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24일 목요일

크리스마스 음모론

널리 알려진 바에 따르면, 예수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물론 소설 다빈치 코드를 비롯하여 막달라마리아와 결혼해서 자손이 있다는 설이 있지만, 적어도 현재의 통설은 예수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로, 예수는 솔로다. 또한 예수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는 '동정녀 마리아'로 칭해진다. 즉, '동정'이므로 역시 솔로인 것으로 볼 수 있겠다. 그래도 결혼하지 않았느냐는 반론이 나오겠지만 무시하자. 어쨌든 동정이란 게 중요하다.


남자가 스물다섯이 넘어서도 동정이라면 마법을 쓸 수 있게 된다고들 하지 않는가. 이는 결혼했는지의 여부보다 중요한 것이 '동정인가 아닌가' 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즉, 예수는 결혼하지 않았으므로 솔로고, 성모는 결혼했지만 동정이므로 솔로라는 것이 이 글의 기본 전제다.

 

즉, 크리스마스 유래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두 사람이 모두 솔로다. 그런데, 왜 크리스마스는 세간에서 연인, 즉 커플들의 날로 인식되는가?

 

이제부터 그 이유를 기독교와 유대교 사이의 갈등관계에서 찾아보려 한다.


기독교와 유대교는 같은 기원을 갖는데, 기독교는 삼위일체설에 따라 예수를 메시아로 간주하며 성부, 성령과 동격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유대교에서는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두 종교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게 되고, 이에 유태인들은 예수의 생일로써 기념되는(실제 생일은 다른 날이라 하지만)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퇴색, 변질시킴으로써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기독교인들을 조롱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모진 수난의 역사를 겪으면서도, 세계 각지에 흩어져서도 자신들의 정신적 뿌리를 잃지 않고 절치부심하여 착실히 재력을 쌓은 유태인들. 수백년에 걸쳐 절치부심한 끝에 결국 세계의 자본과 미디어를 장악하는 데 성공하고, 사실 두 솔로의 날인 크리스마스를 커플들의 날로 바꿔버리려는 원대한 계획이 실행된다.

 

우선 주요국의 행정부에 압력을 가해 크리스마스를 쉬는 날로 만든다. 나라에 따라서는 새해까지 휴가가 이어지기도 한다. 생업에 바빠 만나지 못하던 커플들이 만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된다.


그리고 세계의 문학가들을 매수하여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하는 애절한 러브스토리들을 써내게 한다. 대표적으로, 남편은 줄 없는 시계를 팔고, 아내는 애지중지하던 긴 머리를 잘라 서로의 선물을 마련하려다 서로가 서로를 낚는 크로스낚시의 비극적 결말로 끝나는 어떤 부부의 이야기가 있다. 그 외에도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면서 배경이 크리스마스인 문학작품들은 찾아보면 많다.

 

그러니까 왜 굳이 크리스마스여야 하는가? 연인이나 부부는 물론이고, 가족을 비롯한 더 큰 단위의 혈연관계도 결국 남녀 커플을 기본으로 하기에 두 '솔로'의 날인 크리스마스의 정신과는 맞지 않는다. 복날 온가족이 다같이 모여 앉아 하하호호 웃으며 개를 잡으며 가족애를 다지는 소설은 왜 없는가? 일년 중 농사일로 가장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 봄철이나 추수철에 온 가족이 같이 밭에서 일하며 흐르는 땀방울 속에 가족애를 다지는 내용의 소설은 왜 없는가?


예술을 한다는 것은 언제나 배고픈 일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역사 속 위대한 예술가들의 삶이 이를 증명해 준다. 자본을 가진 집단이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배고픈 예술가들을 매수했다는 추측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은가?

 

크리스마스를 연인들의 날로 변질시키는 데 성공한 유태인들의 두 번째 음모는, 크리스마스를 흥청망청 쓰는 날로 변질시키는 것이다. 예수는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고, 성모도 겨우 마굿간에서 예수를 낳았다. 예수 탄생의 의미를 생각하며 더욱더 어려운 곳에 눈을 돌리고 무절제한 소비를 경계해야겠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닐까?

 

이러한 생각을 깨뜨리기 위해서 두 가지의 음모가 실행되었는데, 그 첫 번째가 앞에서도 언급한 문학가들을 이용한 공작이다. 항상 가난하고 어렵게 살던 부부는 왜 굳이 '크리스마스'에 아끼던 시계를 팔고 머리를 잘라 가면서까지 상대방에게 줄 선물을 마련해야만 했을까? 항상 알뜰하고 검소한 삶을 살던 한 노인이 꿈속에서 죽은 친구의 망령을 만나고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소비'를 하기로 결심한 날은 왜 하필 '크리스마스'였을까? 사람 사이에 특별한 날이 크리스마스밖에 없을 수는 없지 않은가. 생일도 있고, 백일 이백일 일주년 이주년... 기념일은 차고 넘친다. 또한, 아무리 서구사회가 기독교 문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지만 특별한 날이 크리스마스밖에 없는 건 아니잖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문학 작품들 속에서 주인공의 심경 혹은 행동의 변화를 일으키는 어떤 계기가 되는 특별한 날이 '크리스마스'인 경우가 유난히 많은 건 단지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그 두 번째는 산업과 매스미디어를 이용한 공작이다. 첫째에서 밝혔듯, 문학작품을 이용하여 크리스마스에는 소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사람들 마음 속에 심은 후, 자본과 미디어를 대대적으로 투입하여 소비를 유도한다. 상점에는 갖가지 삐까번쩍한 고가의 상품들, 거리에는 기분을 들뜨게 하는 각종 장식물, 그리고 최종적으로 이미 장악한 각종 매체를 통해 은연중 소비를 권장한다. 결정적으로 이 모든 것은 '크리스마스'에 하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 결과, 크리스마스에만 통하는 일회성 상품과 행사가 남발되어 각종 재화와 에너지와 사람들의 정신과 체력 등이 무분별하게 소비되고 결국 크리스마스가 지난 후 공해와 각종 쓰레기, 피로, 허탈감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이제 더 이상 크리스마스에 원래 그 날의 주인인 두 솔로와 가난함 속에 꽃핀 그들의 위대함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음모는 성공하였다.

