일자에 게재됐다. 소속사 안테나 뮤직에 따르면 네이처의 화학 계열 저널 네이처 케미스트리에 그의 논문 ‘일산화질소 전달체용 미셀’이 정식 소개됐다. 이 논문은 지난달 2일 온라인판 ‘주목할 만한 연구’에 소개되기도 했다.

(중략)

지난 9월에는 미국 화학회지 JACS를 비롯, 유명 화학저널 두 곳에도 실렸다.
(맨 위 링크 기사에서 발췌)

'세계적 과학저널 네이처 23일자에 게재됐다.'
'
네이처 케미스트리에 ... 정식 소개됐다. 지난달 2일 온라인판 ‘주목할 만한 연구’에 소개되기도 했다.'
'미국 화학회지 JACS를 비롯, 유명 화학저널 두 곳에도 실렸다.'

뭔 소리지. 논문 중복게재란 건가. 저런 큰일날 짓을... 이라고 생각하면서 네이처 사이트에 들어가서 좀 뒤져 봤더니 이런 게 걸렸다.

Micelle-based delivery: Just say NO
Gavin Armstrong

Nature Chemistry
Published online: 2 October 2009 | doi:10.1038/nchem.422


네이처 케미스트리에 10월 2일자로 올라온 문건이다. 이건가 싶긴 한데 저자명이 낯설다. 자세히 보니 진지한 논문이 아니라 Research highlights 다. 기사에 나온 말대로 '주목할 만한 연구'로 번역해도 무리없을 듯 싶다. 그러고 보니 레퍼런스도 달랑 하나고, 본문도 그 레퍼런스의 내용과 그 발견의 의의 및 기대효과 등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 글에서 소개하고 있는 논문이 바로 이것↓

Micelles for delivery of nitric oxide.

Jo YS, van der Vlies AJ, Gantz J, Thacher TN, Antonijevic S, Cavadini S, Demurtas D, Stergiopulos N, Hubbell JA.

J Am Chem Soc. 2009 Oct 14;131(40):14413-8.PMID: 19764751 [PubMed - indexed for MEDLINE]


제일저자 Jo YS 가 아마도 조윤석(루시드 폴)인 것 같다. 제목도 기사에 나온 ‘일산화질소 전달체용 미셀’이랑 맞는다. 이게 바로 미국 화학회지 JACS에 실렸다는 그 논문인 것 같다. 다만 게재 시점은 기사에 나온대로 '지난 9월' 이 아니라 '10월'이다(JACS 온라인판에 실린 날짜가 9월 18일이다).

...이제 정리가 좀 된다. 애초 조윤석의 논문은 JACS에 실렸고(온라인판 9월 18일. 출판 10월), 그걸 읽어본 Gavin Armstrong 이 '우왕ㅋ굳ㅋ' 하면서 그걸 네이처 케미스트리에 소개했고, 그게 네이처 케미스트리 온라인판에 10월 2일자로 올라갔던 거다. 그리고 '세계적 과학저널 네이처 23일자에 게재됐다.' 라고 나오는 걸 보면 아마 이번달 23일자로 인쇄되어 실린 모양이다. 정확히는 네이처가 아니라 네이처 케미스트리일 테고, 네이처 케미스트리에 '게재'된 게 아니라 네이처 케미스트리에 '소개'된 거겠지만.

그래서 대부분의 궁금증은 해결됐는데,

'
미국 화학회지 JACS를 비롯, 유명 화학저널 두 곳에도 실렸다.'

이건 도대체 뭔 소릴까. 설마설마하니 같은 내용으로 두 군데도 아니고 무려 세 군데에 논문을 낼 수는 없을 텐데. 화학하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또 다른 논문 데이터베이스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PubMed 에서 '조윤석'으로 검색해 봤다.

검색결과

조윤석이란 이름이 들어가 있는 논문은 총 다섯 편이고, 혹시나 동명이인일까 싶어서 대충 살펴봤는데 일단 전부 루시드 폴이 맞는 것 같다. 2005년에 나온 논문이랑, JACS 논문과 그 후에 나온 논문 한 편을 빼면 남는 건 2009년에 나온 두 편. 아마 그 두 편을 두고 '유명 화학저널 두 곳에도 실렸다.'라고 한 게 아닌가 싶다. 보면 전부 다른 논문이다. 그럼 그렇지. 중복게재라니, 그런 큰일날 짓을 했을 리가...

...

기사 보고 '아니 이런 엄친아가. 역시 세상은 불공평해...'를 외치며 간단하게 글 하나 쓰려고 했는데, 궁금증에 이것저것 찾다 보니까 어느새 한 시간이 지나 버렸다 orz

그래서 결론.

1. 과학을 잘 모르는 소속사 혹은 기자의 설레발로 인해 만들어진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기사.
   (아니, 기사 제목 보니 오보가 맞다. 네이처 계열 저널에 게재된 게 아니니까.)
2. 그래도 루시드 폴은 엄친아가 맞음.
3. 나도 서른넷이 되면 저렇게 될 수 있을까?

orz......






2009년 11월 27일 금요일

혼인빙자간음죄 위헌판결을 보고

작년엔 간통죄 합헌이라던 사람들이 웬일일까. 하긴 그 때도 2/3을 못 채워서 그랬지 위헌의견이 많긴 했었다. 그래도 1년밖에 안 지났는데, 장족의 발전인 듯?

헌재, `간통죄` 가까스로 합헌 … 위헌 의견 크게 늘어 (한국경제 2008.10.31)
[사설]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진 '혼인빙자간음죄' (조선일보 2009.11.26)

법 쪽에야 거의 문외한이라 몰랐지만, 혼인빙자간음죄라고 하니까 뭔가 대단한 건가 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그냥 형법 한가운데에 달랑 한 줄 들어가 있는 게 전부였다. 이렇게...

제304조 (혼인빙자등에 의한 간음) 혼인을 빙자하거나 기타 위계로써 음행의 상습없는 부녀를 기망하여 간음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개정 1995.12.29>


법은 결국 그 시대에 그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에 따라 만들어질텐데, 저 조항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가치관이 뭘까 생각해보니 이건 뭔가 타임머신을 탄 느낌이다. 그러니까,

첫째, "혼인을 빙자하거나 기타 위계로써..." 라는 말은, 여성은 결혼 혹은 그에 준한다고 볼 수 있는 어떤 사유가 있을 때만 섹스할 수 있다(혹은 그러한 사유가 있을 때만 섹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남성은 아무때나 해도 되지만)는 것이고,
둘째, 섹스는 분명 남녀가 같이 하는 것, 그러니까 둘 모두가 주체가 되는 건데, 굳이 '부녀'를 기망하여 간음했을 경우로 한정하는 건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또 하나의) 섹스의 주체가 아니라 남성에 의한 섹스의 대상으로 보는 거잖아.
셋째, 그나마도 모든 여성이 아니라 '음행의 상습없는' 여성의 성만을 보호하겠다는 거(그럼 왜 굳이 성매매는 못하게 막는 걸까? ). 그러니까 섹스를 경험하지 않은, 혹은 섹스 횟수가 적은 여성의 성, 성기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믿음인가? 법 만드는 분들 법 공부하기 전에 해부학 조직학 공부부터 좀 하자.

법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조만을 보호한다는 그야말로 주옥같은 명판결이 나온 지 50년도 더 지났는데, 95년에 개정된 법조문에도 그런 가치관이 남아있을 줄이야. 여성을 보호한다고 하는데, 도대체 이 법으로 보호하겠다는 게 여성이라는 인간 ㅡ남성과 동등한ㅡ 인 건지, 아니면 여성이라는 이름의 '애완동물'인 건지, 그것도 아니면 "순결, 정조" 라는 어떤 '재화'인 건지 난 모르겠다. 근데 한 가지 확실해 보이는 건,

여성계 "혼빙간 위헌은 시대적 요구" 대환영
유림단체 "성적으로 문란한 사회 될 것" 반발


...필요없다잖아?

조선시대의 감성으로 21세기를 살아가는 분들은 오지랖도 참 넓다. 도포를 걸쳐서 그런가?


뭐, 아무튼 이제 간통죄랑 성매매 남았네. 앞으로 재밌는 구경거리가 될 듯.



2009년 11월 21일 토요일

트랙백 달기 전에 원글부터 좀 읽자.

최근에, 내 글에 달린 트랙백 몇 개를 지운 적이 있다. 도대체 이게 왜 내 글에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그랬다(그나마도 소심한 나머지 좀 고민했다). 물론 트랙백은 이런 상황에서만, 이럴 때만, 이런 이유로만 달아야 한다... 하는 규정 따위 없을 테지만, 최소한 한 가지에는 모두 공감하지 않을까? 바로,

원글에 대한 의견, 혹은 원글과 관련있는 내용이어야 한다.

물론 이마저도 강제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어디까지나 권장사항일 뿐이다. 근데, 트랙백이란 게 결국 다른 사람 블로그 글에 '내가 이런 글 썼어요' 하는 링크를 굳이 생성하는 일이고 보면, 원글 글쓴이를 포함해서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트랙백 걸린 글이 원글에 대한 동조든 반박이든 또다른 무엇이든 어쨌든 원글의 내용과 뭔가 관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할 거다. 원글의 내용과 아무 관계없는 트랙백이라면 그건 낚시고 스팸 아닐까. 뭔가 있을까 싶어서 들어가본 원 글쓴이와 그 글을 읽은 사람들의 시간을 뺏는 짓이란 말이다.

다시 트랙백 지운 얘기로 돌아가서, 며칠 전에 NASA, 2012 종말론을 반박하다 란 글을 쓴 적이 있다. 2012년 지구종말론에 대해 NASA 가 반박하고 나선 것을 번역한 글이다. 영화 <2012> 와는 관계없는 내용이다. 지금은 다 지워버렸지만 그 글에 트랙백이 두 개인가 걸렸었다. 뭔가 하고 들어가봤더니 영화 <2012> 감상평이었다. 혹시나 해서 다 읽어봤지만 영화에 대한 얘기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NASA에서 2012년 종말론을 반박한 거랑, 영화 <2012>랑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2012>를 보진 않았지만 내가 알기로 진지하게 종말론의 과학적 이론과 근거를 파헤치며 종말론에 열광하는 사회현상에 대해 심리적 사회적 분석을 시도한 논픽션 종말이론 과학심리사회 다큐멘터리이기는 개뿔, 그냥 볼거리에 충실한 스케일 큰 재난영화일 뿐이다. NASA의 반박과 영화 <2012> 가 공유하는 건 '2012'라는 키워드 뿐이다. 그러니까 내가 그 글을 쓰면서 기대했던 건 종말론자들의 열폭이나, 과학주의자들의 동조나, 종말론에 열광하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들 같은 거. 그러니까 종말론의 내용이 과학적으로 타당한가에 대한 생각이나 종말론 유행이라는 사회적 현상에 대한 생각들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다른 사람들도 그 글에 트랙백이 달린 걸 본다면 그런 걸 기대하지 않을까? 근데 왜 뜬금없이 영화 <2012> 감상문만 줄줄이 달리느냔 말이다.

그래서 난 참 궁금한 게, 도대체 글을 읽기나 하고 트랙백을 거는 걸까? 그냥 태그 갖고 검색해봐서 뜨는 글들에다가 무작정 트랙백 걸고 돌아다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여기저기 트랙백 걸고 다니면 분명 블로그 방문자 수를 올리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아무리 방문자수가 탐나고 인기블로거가 되고 싶어도 적당히 하자. 기껏 트랙백 걸린 글 읽으러 갔다가 전혀 관계없는 글 보고 허탈해할 사람들 생각도 좀 해 줘야지. 이건 매너의 문제고 에티켓의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 글에 '2012' 라는 태그를 넣어 보았다. 글 안 읽고 태그 검색해서 트랙백만 걸고 다니는 사람들이 정말로 있는지 실험 좀 해 보려고. 이렇게까지 써 놨는데 이 글에 또 영화 <2012> 감상평이 달린다면 정말 그렇다는 얘기겠지. 영화 <2012> 관련 글이 아니라도, 다른 글에 대해서도 앞으로 또 비슷한 일이 발생하면 트랙백 삭제는 물론이고 아예 이 글을 거기다 트랙백 걸어 줄 테다. 비록 별볼일없는 듣보잡 블로그지만 앞으로 뻘트랙백에 대해서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 그러니까,

트랙백 달기 전에 원글부터 좀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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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여담인데 - 1


이건 여담인데 - 2


이건 여담인데 - 3



* 여기다가 영화 <2012> 감상평 달러 온 사람은 아직 없었지만, '2012' 태그는 삭제.



2009년 11월 17일 화요일

우크라이나 변종플루?

동유럽 신종플루보다 무서운 변종 확산 중
(코메디닷컴, 입력일F 2009.11.17 15:03ㅣ수정일 2009.11.17 15:03 )

낮에 이런 기사가 떴었다. 근데 더 치명적이고 강력하다 어떻다 하는 것보다 신기했던 건,
"감기 바이러스와 캘리포니아 플루가 합쳐진 변종"

캘리포니아 플루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플루라니까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겠지. 근데 감기 바이러스라면 아마도 리노바이러스나 코로나바이러스일 텐데, 그러면 저런 식으로 다른 종류의 바이러스끼리 짬뽕되는 것도 가능하단 얘긴가? 바이러스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아무튼 사실이라면 흠좀무... 라고 생각하고는 잊어버렸다. 일단 우크라이나는 너무 멀고(사실 신종플루의 전파속도를 떠올려보면 절대 먼 게 아니지만), 그보다도 일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에...-_-;;

그러고 나서, 집에 와서 보니 이번엔 이런 기사가 올라와 있었다.


동유럽, 新신종플루 출현 확산중
(코메디닷컴, 입력일F 2009.11.17 15:15ㅣ수정일 2009.11.17 22:37)


"해당 바이러스는 캘리포니아 독감 바이러스와 또 다른 두 종류의 계절독감 바이러스 등 총 세 가지 바이러스가 조합돼 변이된 형태"

응, 캘리포니아 독감이랑 두 종류의 계절독감이니까 어쨌든 셋 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란 말이지. 이제 좀 그럴 듯하네. 어쩐지 좀 이상하다 했지. 서로 다른 바이러스들끼리 짬뽕된다는 건 모르긴몰라도 좀 이상하잖아? (물론 나에게 그 사실여부를 판단할 능력 따위 없지만 orz)

바이러스학은 쥐뿔도 모르지만 어디 논문이라도 좀 찾아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오늘은 바쁘니까 무리. 그러고 열심히(!) 일하다(물론 주말에 팽팽 놀아버린 죄지만 orz) 문득 보니,


“슈퍼 변종플루 출현 아니다”
(코메디닷컴, 입력일T 2009.11.17 22:40ㅣ수정일 2009.11.17 22:40)


"신종플루 바이러스일 뿐이라고"

...이거 뭥미?