 

이것이 '커플들의 날' 크리스마스의 이면에 숨은 음모!
현혹되지 말고 슬기롭게 크리스마스를 넘기는 지혜가 필요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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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뻘글 하나씩 쓰기' 이를테면 뭐 그런 걸 하고 놀았던 적이 있다. 세 번인가 네 번인가 하고는 그만뒀지만. 이 글은 2005년에 처음 썼던 글인데, 개인적으로 참 마음에 들어서 매년 이맘때쯤 생각날 때마다 조금씩 다듬어 보곤 한다. 올해는 문구 몇 군데 수정하고 짤방을 넣어 보았다. 참고자료라던가 근거 같은 게 전혀 없는 건 이 글이 음모론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관계가 잘못된 내용들이 분명 있을 것 같지만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원래 음모론에 그런 걸 기대하면 안 되는 거다. 음모론이 왜 음모론인데... 참고로 난 무신론자다.

의욕적으로 뭔가 좀더 고쳐 보고 내용도 더 넣어 볼까 하고 있었는데, 문득 보고 있던 뉴스에서 '성탄절 음모론'에 대한 기사가 나왔다. (관련기사 : 성탄절 음모론) 보고 있으려니 이 글의 '두번째 음모'와 거의 비슷한 내용이었다. (물론 유태인 음모론 같은 허무맹랑한 소리는 아니다...) 아무튼, 나와 똑같은 생각을, 그것도 진지하게 하고 있는 사람들이 일련의 집단을 이루고 있다는 소식에 김이 새버렸다.

아무튼, 이번 크리스마스는 화창한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씨였으면 좋겠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일도 출근해야 되는데 눈이나 비가 오면 길이 막혀 출근하는 데 오래 걸리고 날이 추우면 내가 힘들기 때문에 이러는 거다. 절대로 화이트 크리스마스 운운하면서 크리스마스에 눈이 오면 좋아할 어떤 사람들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빨간 날인데 출근이라니. 그것도 평소보다
30분 더 일찍. 거기다 아무래도 하루종일 있어야 될 것만 같은 느낌. 아, 도대체 난 무슨 생각으로 실험계획을 이딴 식으로 세운 거지...

흥, 크리스마스 따위...

2009년 12월 23일 수요일

촘스키, 부적절한 권위.

사실 몰랐는데, 매년 12월 10일이 유엔에서 정한 '세계 인권의 날' 이라고 한다[footnote]http://100.naver.com/100.nhn?docid=92593[/footnote]. 그리고, 그 즈음해서 아래와 같은 기사들이 여러 신문에서 떴다.


그리고 저 기사들이 수많은 커뮤니티 사이트들과 카페, 블로그 등에 퍼날라졌다. 그래, 용산참사나 국보법 기타 등등 저 기사들에서 언급되는 사건들은 분명 논란의 소지가 충분히 있고, 그걸 가지고 이명박과 이명박 정부를 비판할 수도 있다. 근데, 아무리 그래도 아래와 같은 식의 제목뽑기는 좀 너무한 거 아닌가?

촘스키 “MB정부 민주주의 탄압 중단하라”
촘스키 등 국제저명인사 173명 성명 (한겨레. 2009.12.09)


어쨌든, 성명 발표의 주체는 '민주주의 수호 공안탄압 저지를 위한 시민사회단체 네트워크'(민주넷)고, 촘스키를 포함한 173명은 그 성명서에 서명한 사람들이다. 근데 그걸 가지고 촘스키가 주체가 되어서 한국 정부에 한마디 한 것 같이 기사를 쓰는 건 좀 아니잖아. 수많은 인터넷 사이트와 블로그에도 그런 식의 제목을 달고 퍼져나갔고.