밀려오는 허무함에 잠시 넋놓고 있다가, 문득
"당초 영국 일간지 데일리 익스프레스 등 일부 외신은"

부분이 눈에 띄어 검색해봤더니, 네이버 백과사전의 설명 중 다음 부분이 눈에 띄었다.
선정적인 뉴스와 외신()의 심층보도로 유명한데...

선정적인 뉴스로 유명... 설마 낚인 걸까? 글쎄, 데일리 익스프레스 등... 이라고 쓴 걸 보면 데일리 익스프레스가 단독보도한 것도 아닌 것 같고, 다른 기사에 보면 '영국 북동부 지역의 권위지'라는 "노던 에코" 를 인용하고 있던데, 이건 어느 정도 수준의 신문인지 알아볼 길이 없어서 포기. 데일리 익스프레스는 네이버 백과사전에라도 올라가 있지, 노던 에코는 이거 뭐... 영국 북동부 지역의 무려 권위지씩이나 된다는데 그런 설명조차도 없으니. 하기사 네이버 백과사전이 영국 지역일간지 정보까지 제공할 거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아무튼, 오늘은 낚인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코메디닷컴 너마저 orz). 그나저나 전 세계적으로 호들갑이 심한 모양이다. 아니면 우크라이나 상태가 좀 엉망인 건가? 얼핏 검색해 보니 우크라이나 의료상태가 별로 안 좋다고 하는 것 같긴 하던데... 에이. 잠이나 자야지ㅜㅜ




p.s. 근데 정말 궁금한 게, 리노바이러스나 코로나바이러스랑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짬뽕되는 게 가능할까? 일단 셋 다 RNA 바이러스긴 한데 글쎄, 바이러스야 워낙 단순하니까 어쩌면 정말 가능할지도.

...혹시나 지나가다가 이 글을 보시는 바이러스학 고수분이 계시다면, 도와주세요ㅜㅜ



2009년 11월 14일 토요일

NASA, 2012 종말론을 반박하다

NASA "2012년 지구 멸망설, 근거없다" (한국일보 2009.11.10)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 2012라는 영화 내용이 대충 그렇고 그렇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마야달력 떡밥도 예전부터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본 것 같고... 종말론 떡밥이 유행한 게 한두번도 아닐 텐데 이번엔 도대체 뭣 때문에 NASA가 직접 나서서 저런 글까지 올리게 됐는지, 그리고 무려 NASA가 직접 올린 글 내용은 어떨지 궁금해서 찾아봤다. 관련된 글이 몇 개 있는데, 아마 여기인 것 같다.

2012: Beginning of the End or Why the World Won't End?


심심해서 한번 번역이나 해볼까 하고 시작했는데, 하다가 좀 찾아보니 비슷한 번역자료가 벌써 몇 군데 올라와 있었다. 그렇다고 중간에 관두자니 그것도 또 그렇고, 기왕에 시작한 거... 영어 연습이나 하는 셈치고 번역해 봤다. 그런데 역시 번역해 놓고 보면 문장이 딱딱해서 재미가 없다. 해서 좀 가벼운 인터넷 문체로 바꿔 볼까 하다가 귀찮아서;;; 관뒀다. 번역한 문장이 내가 봐도 어색한 건 원문을 완전히 소화하지 못했기 때문이겠지. 중간에 Q&A 형식으로 된 부분은 쉬운데(사실 그게 다긴 하지만), 앞부분 내용이나 중간 박스 부분은 영 의미가 와닿질 않아 좀 시도해 보다 그냥 포기. 아직 갈길이 멀구나 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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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 2012년에 지구에 무슨 위험한 일이라도 있습니까? 수많은 웹사이트에서 2012년 12월에 세계종말이 온다고 합니다.
답변 :  2012년 지구에 어떤 나쁜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지구는 40억년 이상 문제없이 잘 버텨왔고, 전 세계의 믿을 만한 과학자들은 2012년과 관련하여 어떤 위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질문 : 2012년에 세계종말이 온다는 예측의 근거는 무엇일까요?
답변 : 수메르 인들이 발견했다는 가상의 행성 '니부루'가 지구로 향하고 있다는 주장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사실 처음에는 2003년 5월에 지구에 충돌할 거라는 주장이 있었는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나니까 예정일이 2012년 12월로 옮겨진 것입니다. 두 이야기는 모두 2012년 동지에 고대 마야 달력의 한 주기가 끝난다는 것과 관계가 있는데, 그래서 그들이 예상하는 종말일이 2012년 12월 21일인 겁니다.

질문 : 마야 달력이 2012년 12월에 끝납니까?
답변 : 여러분 집에 걸려 있는 달력이 12월 31일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마야 달력도 2012년 12월 21일이 지난다고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그건 그냥 마야력의 긴 주기가 끝나는 것뿐입니다. 당신 집의 달력이 다시 1월 1일로 돌아가는 것처럼 마야력의 새로운 긴 주기가 시작되는 겁니다.

질문 : 행성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지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답변 : 앞으로 몇십년 동안은 행성들이 일렬로 늘어서지 않을 것이며, 지구가 2012년에 은하면을 가로지르는 일도 없을 겁니다. 그리고 설사 행성들이 진짜 일렬로 늘어선다고 해도 지구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매년 12월마다 지구와 태양은 은하수와 나란히 서게 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질문
: 니부루, 행성 X, 혹은 에리스라고 불리는 행성 혹은 갈색왜성이 지구에 접근하고 있어서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는데 그런 게 진짜 있습니까?
답변 : 니부루나 다른 행성들에 대한 얘기는 그냥 인터넷 괴담입니다. 그런 주장들에는 사실에 기반한 근거가 없습니다. 니부루나 행성 X 같은 게 진짜 있고 2012년에 지구에 충돌한다면, 천문학자들은 최소한 10년 전부터 그걸 추적해왔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쯤이면 맨눈으로도 볼 수 있을 거구요. 그런 건 확실히 없습니다. 다만 에리스는 존재합니다, 그런데 그건 그냥 명왕성처럼 외부 태양계에 존재하는 작은 행성일 뿐입니다. 에리스와 지구가 가장 근접하더라도 40억 마일* 정도입니다.
* 참고로 명왕성의 근일점(태양과 가장 가까이 있을 때의 거리)은 약 25억 마일,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는 1억 마일보다 조금 짧음.