호들갑은 떨지 말자. 아무리 MB와 한나라당이 짜증나도, 아무리 촘스키가 후덜덜한 명성을 가졌어도, 성명의 주체와 참여자를 뒤바꿔 버리는 게 어딨어. 게다가 그 당시(12월 9일) 성명서 전문은 공개되지도 않은 상태였다[footnote]확실치 않다. 12월 11일인가 12일쯤에 겨우 찾아내기는 했는데, 그게 12월 10일 이전부터 거기 올라와있었을지는 모르는 거니까. 다만 12월 10일에 발표한다고 했었으니 그렇게 추측할 뿐. 다만 촘스키 및 서명에 참여한 인사들의 면면보다 성명서 내용에 관심을 갖고 찾아보려는 사람은 보질 못했다[/footnote]. 기사에 짤막하게 성명서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갔다고만 나와 있던 상태였는데 다들 그저 촘스키 촘스키. 더군다나 20개국 173명의 인사와 4개의 단체가 참여했다는데도 그저 촘스키 촘스키.

솔직히 난 저런 식의 국제서명운동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고, 어떤 식으로 서명을 받는지 모른다. 아무리 그래도 민주넷의 성명에 촘스키가 서명한 걸 가지고 촘스키가 나서서 한국 정부를 비판한 양 기사를 쓰는 건 오바고, 촘스키 등 173명이 정말 진지하게 서명했는지 아니면 그냥 이런 마음가짐[footnote]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1278252&cp=nv[/footnote]으로 대충 서명했는지도 모르는 마당에 성명서 내용보다도 촘스키 이름을 앞세우는 건 호들갑이 맞다.

그러니까, 촘스키가 성명서에 서명했다는 사실을 가지고 '촘스키가 MB정부 비판했대요! 대한민국 개망신!' 이라는 반응들은 많았지만, '도대체 성명서에 무슨 내용이 들어 있길래 그러지?' 하는 반응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는 게 난 아쉬웠던 거다. 그 성명서의 내용이 정말 제대로 된 비판이든, 아니면 허무맹랑한 환타지 소설이든 간에, 어느 시민단체가 MB를 비판한 것에 대해 그 내용보다 촘스키를 앞세우는 건 좀 우스운 일이잖아. 근데, 정말 짜증났던 건, 성명서를 발표한다고 했던 12월 10일에도, 그리고 그 후에도 그 성명서를 도통 찾아볼 수가 없었다는 거다. 어느 신문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고, 저 성명서를 발표했다는 민주넷의 홈페이지[footnote]http://minju.jinbo.net/[/footnote] 같은 데를 들어가 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이 단체에서 촘스키 이름으로 바람만 잡고 성명서 내용은 그냥 어물쩍 넘어가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던 차에 성명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좀 힘들었다.

노암 촘스키가 이명박의 반민주적 정책을 비판하다 (다함께 문서자료실)
노엄 촘스키가 이명박의 반민주적 정책을 비판하다 (레프트21 단독보도)

근데 왜 이게 다함께 자료실에서 나오는 걸까? 민주넷과 다함께는 무슨 관계인 걸까? '시민사회단체 네트워크'니까 다함께를 비롯한 수많은 시민단체들의 연합체라고 생각하면 되는 걸까? 왜 이건 '레프트21'에서만 단독보도된 걸까? '레프트21'과 '다함께'는 컨텐츠 제휴를 맺고 있다[footnote]http://www.left21.com/1_news_subject.php?pageNo=10&subject_code=02004000[/footnote]는데, 둘은 무슨 관계인 걸까? 성명서는 다함께와 제휴한 언론에만 보도되고, 서명운동에도 다함께 사람이 수고했고, 이 성명과 서명운동을 다함께가 주도한 걸로 봐도 될까? 촘스키가 성명서에 서명했다는 그 기사들을 열심히 퍼다나르던 사람들은 그걸 알까? 작년 촛불시위 때 참여자들에게 인터넷에서 그렇게 욕을 얻어먹던 다함께가 주도한 성명이라면 저 기사 퍼다나르던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footnote]말은 이렇게 해 놨지만, 다함께라는 단체에 대해서 딱히 안 좋은 감정은 없다. 왜냐면 일단 잘 모르니까...-_-;; 촛불시위 때 무슨 폭력시위를 유도하네 뭐네 해서 말이 많았는데, 그것도 뭐 내가 확인한 일은 아니고.[/footnote]

다시 촘스키 얘기로 돌아가서, 저 서명에 참여한 173명 중 가장 많이 언급되는 사람이 촘스키인데(아마 제일 유명해서 그렇겠지만), 촘스키란 사람이 우리나라 시시콜콜한 사안에 대해 정부를 비판할 때 그 이름을 앞장세울 수 있을 만큼 이 분야에서 권위를 가진 사람일까?

일단, 내가 아는 촘스키는 언어학자다. 물론 난 그쪽 전공이 아니라 그의 언어학 책은 구경도 못 해봤다.
그리고, 사회 및 정치에 대해서도 촘스키는 책을 많이 썼다. 다만 난 촘스키 책은 아직 한 권도 못 봤다.

도대체 촘스키가 정치, 사회 분야에서도 언어학에서의 그의 입지만큼이나 후덜덜한 권위를 가져도 되는 사람인지 궁금했다. 예술 및 인문학 인용 색인(A&HCI)에 의하면 1980년부터 1992년 사이에 촘스키는 생존해 있는 학자들 중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학자이고, 역대 인물 중 여덟 번째로 자주 인용되는 학자로 기록되어 있다[footnote]http://ko.wikipedia.org/wiki/%EB%85%B8%EC%97%84_%EC%B4%98%EC%8A%A4%ED%82%A4[/footnote]고는 하는데, 그게 다 언어학으로 쌓은 권위일지 어떻게 알아.

아무튼, 그래서 저 A&HCI 자료에 어떻게 접근해보려고 했는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고, 꿩 대신 닭이라고 구글 학술검색으로 촘스키의 저서들을 모두 검색해보기로 했다. 촘스키의 저서 목록은 여기서 가져왔고[footnote]http://www.chomsky.info/books.htm[/footnote], 그걸 구글 학술검색에 넣어서 각각 얼마나 인용됐는지 검색해봤다. 그 결과,

스크롤의 압박. 첨부파일 참고.


촘스키의 후덜덜한 인용숫자의 거의 대부분은 그의 언어학 분야 저작들에서 나왔다. 물론 그의 언어학 분야의 저작들은 그야말로 학술자료고, 그 외 분야의 저작들은 학계의 사람들보다는 대중들을 목표로 쓰여진 책이라고 본다면 인용횟수를 단순히 비교하는 건 좀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기서 확실한 건, 언어학 이외의 분야에서, 특히  정치, 사회 분야의 학계에서 촘스키는 별로 주목받는 존재가 아니라는 거다. 즉, '살아있는 학자 중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었다'는 타이틀이 정치, 사회분야에서 촘스키에 어떤 유효한 권위를 부여해 주지 않는다는 거다. 민주넷의 성명서에서도 마찬가지고. (물론 이것도 촘스키가 정치, 사회분야에서 뭔가 후덜덜한 논문이라도 써서 학계에 파란을 일으켰다던가 하는 일이 있었다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그래서 말인데, 정치, 사회분야에서 촘스키의 위치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베스트셀러 작가' 수준이 아닐까 감히 추측해본다. '진중권의 미국 버전'이라고 표현하면 딱 내 생각과 맞을 것 같다.

또 한 가지, 이건 다음 의문과도 연결되는 건데, 촘스키 등 20개국 173명의 사람들이 도대체 우리나라 사정에 대해서 얼만큼이나 잘 알고 있겠느냐는 거다. 몇 군데 미국 유명 일간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yongsan'으로 검색해봐도 아무것도 없다. 기껏해야 용산 미군기지 얘기나 가끔 보인다. 그들이 한국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갖고 한국 신문사들이 내는 영자신문 같은 걸 찾아본다던가, 아니면 누군가가 한국 소식을 영역해서 보내준다거나 하지 않는 이상 그들이 성명서에 언급된 사건들에 대한 심도있는 정보를 얻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쯤에서 한번 우리가 미국, 영국, 호주, 포르투갈... 등의 나라의 내부사정에 대해서 과연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었는지나 한번 생각해 보자.

그리고, 사실 내가 제일 궁금했던 건, 도대체 어떻게 173명에게서, 그것도 20개국의 사람들에게서 서명을 받아낼 수 있었을까 하는 거였다. 그래서 기사에 있는.
- 국제서명 조직을 위해 박준규(다함께 국제 연락팀) 씨가 수고해주셨습니다.
- 이 국제서명운동은 올해 초 광우병국민대책회의와 민생민주국민회의가 지난해 촛불 운동을 방어하기 위해 조직한 국제방어성명의 연장선에 있다.
라는 내용을 보고,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한번 검색이나 해보기로 했다.

우선, 레프트21에 실린 다른 기사[footnote]http://www.left21.com/article/1064[/footnote]에서, 다함께가 꽤 잘 갖춰진 국제적 조직을 갖고 있다는 짐작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국제 사회주의자 경향(International Socialist Tendency)의 한국 가맹단체라는 것도[footnote]http://ko.wikipedia.org/wiki/%EB%8B%A4%ED%95%A8%EA%BB%98[/footnote][footnote]http://ko.wikipedia.org/wiki/%EA%B5%AD%EC%A0%9C_%EC%82%AC%ED%9A%8C%EC%A3%BC%EC%9D%98%EC%9E%90_%EA%B2%BD%ED%96%A5[/footnote][footnote]http://en.wikipedia.org/wiki/International_Socialist_Tendency[/footnote].

그리고, 올해 초 광우병국민대책회의와 민생민주국민회의가 조직했다는 국제방어성명이란 건 이거다.
촛불구속자 석방을 촉구하는 국제호소문 발표

아마도, 저 호소문을 가지고 1월부터 계속 서명을 받으면서 근 1년을 끌어오는 동안 용산참사 내용 추가하고 언론노조 관련 내용도 추가시키고 그랬겠지. 그래서인지 1월의 성명서에 싸인한 사람들은 그대로 12월의 성명서에도 포함되어 있다. 연장선상에 있다니까 당연한 거겠지만... 싸인을 받고 내용을 추가하게 되면 다시 싸인을 받는 게 상식일 텐데 과연 그렇게 했을지는 모르겠다. 물론 싸인한 사람들의 면면을 보니 다시 부탁했더라도 해 줬을 것 같긴 하다.