질문 : 남북극 역전 이론(polar shift theory)은 무엇인가요? 몇 시간 혹은 며칠만에 지각이 핵에 대해 180도 회전한다는 게 사실인가요?
답변 : 자전축 역전은 불가능합니다. 대륙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기는 하지만(이를테면 남극이 수억년 전에는 적도 근처에 있었던 것처럼), 자전축이 역전된다는 주장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재난 웹사이트들이 바보같은 사람들에게 사기를 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구 자전과 불규칙하게 변화하는 지구자기장이 평균 40만년에 한번 일어나는 자기 역전 현상과 관계있다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아는 한 그런 자기 역전 현상은 지구상의 생명체에 어떤 피해도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수천년 내에 자기 역전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질문 : 2012년에 지구에 운석이 충돌할 가능성이 있습니까?
답변 : 혜성이나 소행성의 충돌은 항상 있었던 일이지만, 큰 충돌은 아주 드뭅니다. 가장 최근의 큰 충돌은 6500만 년 전에 있었고, 그 결과 공룡이 멸종했습니다. NASA의 천문학자들은 지구 근처의 큰 소행성들을 감시하는 Spaceguard Survey 라는 조사 작업을 진행중입니다. 우리는 위협이 되는 소행성들 중 공룡을 멸종시킨 것만큼 큰 것은 없다는 것을 이미 파악했습니다. 모든 작업은 공개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새로운 발견은 매일 NASA NEO Program Office website 에 올라오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2012년에 예상되는 충돌은 없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질문 : NASA의 과학자들은 종말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답변 : 2012년에 재난이나 커다란 변화가 일어날 것이란 주장들에서, 과학은 어디 있습니까? 증거는 또 어디 있습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 허황된 주장들이 아무리 책, 영화, 다큐멘터리로 나오고 인터넷에 넘쳐도 증거가 없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2012년 12월에 뭔가 일어날 거라는 그런 주장들에는 어떤 믿을 만한 근거도 없습니다.

질문 : 2012년에 큰 태양폭풍으로 인한 위험이 예상되고 있습니까?
답변 : 태양의 활동은 일정한 주기를 가지며, 약 11년 주기로 정점에 달합니다. 엔지니어들이 전자장비들을 태양폭풍으로부터 보호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고 있지만, 태양의 활동이 활발해지면 플레어로 인해 위성통신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2012년에 뭔가 특별히 위험한 일은 없습니다. 다음 태양 활동의 절정은 2012년에서 2014년 사이에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는데 평균적인 태양주기의 수준일 것으로 보이며, 예전의 태양주기들과 별 차이는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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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글에서 더 읽어볼만하다고 권하고 있는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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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을 유포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걸 진지하게 믿는 사람들의 머릿속이 난 참 궁금하지만 글쎄, 그런 사람들이라도 없으면 세상이 너무 재미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근데, 겨우 그 정도 수준의 가치라면 거기에 소비되는 순진한 사람들의 시간과 돈과 정열이 너무 아깝잖아... 바로 그래서 제대로 된 과학교육이 중요한 거고, 음모론은 쓰레기인 거다.

...그보다 NASA는 시간 지나면 자연히 유통기한이 지나서 사라질(물론 다시 부활하기는 하지만) 종말론 떡밥보다, 거의 4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쉬지 않은 떡밥인 달착륙 조작설부터 어떻게 정리 좀 해 주면 안될까. 사실 좀 시간 들이면 필요한 자료는 다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만, 비전공자의 입장에서는 귀찮은 일이란 말이지.


2009년 11월 13일 금요일

신종플루에 대한 잡생각 둘

#1. 심심해서 해보는 점쟁이 놀이

 

아마 다음주부터 신종플루 환자가 급증할 거다. 왜냐면 수능이 끝났거든.

 

...기침이 나고 열이 나도 공부가 소중했던 일부 용가리 통뼈 학생들의 커밍아웃이 시작될 테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던 일부 학생들은 그 교실에 바이러스를 퍼뜨렸을 테니까.

 

그래 봤자 계절감기 수준의 사망률을 넘어갈 것 같지는 않지만, 영유아나 노인들보다 오히려 젊은 층의 사망률이 높다는 건 좀 걱정스러운 일이다. 기껏 공부 열심히 해서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는데 대학생활의 맛도 못 보고 신종플루로 죽어 버리는 그런 눈물나는 이야기를 뉴스에서 보지 않게 되기를 바랄 뿐.

...근데 그래도 호들갑은 떨지 말자.

 

 

#2. 신종플루 음모론을 제안함

 

신종플루가 퍼지면서 너도나도 긴장 또 긴장하고 다니는 바람에 엉겁결에 엉뚱한 데서 국민건강이 증진됐다.

 

신종플루 효과? 식중독·교통사고 환자 '뚝' (조선일보 2009.11.12)

이번 겨울이 지나가 봐야 확실히 알 수 있겠지만, 최소한 지금까지 보기엔 신종플루는 그 위력에 비해 훨씬 더 과도한 관심을 받았다. 별 것 아닌 바이러스로 인해 이 정도 효과를 볼 수 있다면, 아예 정부에서ㅡ질병관리본부라던지ㅡ에서 해마다 바이러스를 만들어서 몰래 퍼뜨리는 게 어떨까? :D

 

물론 사람들이 죽으면 안 되니까 그 위력은 그냥 감기바이러스(독감 말고) 수준으로 약하게, 혹시나 돌연변이가 생겨서 이상한 놈이 탄생하면 안 되니까 RNA 바이러스보다는 DNA 바이러스로, 그리고 바이러스 게놈에다가 3'->5' exonuclease 유전자를 집어넣어서 proofreading 까지 하도록 만들어 주는 거다. :D

 

근데 언론에는 미리 이상한 정보를 흘려서 호들갑을 떨게 만드는 거지. 그러면 사람들이 잘 나돌아다니지도 않고 손도 매일매일 잘 씻을 거 아냐. 사람들이 집에 있으면 교통체증과 교통사고가 감소할 거고(더불어 인터넷 키워질의 활성화와 솔로의 증가를 기대할 수도;;; ), 손을 잘 씻으면 위 기사에 나와있다시피 기타 감염성 질환이 감소하겠지.

 

이런 거나 생각하고 있다니, 정신줄 논 듯 :D

 

 

 

 

열폭하는 당신이 진정한 루저다

그저껜가부터 갑자기 온 인터넷 세상이 '루저'로 도배가 되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서 난 또 뭔가 새로운 개그 코드라도 나왔나 하고 봤는데 이건 뭐... 루저 및 루저녀 관련 글들을 몇 개 대충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것은 답이 없다' 였다.

이번 루저 사건을 보면서 박재범 사건을 다시 떠올렸다. 두 사건의 공통점이라면, 바로 영어가 얽혀 있다는 거다. 박재범 사건 때는 현지에서는 별로 심각한 의미를 갖지도 않는 영어 표현을 가지고 멋대로 조잡한 우리식 해석을 해가면서 박재범을 몰아대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루저녀 본인도 뭔 의미인지 제대로 모르고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영어 표현을 가지고 그게 사실 미국에서는 완전 심한 욕이라면서, 거의 f**k이나 흑인에게 니그로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욕이라면서 루저녀를 몰아댄다.

미국에서 몇 년간 살면서 영어를 익힌 박재범, 각종 슬랭과 여러가지 표현의 미묘한 뉘앙스에 대해서 한국인들보다 모르긴몰라도 훨씬 더 잘 알고 있을 박재범이 사용한 영어는 멋대로 한국식 해석을 해서 박재범의 말을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으로 만들어버린 사람들이, 이번에는 자기가 사용한 표현이 미국에서 뭔 뜻으로 사용되는지도 제대로 몰랐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한 칠칠치못한 여자의 영어에 대해서는 친절하게도(!) 미국에서는 어떤 의미로 사용되네 어쩌네 하면서 역시 그녀의 말을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수준의 어떤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제발 일관성을 좀 갖자.