전부 다 확인해 볼 수는 없었지만 다들 사회주의자라는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회주의자가 나쁘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별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도 않고. 다만, 다함께가 IST의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직접적으로가 아니라 각 나라의 IST 관련 단체를 통해서 각국의 인사들에게 접촉해서 서명을 받은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려는 거다. 미국 쪽에 대해서만 대충 검색을 해 봤는데, 직접 미국 ISO 에 속해 있는 사람들도 있고, ISO에 속해 있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우호적인 관계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고. 다양한 사람들 사이의 다양한 관계를 쉽게 정의내리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자신과 같은 정치적 지향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어느 정도 우호관계에 있는 사람 혹은 집단의 요청이라면 쉽게 들어줄 수 있는 거 아니냐는 얘기다. 그 사안에 대해서 설사 잘 모른다 하더라도... (물론 이쪽에서 만들어간 성명서 정도는 읽어봤겠지)

그리고 이건 여담인데, 물론 어떤 사람의 사회적 지위가 그 사람의 권위를 보증해 주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명색이 국제서명인데 (시민)이라던가 (~~대학 학생회)는 좀 너무하잖아. '우리 이렇게 많이 싸인받았어요!'가 목적이었다면 그냥 국내 서명으로도 충분하잖아. 명색이 국제서명운동인데 좀 이름 말하면 딱 알 것 같은 사람들 싸인만 좀 집중해서 받지들 그랬어. 물론 지금까지 쭉 해온 얘기가 '유명한 사람도 다 필요없다!'니까 다 쓸데없는 얘기긴 하지만.

...이리저리 힘들게 검색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뒤늦게 이런 기사를 발견했다.
우리 정부에 인권 개선 촉구 국제 서명

민주넷은 이메일 답장 형식으로 서명을 받았고, 서명인 가운데는 노엄 촘스키 미 매사추세츠 공대 언어학 교수와 하워드 진 미 보스턴 대학 명예교수 등 저명 인사도 포함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맨 처음 짐작대로 이메일이었어. 하긴 뭐 딱히 다른 방법도 없겠지만 설마설마했는데 진짜 이메일이었다니. 이쯤 되면 이메일이 다함께에서부터 각 대상으로 직접 보내졌는지 아니면 세계 각국의 IST 단체들을 경유해서 전달되었는지가 궁금하고, 또 몇 명에게 이메일을 보내서 그 중 몇 명으로부터 답장을 받았는지 뭐 그런 것들이 궁금하긴 하지만 더 이상은 힘들어서 포기.

근데, 그렇다면 도대체 호주의 경우나, 중간에 간간이 보이는 (시민)들의 경우는 뭘까. 설마 저거 일차 수신인에게 전달된 이후 행운의 편지 돌듯이 거기서 빙빙 돌았던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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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결론.

저 서명에 참여한 각국의 유명인사들이 한국의 국내사정에 대해 진지하게 관심을 가지며 걱정하고 있을 것 같지 않다. 서명은 다함께의 국제 네트워크를 이용했을 것으로 보이며, 서명운동을 주도하는 측과 서명하는 사람들 사이의 사상적 유사성으로 인해 서명도 쉽게쉽게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성명서의 내용은 서명을 받는 중간에 바뀐 것으로 보이며, 서명 참여자 중 일부는 자신의 서명 이후 성명서의 내용이 바뀐 줄도 모르고 있을 가능성마저도 있어 보인다. 성명 참여자 중 특히 촘스키를 많이들 언급하는데, 촘스키를 딱히 이런 분야에 어떤 전문성이나 권위를 가진 사람으로 보기 힘들다. 게다가 미국 내부 일도 아니고 멀리 떨어진 외국 일인 담에야 더더욱.

그러니까 저 성명서를 가지고 이명박 정부를 까고 싶다면 괜히 애먼 촘스키를 앞세우지 말고 공부를 좀 한 다음에 촛불시위 폭력진압이나 용산참사, 언론노조 탄압 등의 개별 사안에 대해 제대로 된 논리를 먼저 세우고 공격을 하자. 촘스키의 이름이 주장에 논리정연함을 부여해 주지 않으며 서명 참여자의 숫자가 주장에 힘을 실어 주지 않는다. 유효한 무기는 언제나 논리와 대안뿐이다. 



p.s. 이왕 쓰는 거, 촘스키라던가 저 서명에 참여한 개인 및 단체들에 대해서 좀더 제대로 스토킹(......)을 해 보려고 했는데, 며칠 동안 이 글을 붙잡고 있으려니 도저히 지겹고 귀찮고 힘들어서 대충 마무리. 난 안될거야 아마(......)

[footnote]http://reds.linefeed.org/groups.html 글 쓰면서 돌아다니다가 본 자료인데, '미국 좌파의 분류' 쯤 되는 듯. 나중에 읽어보면 나름 재밌을 것 같다. [/footnote]

양비론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

장진영의 봄날은 '왜' 갔는가?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구당 김남수에게 묻는다


이 기사를 보고, 사람이 우스움과 분노의 감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아무도 없는 데서 이 기사를 봤다면 모니터를 보면서 낄낄 웃으며 욕을 내뱉는 정말 웃긴 장면이 나왔을지도.

도대체가 똑같은 것들끼리 뭐 하는 짓인가 모르겠다. 한쪽은 면허가 있고 한쪽은 없다는 차이는 있지만, 양쪽 다 자신이 옳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는 점, 그러나 사실 둘다 헛소리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완전히 똑같다.