연애상대를 고르는 일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고, 따라서 그 선택에 있어서 유일한 기준은 '개인의 취향'이다. 그리고 적어도 그 영역에 있어서는 우리가 양성평등사회를 만들기 위해 상정한 모든 기준은 무효다. 남자들이 예쁜 여자를 선호하는 걸 '외모지상주의'를 가져다가 비난할 수 있나? 마찬가지로 돈많은 남자, 가슴큰 여자, 키큰 남자, 기타 등등... 에 대한 선호를 비난할 수 있나? 물론 뭐만 밝힌다, 속물이다... 하는 식으로 다른 사람의 취향을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고, 그런 사람들에게 '너 그러지 마'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근데, 적어도 그들의 선택은 도덕적인 비난으로부터는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행위다.

이른바 '루저녀'의 표현방식을 문제삼는ㅡ아무리 그래도 '루저'라는 표현은 지나치다는ㅡ 족속들이 있다. 그러나, '연애 상대를 고르는 기준'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개인적이며, 그 기준이 유효하게 작용하는 범위도 어디까지나 그 개인의 마음(혹은 머리) 속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러한 개인의 기준을 표현하는 방식, 어휘를 물고 늘어지는 것부터가 배를 산으로 몰고 가는 짓이다. 아니, 애초에 그 발언에 대해서 진지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그런 걸 가지고 당사자의 인터넷 사용기록 추적에 사생활 실시간 스토킹까지 하고 있는 걸 보니 우리나라 네티즌들은 정말 시간이 많은 것 같다.

제발 자존심이란 걸 좀 갖고 살자. 무슨 진지한 프로그램도 아니고, 그냥 좀 생긴 여자애들 불러다 앉혀 놓고 별 쓸데없는 것들 가지고 시시덕대는 프로그램에서 나온 얘기에, 그것도 지극히 개인적인 얘기에, 더군다나 과장과 설정이 들어갔을 가능성이 다분한 얘기에 왜 굳이 자신을 끼워맞춰서 스스로 루저가 되고 앉았느냐는 거다. 자기가 루저인지 아닌지는 자기 자신이 결정하는 거다. 모든 건 당신 마음에 달렸다. 당신 인생은 겨우 그 정도의 값어치밖에는 없나? 열폭하는 당신이 진정한 루저다.

"취향이라능. 존중해 달라능..."

이른바 '오덕'들을 비하할 때 우스개로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지만, 그 말의 울림은 절대로 그렇게 가볍지 않다. 조금 과장을 섞어 말하면,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현대 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이리라. 물론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취향들만이 존중받을 수 있겠지만.



2009년 11월 10일 화요일

호들갑은 떨지 말자 #1

최근 충남대 서상희 교수와의 인터뷰라면서 아래와 같은 내용의 글이 여러 군데 돌았다.

<충남대 서상희 교수 인터뷰>


링크를 안 하고 굳이 전문을 여기다 복사해둔 건 도무지 원 출처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검색어를 이리저리 바꿔가면서 검색해본 결과 위 글이 블로고스피어나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 돌기 시작한 건 11월 2일부터인 걸로 추측된다. 위 글과 같은 내용의 글이 가장 먼저 올라온 곳은 아무래도 여기인 것 같다(11월 2일 오전 8시경).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global&uid=122159

근데 이거, 읽고 있자니 정말 찝찝한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서프라이즈에 올라온 글에도 출처는 네이버 블로그라고 달려 있는데, 그 "네이버 블로그"를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는 거다. 원글이 인터뷰 형식으로 되어 있다는 건 누군가가 서상희 교수를 인터뷰했다는 건데, 설마하니 일개 블로거가 서상희 교수를 인터뷰하는 데 성공해서 그걸 자기 블로그에 올렸을 것 같지는 않다. 또 서상희 교수쯤 되는 사람이 일개 블로거의 인터뷰 요청을 받아들여 저렇게 시간을 내줬을 것 같지도 않고. 그래서 혹시나 서상희 교수가 자기 생각을 혼자 인터뷰 형식으로 풀어서 쓴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봤는데, 대충 검색해본 결과로는 서상희 교수는 네이버 블로그 따위 없다. 충남대 수의대 홈페이지에 딸려 있는 서상희 교수의 홈페이지나 미니홈피에도 위 인터뷰와 관련된 어떤 내용도 없다.

한편, 서 교수가 언론과 한 인터뷰 중에 위 글과 (그나마) 비슷한 것들이 있었는데, 다음과 같다.
"AI 대유행시 인류 멸망할 수도. 인플루엔자 대유행, 인류의 영원한 화두" (뉴스한국 2009.9.9)
“신종플루 백신 안전성 철저한 검증을” (대전일보 2009.10.9)

보면 윗글과 비슷한 내용이 어느 정도 들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위 뉴스한국이나 대전일보 인터뷰에 없는 내용도 들어 있고, 비슷한 내용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같은 인터뷰 내용을 가지고 쓴 거라고는 보기 힘든 표현의 차이나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 혹은 내용 배치의 차이 등등... 아무튼 찝찝한 구석이 많다. 최근에 인터넷에 돌던 맨 위의 글은 아무래도 뉴스한국 인터뷰를 기본으로 해서, 서상희 교수 관련 몇 개의 기사와 (누군지 모를) 글쓴이의 창의력이 조금 가미되어 만들어진 것 같다. 한 마디로, 조작인 것 같다는 얘기다.

그리고 또 한가지 찝찝한 것은, 누가 무슨 의도로 만든 건지는 모르겠지만, 과장되었거나 잘못된 내용이 많다는 거다.

...게다가 정부 당국과 A 제약회사의 유착관계로 인해 국민의 생명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시기를 놓쳤다며 둘 다 국민에게 큰 죄 를 짓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런 독감 대유행에 관한 정부 정책 시행은 직접 바이러스를 연구하고 팩트를 가지고 있는 전문가에게 자문 을 구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비전문가들의 추측성 말만 믿은 결과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

 글쎄, 일단 정부당국과 모 제약회사의 유착관계는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다. 그건 그렇고, 독감 대유행에 관한 정부 정책 시행은 일차적으로 역학이나 공중보건학 전공자들의 일이다. 해당 병원체를 연구하는 전문가의 의견 역시 중요하겠지만, 어디까지나 자문역일 뿐이다. 서상희 교수도 수의과대학을 졸업했고, 수의학과에도 수의공중보건학이라는 과목이 있는 모양이지만,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예방의학이나 공중보건학과는 좀 컨셉이 다른 과목인 것 같고, 또한 현재의 서상희 교수는 역학 전문가가 아니라 바이러스학 전문가다. 그런 정책 결정 과정에 있어서는 서상희 교수 같은 사람들보다도 역학 전문가들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맞다. 지금의 상황이 역학 전문가들의 판단 착오 때문이라면 안타까운 일이고, 애초에 그 자리에 역학 전문가들도 아닌 전혀 엉뚱한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면 그건 욕을 먹을 일이지만...

...또한 정부와 모 제약회사가 지금 생산한다는 백신은 동물실험도 안 거친 상태인데다 면역증강제를 쓴 백신을 대량으로 접종할 경우 분 명 사망자가 나올 것이라며 그렇지 않아도 짧은 시간에 대량으로 제조한 백신을 맞아야 하는 상황에서 부작용이 없을 수는 없는 데 큰 일이라고 말했다. ...

 그 '모 제약회사'가 어딘지는 모르겠다. 근데 그게 녹십자라면 이 부분은 다 틀렸다. 녹십자에서 개발하여 지금 접종중인 백신은 동물실험과 임상시험 모두 통과했고, 면역증강제도 안 들어가 있다.