...게다가, 죽은 사람 가지고 이게 뭐 하는 짓이냔 말이다. 케이스 가지고 토론을 하고 싶으면 김남수를 불러다가 자기네들끼리 하던가. 김남수가 장진영의 병세를 더 악화시켰다는 물증은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기 손을 거쳐간 환자가 수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 속에서 죽었는데 그걸 버젓이 자기 자랑하는 책에 구구절절 써 놓는 김남수나, 일반인들 보는 (인터넷)신문 지면에서 한다는 소리가 '저 사람이 잘못해서 사람 잡았대요' 이 모양인 이상곤이나 도찐개찐이다.

개인적으로 이 기사에 제목을 붙여보자면 '돌팔이 Vs. 돌팔이' 가 좋겠다. '무당 Vs. 무당' 도 괜찮다. 프레시안을 보면 참 괜찮은 기사들도 자주 올라오는데 저런 사람한테 무려 매주 연재를 시키고 있다는 점, 그리고 얘기하기조차 짜증나는 ㅊ모 기자의 기사들(고소한다는 말을 얼핏 들었는데 어찌 됐나 모르겠다)을 보고 있으면 어느날 갑자기 순식간에 망가져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된다. 프레시안까지 망가져 버리면 참 아깝고 암울하잖아.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한경오에 비하면 그나마 괜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나저나 장진영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난 청연이 보고 싶었다. 봐야지 봐야지 하다가 결국 귀차니즘의 압박으로 어쩌다 보니 영화의 흥행 실패와 함께 지나가버렸다. 생각난 김에 DVD라도 빌려 볼까.


2009년 12월 22일 화요일

아이폰 유감

그래 아이폰. 참 좋다. 메일이랑 연동시켜서 메일을 보내면 어디서든 바로바로 받아볼 수 있고 또 컴퓨터 없어도 바로바로 문자보내는 것처럼 답장도 보낼 수 있다. 참 편리하고 좋...... 기는 개뿔.

그래서, 어디서 주워들은 말인지는 이제 기억이 안 나지만, 기술이 발달하면 할수록 자유시간이 점점 없어진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냐. 분명 전화가 발명됐을 때도 그랬을 테고, 삐삐가, 핸드폰이 발명됐을 때도 그랬겠지. 기계가 자유를 빼앗아 간다고... 다만, 난 지금 이런 고차원적이고 진지한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고,

...교수님. 교수님은 지금 해외 출장중이십니다. 새로 구입하신 아이폰이 아무리 좋아도 평소보다 더 가까이 계신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해 주시면 곤란 감사합니다ㅜㅜ 교수님 안 계셔도 농땡이 안(......) 피우지 말입니다ㅜㅜ orz


p.s. 스티브 잡스, 나쁜사람...... orz

2009년 12월 20일 일요일

모범시민


정말 오랜만에 본 영화였다. 근데 길게 평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고...-_-;
...뭐, 어쨌든 재밌게 봤다 :D

근데 보는 내내 왜 이리 데스노트(영화로는 1편밖에 안 봤지만)가 오버랩되는지. 나만 그랬을까?

영화의 메세지는 내 정치적 입장이랑은 반대인데, 이걸 길게 쓰면 또 글이 산으로 갈 테니 생략.




2009년 12월 14일 월요일

윤하 3집 part B : growing season

클릭하시면 윤하 공식홈페이지로 연결됩니다 :D


4월쯤 나왔던 3집 part A. 부터 일본에서 나온 싱글 두 장. 그리고 3집 part B. 까지, 잊어버릴 만하면 그때마다 앨범이 나와 주는 덕에 일년내내 귀가 심심하지가 않았다 :D

내 귀가 별로 고급이 아니라 자세한 평은 생략하지만, 제목대로다. 1집에서 2집, 2집에서 3집으로 갈수록, 물론 앨범마다 내 취향인 곡도 있고 아닌 곡도 있지만, 적어도 노래하는 사람이 예전과 비교해서 계속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만큼은 확실히 든다. 기술적인 면에서도 그렇고, 감성적인 면에서도 그렇고. 국내 데뷔 이전에 일본에서 냈던 곡들[footnote]한국 데뷔 이전에 일본에서 발매된 곡 전부를 어둠의 경로로 구했다는 건 비밀이다.[/footnote]하고 비교하면 더더욱.

2집과 3집 part A, 에서 느꼈던 아쉬움. 그때는 그 이유가 내가 발라드 가수 윤하가 아닌 락커 윤하를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뭐 지금도 좋아하는 곡을 꼽으라면 오디션이나 혜성, Hero 같은 곡들을 가장 먼저 꼽을 거고, 이번 앨범에서도 여전히 락은 내가 원하는 만큼 강하지 못하고, 여전히 발라드 쪽에 무게가 실려 있지만 예전같이 아쉬운 느낌은 없으니까. 해서, 2집과 3집 part A 를 들으면서 윤하 팬질을 그만둘까 심각하게 고민했었는데, 이걸로 이제 고민 끝. 팬질은 계속되어야 한다 :D

뭐, 그래도... 이번 앨범에서 제일 맘에 드는 곡 한 곡을 꼽으라면 '오늘 헤어졌어요'가 나올 것 같지는 않다. 그럼 뭐가 좋냐고 물어본다면 조금 더 듣고 고민을 해봐야겠지만.

이번 윤하 콘서트 티켓을 지르지 않은 게 살짝 아쉬워지는 순간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혼자서는 좀(......)

...

마지막으로, 심심해서 해보는 적절한 윤빠 인증 :D

혜성 때부터 팬질을 시작한 터라 포스터는 2집 것부터 -ㅅ-
그나저나 폰카로 찍어서 화질은 별로고, 거기다 형광등 불빛의 압박 orz


덧. 이번 앨범에 들어있는 '좋아해'는 최근 일본에서 나온 싱글 수록곡 '好きなんだ' 와는 다른 곡이다. 일본어로 된 곡들을 들으면서 느끼는 답답함에 일본어를 독학해볼까 하는 무모한 상상을 하곤 한다. orz......


2009년 12월 12일 토요일

리처드 도킨스, <지상 최대의 쇼>

클릭하시면 인터넷 교보문고의 책소개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D


도킨스 아저씨의 신간이 나왔다. 하마터면 모르고 지나칠 뻔...
아무튼, 발견하자마자 바로 망설임없이 주문 고고씽. 바로 아래와 같은 심정으로...-_-;

...아무튼, 서평이랑 목차만 봐도 막 기대된다. 624쪽이라는 분량이 좀 압박스럽지만, 그래도 번역판이니까. 악명높은 '그 분'이 번역하신 것도 아니고... 서평만 보고도 내가 겁에 질려서 '이기적 유전자'와 '확장된 표현형'을 무려 원서로 구입하게 만든 '그 분'. 설마하니 그런 수준은 아니겠지.

그나저나 이렇게 한 권이 더 추가되면, 올해 초에 야심차게 시작했으나 아직까지 지지부진하고 있는 도킨스 전권 완독 프로젝트는 어느 세월에...... orz



[펌] 부질없는 생혈분석

예전에 한의학이라는 망상에 빠진 KBS #1 라는 글을 썼었다. 2편으로 나누어 방송된 KBS의 어떤 방송을 까 보겠다고 쓴 글이었다. 방송이 두 편으로 나갔으니까 나도 두 편 써야지 하고 기세좋게 번호까지 붙였지만 결국 '찾아야 할 자료 + 귀찮음'의 압박으로 2탄은 포기. 사실 2편은 거의 임상증례 중심이었던 터라 내가 손대기에는 좀 버겁기도 했고... 아무튼 조금 부끄럽게 돼버렸다. 그래서 장담은 함부로 하면 안 되는 건데.

아무튼, 그때 그 방송. '특집 동의보감 세계기록유산 등재신청기념' 2편에 나왔던 내용 중에 흥미로웠던 게 있었는데, 생혈분석인지 어혈분석인지 하는 거였다. 피를 좀 뽑아서 그걸 곧바로 슬라이드로 만들어서 관찰하면 환자의 상태에 따라서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는 거다. 신기해서 한번 조사를 해봐야겠다 하다가 2편을 쓰려던 계획이 흐지부지되면서 같이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어쩌다 이런 글을 발견했다.

부질없는 생혈분석 (건강과 과학. http://hs.or.kr)

<위 링크와 같은 내용임>


방송에서 보여준 슬라이드 중에, 방송에 나온 한의사는 뭐라뭐라 설명하지만 영 어떤 세포나 혈액 내 존재하는 구조라고 보기엔 이상하고 슬라이드에 떨어진 먼지 같은 아티팩트 아닌가 싶었던 것들이 있긴 있었다. 근데, 설마설마했는데 이럴 수가. 그래도 우리나라에서만 유행하는 사기가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사이비들의 단골 레퍼토리 중 하나라는 데 위안을 삼아야 할까? 근데 그런 사람들이 의료인 면허 달고 버젓이 활동하는 데는 우리나라밖에 없을걸?

* 참고로 퍼온 글의 원문보기 링크가 엉뚱한 곳으로 연결되는데, 몇 년 지난 글이라서 주소가 바뀐 것 같다. 다시 검색으로 찾은, 원문으로 추정되는 글의 링크는 여기. 다만, 전체를 완역한 것 같지는 않다.

2009년 12월 9일 수요일

에이즈 바이러스의 뿌리?

“에이즈 바이러스 뿌리, 고대 호랑이”
“호랑이가 원숭이 물어서 전파” (코메디닷컴 2009.12.7)


제목이 나름 자극적이었다. 유전자 진화에 대한 연구는 언제나 흥미롭다.
(그걸 내가 얼마나 이해하느냐는 일단 논외로 하고-_-;; )

아무튼, 무려 호랑이[footnote]정확히는 현재 호랑이의 조상이 된 호랑이와 비슷하게 생긴 어떤 동물이겠지만.[/footnote]에게 물리고서도 어떻게 살아남아서 동족에게 새로운 바이러스를 전파한 고대 원숭이[footnote]그 고대 원숭이가 어떻게 됐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호랑이에게 물려서 그 자리에서 잡아먹혔다면 바이러스가 원숭이 집단에 퍼질 수 없었을 테니, 어떻게든 살아서 도망쳤다고 봐야겠지.[/footnote]에게 경의를(...) 표해야 할까. 호랑이에게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은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구나[footnote]다만 이상한 바이러스가 묻어 올 수는 있겠다 -ㅅ-[/footnote].