...지난 27일부터 접종이 시작된 신종플루 백신은 (주)녹십자가 자체 개발·생산한 그린플루-에스다. 이 백신은 지난 6월 시제품 생산에 착수한 뒤 3~4개월여 만에 동물실험과 임상시험을 모두 마쳤다. 일반적으로 백신 개발부터 허가가 1~2년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에 비해 이번 신종플루 백신은 신속심사를 거쳤다....

신종플루 백신 부작용 없다고 하지만... (코메디닷컴 2009.10.30)


녹십자가 면역증강제를 사용해 내년에 생산 예정인 신종플루 백신 중 1000만 도즈 가량이 정부와 추가 계약될 전망이다. 현재 정부가 확보한 백신은 1200만 도즈(면역증강제 미사용)로, ...

녹십자, 신종플루 백신 1000만 도즈 정부와 추가 계약할듯 (헬스코리아뉴스 2009.10.26)

 
...서 교수는 지난 5월 세계 최초로 신종플루 백신을 만드는데 성공했지만 정부가 의도적으로 쓰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
 내 주제에 이런 말 해도 될지는 모르겠는데, 서상희 교수의 자질을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솔직히 이 대목이 조작이었으면 좋겠다. 근데, 아무래도 이 분은 진짜 진지하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중앙일보) ... 지난 5월 백신개발이후 복지부에서는 백신생산 초기 단계인 ‘후보 바이러스주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으며, 식약청에서는 ‘실험적 연구로는 의미가 있을 수 있으나,

              WHO에 의해 백신 생산용으로 검증되지 않은 만큼, 동 연구결과를 백신 생산과 연관

              지어 확대 해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두 기관에서 본인의 연구를 평가

              절하하는 것은 아닌가?
(서상희) 서운함 마음을 가진 것도 사실입니다. ...

[인터뷰] 독감바이러스 권위자 충남대 서상희 교수 (중앙일보 2009.10.6)


(서상희) ... 신종플루 표준바이러스를 국가기관보다 먼저 입수했고 백신 개발에도 성공했다.

             국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이것을 무상 제공할 용의도 있다고 밝혔다. ...
(대전일보) 보건복지가족부나 식양청에서는 이것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서상희)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그 전에도 이와 유사한 일이 반복됐다. 해외에서는 인정하는

            데, 국내에서는 오히려 평가절하하는 풍토에 대해 서운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 이유를

           안다....
(대전일보)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일종의 ‘괘씸죄’에 걸린 것인가?
(서상희) 많은 일들이 있었다. ...

“신종플루 백신 안전성 철저한 검증을” (대전일보 2009.10.8)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난 이런 음모론적 사고방식은 무지 싫어한다. 일단 그들이 그들의 음모론에 대한 근거라고 제시한 것들은 확인 혹은 통제가 가능한 사안이 아니다. 맞는지 틀리는지 확인할 방법도 없는 주장을 징징대면서 계속 반복재생하고 있으니 정말 짜증나는 일이다. 게다가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그들은 항상 옳고, 또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 해 왔으며, 모든 문제는 외부의 (부패한) 권력집단 때문이다. 즉 모든 원인이 외부 때문이며 자신은 아무 잘못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주변 환경이 아무리 변해도 이 사람들은 안 되면 남 탓만 하기 때문에 발전이 없다. 예전에 서상희 교수가 세계 최초로 신종플루 백신을 개발했고, 그걸 미국 CDC에 보냈다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그 후로 어떻게 됐는지 한번 보자면,

...앞서 5월말 서상희 교수팀은 자체 개발했다는 후보바이러스를 미CDC(질병통제예방센터)에 우송한 바 있으나, CDC측은 서 교수의 바이러스를 두고 "서 교수가 사용한 방법은 (백신) 후보로서 적합하지 않으며, 고려하고 있지도 않다"고 미CNN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

일양약품 "충남대와 신종플루 백신 개발" (아시아경제 2009.6.15)


참고로, 서상희 백신에 대한 식약청과 보복부의 반응을 보면,


... 이에대해 식약청 관계자는 18일 정책설명회에서 “현재 일양약품의 신종플루개발은 2~3년은 걸린다고 봐야한다”면서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복지부 또한 “서 교수팀의 신종플루 백신 개발 보도는 백신생산 초기 단계인 ‘후보 바이러스주’인 것으로 추정된다”며 신종플루 대유행에 대비하기에는 물리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

 ...해외에서는 인정하는데 국내에서는 오히려 평가절하한다면서? 저 기사 내용만 보면 오히려 미국 CDC의 평가가 보복부나 식약청보다 더 가혹해 보이는데. 미국 CDC마저도 한국정부와 보복부 식약청에 손에 놀아나고 있는 걸까? 세상엔 참 다양한 종류의 매트릭스가 존재하는 것 같다. 아무튼, 서상희 교수팀의 백신은, 뭔가 만들기는 했는데 뭔가 좀 부족하다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이 이후 내용에 대해서도 뭔가 해보고 싶은 말은 많지만, virology를 제대로 공부한 적도 없으면서 덤벼드는 건 너무 무모한 짓인 것 같아서 관둔다. 귀찮기도 하고... 다만 계속되는 정부와 모 제약회사 유착 음모론과, 공중보건학의 영역과 자신의 영역을 구분하지 못하는 모습, 면역증강제 첨가 여부에 대한 일관된 착각. 기껏 긴 글을 시간내서 읽은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 일이다. 더군다나, 맨 마지막에, 보복부와 식약청에서 2~3년 정도 걸릴 거라고 예상한 바로 그 백신. (세계 최초로 개발했으나) 미국 CDC 에서 부적합하다고 판단한 바로 그 백신을 어쨌든 공장 완공되면 대량생산하겠다고 큰소리치고 있으니 참 걱정된다. 국민건강은 둘째치고(그런 백신이 돌아다니는 건 보복부나 식약청에서 적절히 차단해줄 테니까), 괜히 애먼 회사 하나ㅡ일양제약ㅡ말아먹는 건 아닌지 참 걱정이다...


 조작된 내용으로 보이는 부분을 빼고 보면 좀 양호한 편이지만(...사실 그런 것 같지만도 않다 orz), 서상희 교수가 인터뷰에서 직접 한 말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에서도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잘 모르고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필요 이상으로 위험을 과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쯤 되면 (정말 이러고 싶지는 않지만) 서상희 교수의 의도가 의심되기도 한다. 나름 공부 좀 한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궁금해서 BRIC에 가 봤는데, 서상희 교수의 인터뷰에 대한 BRIC의 반응은 싸늘한 편이다. (정말이지 어떤 댓글러의 말처럼 연구비가 다 떨어져가는 건 아니신지... )

http://bric.postech.ac.kr/myboard/read.php?Board=sori&id=38048
http://bric.postech.ac.kr/myboard/read.php?Board=sori&id=25587
http://bric.postech.ac.kr/myboard/read.php?Board=sori&id=25167
http://bric.postech.ac.kr/myboard/read.php?Board=sori&id=25307

http://bric.postech.ac.kr/myboard/read.php?Board=sori&id=27869


그리고 결정적으로 서상희 교수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는 건,

Science. 2005 Mar 4;307(5714):1392.

Infectious diseases. Experts dismiss pig flu scare as nonsense.
Enserink M.