다만, 그렇게 원숭이에게 넘어온 바이러스가 원숭이들 안에서 돌다가 결국 사람에게 넘어와 모두가 후덜덜하는 HIV가 되었다는 걸 생각하면 마냥 신기해할 일만은 아닌 듯. 여담이지만 항간에 돌던 원숭이-사람 성접촉 기원설은 틀렸다는 게 요즘 대세인 것 같다. 다른 설명을 어디선가 봤는데 까먹었다-_-a

그건 그렇고, 기사에서 말하고 있는 연구팀의 논문은 이건데,
A sequence similar to tRNA3Lys gene is embedded in HIV-1 U3–R and promotes minus-strand transfer
Dorota Piekna-Przybylska, Laura DiChiacchio, David H Mathews & Robert A Bambara


나도 virology 를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 이 논문을 다 이해하지는 못한다[footnote]근데, 레트로바이러스의 기원이 retrotransposon일 거라는 내용은 흥미로웠다. 진핵생물의 일부였다가 뛰쳐나간 존재들이 이제는 원래 한몸이었던 진핵생물들을 위협하고 있다는 거잖아 :D[/footnote](그래서 바이러스 하는 사람들은 멋있어 보인다-_-;; 솔직히 반도 이해 못 한 것 같다 orz). 다만, 적어도 저 논문의 주된 내용이 '에이즈 바이러스의 조상이 호랑이에서 건너왔다' 는 건 아닌 것 같다. 에이즈 바이러스 유전체에 있는 특정 염기서열의 기원을 따지면서 호랑이 원숭이 얘기를 하고 있긴 하지만 적어도 호랑이 원숭이 얘기가 이 논문의 요지는 아니다. 아마도 미디어에서 소개하면서 흥미 유발을 위해 지엽적인 부분을 부풀린 것 같다. 하긴 그렇게 안 했으면 내가 이 기사를 클릭했을 리도 없고, 논문을 찾아볼 일도 없었겠지.

근데,
밤바라 교수는 “이 연구는 에이즈 바이러스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이해를 도와 에이즈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외에도 신종플루처럼 인간과 동물 사이에 감염되는 질병에 대한 이해도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다”고 기대했다.
(코메디닷컴 기사 중)
...아무리 그래도 HIV의 조상을 밝힌 걸로 에이즈 치료에 도움이 될 거라니, 이건 좀 이상하잖아. 에이 설마 하면서 이 연구가 소개됐다는 미국 웹진을 찾아봤다.

AIDS May Date Back to Ancient Tiger
Researchers find signs of feline DNA in virus


내용을 옮겨 가며 해석하는 건 귀찮고, 확실히 밤바라 교수가 저런 식으로 말한 건 맞다. 다만 다른 학자들은 이 연구 결과로 에이즈 치료에 있어서 뭔가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성과를 기대하는 건 무리라고 분명히 덧붙이고 있다. 확실히 멋있고 훌륭한 연구인 건 맞는데, 나 보기에도 임상적인 의미는 솔직히 별로 없어 보인다. 물론 절대 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솔직히 정신적 사치일지도 모르겠지만, 신약 개발이나 새로운 치료법 개발 같이 뭔가 와닿고 뭔가 도움되는 게 있는 것보다 이런 어찌 보면 뜬구름 잡는 것 같은 기초연구 보고 있는 게 더 재밌다(......)

근데, 아무리 상대는 힘센 호랑이고 이쪽은 연약한(...) 인간이지만, 이쪽만 괜히 바이러스 하나 받고 끝나는 건 억울하잖아. 호랑이들한테 받은 게 있으면 이쪽도 뭔가 주는 게 있어야지. 그래서,

Who ate whom? Adaptive Helicobacter genomic changes that accompanied a host jump from early humans to large felines.
Eppinger M, Baar C, Linz B, Raddatz G, Lanz C, Keller H, Morelli G, Gressmann H, Achtman M, Schuster SC.
PLoS Genet. 2006 Jul;2(7):e120. Epub 2006 Jun 15.
[footnote]사실 이 논문을 예전에 보고 재밌어서 나중에 간단하게 글이라도 써볼까 했는데 역시 게으름이 문제. 일단 이번엔 간단히 소개만.[/footnote]

...인류의 선조도 호랑이 조상에게 선물을 줬으니, 바로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footnote]일단 글은 이런 식으로 쓰고 있지만, 에이즈 바이러스의 조상이 원숭이에게 넘어온 것과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가 원시 인류에서 호랑이 쪽으로 넘어간 것 중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확실치 않다. 자료 찾아보기 귀찮다(......)[/footnote]

"아주 고약한 세균이죠"


그 어느 옛날, 호랑이 조상이 인간 조상을 잡아먹었는데, 인간 조상의 위 속에 살던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이 같이 넘어가 현재 고양이과 동물들의 위 속에 살고 있는 Helicobacter acinonychis 균의 조상이 되었다는 훈훈한 이야기(......)

...그래도, 아무리 하나씩 주고 받았다지만 에이즈 받고 위장질환 준 건 웬지 손해본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