 

2005년 사이언스지에 뉴스 형식으로 가볍게 실린 내용인데, 원문은 셀프 :D ...고, 그 내용만 아주 간단히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2004년 말 서상희 교수 팀에서 한국 돼지에서 나온 바이러스의 것이라면서 Genbank에 몇 개의 partial RNA 시퀀스를 올렸다. Niman 이란 사람이 그걸 보고 WSN/33이라는 바이러스와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 WSN/33은 실험실에만 있고 자연에 존재하지 않으며, 매우 위험한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Niman 은 그걸 WHO에 알렸다.

 WHO에서는 단순한 실험실 실수인 것으로 판단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그래도 Stohr 라는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했다. Stohr 은 RNA 시퀀스를 검토한 결과 실험실 실수로 플루 바이러스와 WSN/33 이 섞인 것(RNA contamination)으로 결론지었다. 서상희 교수와 같이 일한 적이 있는 Webster 도 서상희 교수가 자기 실험실에서 WSN/33을 받아간 적이 있다며 contamination 설에 무게를 실어 주었다.
 
 그러나 서상희 교수는 WSN/33 같은 거 받은 적 없다며 부인. 다른 랩에서 contamination 아니란 걸 입증해 줄 것이라며 샘플을 Peiris 랩과 Kawaoka 랩에 보냈다. 그러나 해당 랩들에서는 대답을 거절했다. 한편 한국의 수의과학검역원에서도 실험결과 재현에 실패했다고 알려 왔으며, 분자생물학자 Fouchier 또한 contamination 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Niman 은 굴하지 않고 자기 홈페이지에 계속 관련된 글을 썼으며. 결국 Nature에서 Niman의 주장을 실어 주었다. 이에 짜증난 Stohr 은 Niman 은 연구성과도 별로 없으며 플루 전문가도 아니라고 까발렸고, Webster 또한 인터넷에서 사람들 선동하기가 너무 쉽다며 거들었다......

 

뭐, 판단은 알아서들 할 일이지만, 기사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한 마디가 참 가슴을 울린다.

 

"It’s so easy these days for somebody with a Web site to create a lot of panic.”


 RNA contamination 이야 일차적으론 직접 실험한 사람 책임이겠지만, 그게 Genbank 까지 올라갔다는 건 그 실수를 집어낼 능력이 그 랩에 없었다는 얘기고, 그건 좀 문제다. 그리고 이쯤 되면 (아마 그 랩의 지도교수였을) 서상희 교수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더구나, WSN/33 샘플을 준 사람은 있는데 받은 사람은 없는 상황이라니. 이런 말까지 해도 되나 싶기는 한데, 황우석 부류의 냄새가 난다. 또 (자칭) 세계최초 신종플루 백신개발과 관련한 피해의식과 음모론에서는 광우뻥 당시 우희종/우석균/박상표 부류의 냄새도 난다. 뭐 아직까지는 그들에 비하면 훨씬 양호한 상태인 걸로 보이지만 까딱 방심하면 언제든 그들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 같은 가능성이 엿보인다. 무려 Nature medicine 까지 쓰신 분이 어떻게 저럴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황씨는 사이언스도 썼는데 뭐. 어쩌면 그리 머지 않은 미래에 황우석-김양곤-양동봉 등과 함께 대한민국이 낳은 위대한 과학자의 반열에 올라설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2009년 11월 7일 토요일

헌혈이 심장에 무리를 준다고?

최근에 여러 사이트에서 아래와 같은 글이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대충 검색해보니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몇 달 전에도, 작년에도, 그리고 몇 년 전에도 돌았던 모양이다. 그럼 도대체 원 출처는 어디일까 궁금했지만 이런 글의 특성상(...) 추적이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되어 그만 포기.

헌혈의 진실(...일 리 없지만 아무튼 펼치기)


참 글이 짜집기에 내용도 중구난방인 것만큼이나 여러 사이트에서 거기 달리는 반응들도 중구난방이었다. 다만 개인적으론 우리나라에서 적십자의 이미지도 참 나쁘다는 걸 알게 됐다는 게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달까. (근데 도대체 왜? 의사라면 다 까고 보는 사람들이니 불똥이 적십자에도 튄 걸까? ) 아무튼, 대충 돌아다니면서 살펴본 네티즌들의 "적십자 까는 패턴" 은 대개 아래의 패턴 중 하나로 보였다.

1. 헌혈증 내면 공짜라더니 천원밖에 안 깎아준다 (윗글 33세 가장의 유형)
1-1. 헌혈증 내면 우선적으로 수혈해주는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2. 적십자가 제약회사에 피팔아 돈번다
2-1. 적십자가 혈액사업 독점했다
2-2. 적십자 비리 많다
3. 헌혈 위험하다
3-1. 에이즈, 간염 ㅎㄷㄷ
3-2. 심장에 무리가 간다

글쎄, 그 즈음 해서 이글루스의 Charlie님이 쓴 글이나, 대한적십자사의 해명글(직접링크가 걸리지 않는다-_-; 상단 질문나눔이-자유게시판-헌혈에 대한 진실)로 대부분의 의혹(애초에 그런 의혹들이 제대로 된 근거를 갖고 있지도 않았지만)은 해소되었을 거라고 본다(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저렇게 해 줘도 그 모든 게 조작이고 음모이며 우리는 적십자의 혈액매트릭스에 살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을 거다).

저 글을 처음 보고는 나름 재밌어서 마침 아직 집에 굴러다니고 있던 법규 책 뒤져가며 혈액관리법 공부도 하고 그랬는데(그 결과 대부분 개소리임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보다 더 관심이 갔던 건 바로 "심장에 쇼크가 누적돼서 나이들면 고생한다"는 소리. 물론 이 주장 또한 근거는 없었다(아니, 있었다. '아는 의사'가 그랬다! 고......).

그래서 자료를 한 번 찾아봤다. 사실 쉽지 않았다 orz 한참을 PubMed랑 씨름한 후에야 적절한 검색어를 찾을 수 있었고, 참고할 만한 논문들이 검색에 걸리기 시작했다. 근데,

헌혈과 심장질환 사이의 관계를 살펴본 논문 따위 아무리 찾아봐도 개뿔 없는 거다.

헌혈의 합병증complication 혹은 부작용adverse effect에 대해서 다룬 논문들은 왕왕 있었는데, 맨 혈종hematoma이나 멍 bruise, 끽해봐야 일주일 갈까말까 한 헌혈부위 변색이나 통증이고. 좀 심한 케이스로 나오는 게 혈관미주신경성 반응vasovagal reflex로 인한 실신 정도니 영 재미가 없는 거다. 오죽하면 사실 실신하는 건 별 문제가 아닌데 실신하는 과정에서 넘어져 다치는 게 더 큰 문제라고 할까. 몇 건의 논문을 살펴봤는데 미국 적십자의 BH Newman 이란 사람이 잘 정리해놓은 것 같다.

Curr Opin Hematol. 2004 Sep;11(5):339-45.
Blood donor complications after whole-blood donation.
Newman BH.

원문은 셀프 :D ...지만, 대강의 내용이 정리된 표 하나만 옮겨 보면(저, 저작권...;; )

(클릭하면 커집니다)


이 사람들은 두 번 조사를 했는데, 한 번은 헌혈하는 바로 옆에서 관찰, 한번은 헌혈 3주 후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헌혈한 자리에 멍이 들거나 통증이 생기는 경우는 흔하고, 어지럼증을 느끼거나 실신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는 모양이다.

물론 신체에 아무 손상없이, 아무 영향없이 피만 뽑아낼 수 있다면야 참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즉, 헌혈을 할 때도 예상되는 부작용을 고려해서 나름 손익계산을 해야 된다는 얘기다. 팔에 멍들거나 좀 아픈 건 기껏해봐야 일주일이고, 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니 사람에 따라서 좀 어지럽거나 다른 전신적 반응을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 역시 길어야 일주일. 그래서 헌혈한 당일은 격한 운동은 자제를 해 줘야 되는 것이고... 혈관미주신경반응은 헌혈행위 자체보다도 헌혈자의 정신적, 심리적 상태에 더 큰 영향을 받는 문제니까 사전에 충분한 설명과 긴장 및 불안감 해소, 그리고 통증을 최소화하는 게 중요하겠지(특히 처음 헌혈하는 사람일수록 더더욱). 헌혈 끝나고 바로 떠나지 말고 15분 정도 쉬다 가는 것도 좋겠고.

이 정도 리스크까지 감수해 가며 도저히 헌혈을 할 수 없다 하는 사람은 헌혈을 안 하면 된다. 다만 그걸로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기는 쉽지 않을 거다.

...이상이 헌혈시 발생할 수 있는 나름 '흔한'부작용들이고, 애초의 주제였던 심장으로 돌아가 보면,
표의 맨 아랫줄에 MI, stroke, etc 등이 있고, very rare 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없지 않다는 얘기다. Newman은 헌혈로 인한 심장질환과 관련하여 3편의 논문을 참고하고 있는데, 해당 논문들은 아래와 같다.

Complications arising in donors in a mass blood procurement project.
Am J Med Sci 1945, 209:421–436.
Boynton MH, Taylor ES

Reports of 355 transfusion-associated deaths: 1976 through 1985.
Transfusion 1990, 30:583–590.
Sazama K

Severe outcomes of allogeneic and autologous blood donation: frequency and characterization. Transfusion 1995, 35:732–737.
Popovsky MA, Whitaker B, Arnold NL

두 번째와 세 번째 건 원문 파일을 구할 수가 없었고(도서관에 가면 복사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영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orz), 오히려 무려 1945년에 나온 첫 번째 논문의 PDF 파일이 구해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Boynton의 1945년 논문은 1942년부터 1944년까지 미국에서 행해진 약 700만건의 헌혈(350만명의 헌혈자)을 대상으로 합병증의 발생을 조사했는데, 그 중 18명에서 헌혈 48시간 이내 심장질환이 발생했고, 그 중 10명이 사망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저자가 보험회사의 자료를 인용하면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는 일반적인 심장질환 사망률과 차이가 '없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고려할 점은, Boynton의 조사는 1940년대에 이루어졌고, 지금은 2009년이라는 점. 피 뽑는 기술도 많이 발전했을 테고, 헌혈자 선별하는 기준도 더 엄격해졌다. (실제로, 당시 헌혈 후 사망한 사람들을 지금 기준으로 검사하면 반 이상이 헌혈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된다)

그래서 결론, 헌혈의 위험성은 저 정도라는 거다. 물론 똑같은 숫자를 보여 줘도 개개인이 느끼는 위험의 크기는 다를 수 있다. 문제는 그게 얼마나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느냐는 거겠지. 어쨌든 위의 자료만 놓고 얘기할 수 있는 건,

"헌혈하고 심장질환으로 죽을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P
(물론 헌혈이 원인이라는 증거 따위는 없다. 즉 애초에 심장마비로 죽을 사람이 마침 헌혈을 했단 이야기 :D)

...그러니까 나한테 저걸 해석하라고 하면 '하나도 안 위험하니까 걍 헌혈하삼' 이라고 대답할 거다.
물론 "그래도 지금 헌혈이 100% 안전하다고 보장할 수 없다는 거잖아요!!!" 라고 개드립칠 사람들이 눈에 선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뭐. 광우뻥 때도 그렇고 하루이틀 보는 일도 아니니 :D

다만 아쉬운 건, 헌혈 심장쇼크 드립을 치는 사람들 주장의 요지는 '심장에 쇼크가 누적되어 먼 훗날 문제가 생긴다'는 건데, 그걸 확인할 수 없었다는 거다. 지금까지 본 사망사례들은 헌혈 후 48시간 이내에 발생한 것들이니까. 그걸 확인하려면 젊어서부터 헌혈 많이 한 사람들이랑 헌혈 안한 사람들을 선정해서 계속 추적, 심장질환 발병률을 추적해야겠지? 한 20년 정도 걸릴까? 통계적으로 제대로 된 결과를 뽑아내려면 표본 크기는 얼마나 잡아야 될까? 이런 거, 가능하기는 할까? 글쎄, 그런 거 전산 데이터베이스 관리만 잘 된다면 어떻게 생각보다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다 orz

근데, 애초에 아무 자료가 없는 상황이라면 처음부터 그런 주장을 펴는 것 자체가 문제인 거잖아 :D 근거를 가지고 오라는 말은, 도대체 어디서 뭐하는 누가 어떤 상황에서 한 말인지도 모르는 말을 들고와서는 '아는 의사가 그랬음ㅇㅇ'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해줘야 되는 말이다. 헌혈은 안전하다. 설마 또 사전예방의 원칙 어쩌고 하면서 안전하다는 증거가 없으니까 일단 위험하다고 봐야 된다는 족속들은 없겠지. 난 헌혈로 인해 심장에 무리가 가서 죽을 가능성보다 불의의 사고를 당했는데 혈액이 모자라 죽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데 100원 걸겠다.

이쯤에서 앞부분에 썼던 적십자 까들의 패턴을 다시 한번 살펴보면,

1. 헌혈증 내면 공짜라더니 천원밖에 안 깎아준다 (윗글 33세 가장의 유형)
1-1. 헌혈증 내면 우선적으로 수혈해주는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2. 적십자가 제약회사에 피팔아 돈번다
2-1. 적십자가 혈액사업 독점했다
2-2. 적십자 비리 많다
3. 헌혈 위험하다
3-1. 에이즈, 간염 ㅎㄷㄷ
3-2. 심장에 무리가 간다

적십자의 해명자료로 빨간 글씨로 된 것들이 충분히 설명이 되리라 본다. 내가 알아보고 싶었던 건 어디까지나 3-2에 국한되어 있었던 거다. 물론 적십자 자료에서도 500회 이상 헌혈한 사람의 사례를 들고 있고... 자, 그래서 이제 적십자 까면서 헌혈 안하겠다는 사람들에게 남아 있는 옵션은 "2-2. 적십자의 비리"뿐. 그래, 까는 것도 좋고 헌혈 거부하는 것도 좋은데, 앞으로는 그러면서 다른 이유 대는 꼴은 안 봤으면 좋겠다. 그들에게 남은 구실은 단 하나다. '적십자 비리 때문에 싫어요!' (있는지 없는지 난 모르겠지만... ) 그런 이유라면야 그들의 존중도 조금은 취향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난 헌혈하라면 할 거지만.

세줄요약 :
1. 헌혈이 심장질환을 유발한다 -> X
2. 헌혈하면 심장에 쇼크가 누적되어 장기적으로 안 좋다 -> 전혀 근거없음
3. 헌혈 ㄱㄱ



p.s. 근데 도대체 누구였을까? 뭐 하는 사람이었을까? 도대체 왜? 설마하니 수혈을 거부하는 모 종교단체와 관계있는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