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27일 토요일

우렁각시 동화와 동양의 양자역학

우렁각시

나무꾼은 일을 나갔다 오면 저절로 차려져 있는 밥상의 비밀을 풀기 위해 몰래 숨어서 관찰을 했고, 그 결과.

"애당초 이 댁에 몸을 의탁하기로 작정하고 왔으니 때가 되면 무엇을 망설이겠습니까? 그렇지만 천상에서 죄를 짓고 내려온 몸이라 아직 때가 되지 않았으니 며칠만 기다려 주십시오. 때가 차지 않고 같이 살게 되면 반드시 슬픈 이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총각은 한사코 색시를 잡고 놓아 주지를 않았다. 못 보았다면 모를까, 이왕에 모습을 본 다음에야 이 고운 색시를 농 안에 들여보내고는 한시도 못 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치맛자락을 틀어쥐고 놓아 주지를 않으니 어떻게 할 수 없어 색시는 그 날부터 총각하고 같이 살기로 했다.

몰래 밥을 차리고 다시 우렁이로 변하던 각시의 생활 패턴이, 그리고 그 둘의 운명이 '변했다'.

관찰하는 행위가 관찰 대상을 변화시킨다는 양자역학의 핵심 개념이 이 동화 속에 녹아 있는 거다. 그러니까 우리 조상들은 이미 그 옛날부터 양자역학을 관념적으로 이해하고 있었기는 개뿔, 여기까지 진지하게 읽었다면 낚인 것임.


2010년 3월 23일 화요일

그놈의 무상급식

6월에 있다는 선거 때문인지 요새 무상급식 때문에 시끄러운데, 다 좋다. 아무리 시끄러워도 그나마 이렇게 정책 비스무리한 걸 가지고 싸우는 게 서로 네거티브 하면서 물고뜯는 것보다야 나을 테니까. 그래서 다 좋은데, 근데, 제발 일부에서 꾸준히 밀고 있는 초딩 왕따드립이나 4대강 드립은 좀 안 봤으면 좋겠다.

교육의 목적이 결국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바람직한 인간을 키워내는 거라면(아닌가, 취업인가...orz), 학교에 들어간 초등학생들이 제일 먼저 배워야 되는 건 자신과 다른 사람을 인정하는 태도 아닌가? 피부색이 검든 희든, 머리가 좋든 나쁘든, 키가 크든 작든, 힘이 세든 약하든, 돈이 많든 적든, 이 모든 것들이 그저 '다르기만' 한 것일 뿐, 거기에 어떤 우열 혹은 선악의 가치가 끼어들어서도 안 되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 그게 현대 사회의 기본인 거잖아.

그래, 물론 다 맞는 말이고 듣기 좋은 소린데, 근데 너무 꿈같은 소리고 현실은 시궁창이라서 가난한 친구를 왕따하는 아이도, 가난해서 상처받는 아이도 현실에 존재한다고 치자(난 초등학교 졸업한 지 오래돼서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야 전체 무상급식 일단 할 수도 있겠다. 언제까지? 이쯤 하면 초딩들이 '다름'을 가지고 차별하지 않겠다는 확신이 서는 그런 교육환경이 만들어질 때까지. 그러니까 현실이 그리 녹록치 않다는 걸 인정한다면 지금 중요한 건 전체 무상급식보다도 교육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돼야 할 거고, 전체 무상급식은 어디까지나 임시적인 방편이어야 되는 거고, 일단 실시한다고 하더라도 차차 선별급식으로 가야 되는 게 맞는 거다. 근데 뭐, 전체 무상급식을 단계적 점진적으로 확대하겠다, 아니다 전면실시하겠다 이런 거 가지고 싸우고들 있으니.

또 한 가지, 어떻게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린애들은 아무튼 신통한 능력을 가져서 누가 공짜로 급식 먹는지 귀신같이 알아내서 걔를 힘들게 할 거라는 건데, 초큼 웃긴 게, 그게 해서는 안될 짓이라는 걸 배우러 학교에 다니는 거잖아. 애초에 그런 행동을 안 하게 잘 가르쳐야 되는 거고, 그런 일이 생기면 때려서라도(아니, 체벌 문제는 여기선 생략) 바로잡아야 되는 거지, 이런 식으로 알아서도 안 되고 알 필요도 없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이게 조선시대의 성교육이랑 다를 게 뭐람.

그리고 무상급식이란 거, 밥이야 물론 애들이 먹는 거지만, 이건 결국 애들보다도 그 부모들에 대한 복지다. 초딩들이 직접 경제활동을 하진 않잖아. 급식비라는 것도 결국 그 부모(혹은 보호자, 아주 드문 경우 초딩 자신이 되겠지만)에게서 나오는 거니까. 그래서 결국 실질적인 혜택을 보는 건 애들보다도 그 부모다(정말 아주아주 어려운 상황이 아닌 이상 애들이 학교에서 밥을 굶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초딩들의 왕따, 초딩들의 섬세한 감성 같은 핑계들을 쳐내면, 학부모들에 대한 복지인 전체 무상급식은 결국 부자 급식이라는 어떤 당의 비판을 피해나가기 어렵다.

한 가지 드는 잡생각이라면,



그리고, 예산 얘기하면 정말이지 기다렸다는 듯이 4대강 안하면 된다 뭐 이런 소리 들고들 나오는데, 도대체 이 사람들 이명박이 대통령 안 됐으면, 이명박이 4대강 한다고 안 했으면 어쩔 뻔 했어? 4대강 사업이 정말 필요한가, 효과있는가에 대한 문제는 논외로 하더라도, 그렇게 안 하면 큰일날 것같이 밀어붙이는 전체 무상급식보다 중요도가 떨어지는 게 도대체 4대강밖에 없나? 이명박 임기 끝나면 무상급식 안 할거야?

게다가 6월에 있는 선거는 지방선거다. 애초에 전체 무상급식 문제가 불거졌던 것도 경기도에서 김모 교육감과 얽혀서 시끄러웠기 때문이고, 어떤 당은 선거 이후에 자기 당 당선지역에서 전체 무상급식 하겠다고 그러고들 있다. 결국 무상급식 문제는 각 지방에서 각자 예산 가지고 알아서들 할 일인데 뜬금없이 중앙에서 계획, 집행할(아마도) 4대강 예산에 태클을 걸고 있는지 솔직히 좀 의문이다. 내가 세금 체계와 나라살림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탓이라면 좀 쪽팔려야겠지만.

민주당, 4대강 예산이 도깨비 방망이냐 (프레시안)
...솔직히 기사는 다 안 읽어봤는데, 제목이 너무 맘에 들어서 그냥 가져와 버렸다.

어느 신문기사에서도(이번 무상급식 논란을 프레임의 관점에서 해석한 기사는 꽤 나왔는데, 내 기억 속의 '바로 그 기사'를 찾지 못해서 그냥 에둘러 넘겼다) 지적했다시피, 이번 무상급식 건은 확실히 한쪽 진영에서 프레임을 잘 잡았다. 그 반대쪽 진영에선 무슨 짓을 해도 질질 끌려다니기만 하고 있었으니까. 근데, 이쯤 와서 생각해보면 과연 이게 제대로 된, 그러니까 진실한 프레임인지 좀 고민해볼 필요가 있지 싶다. 프레임 얘기 하면 으레 따라나오는 어떤 사람은, 역시 으레 따라나오는 그의 어떤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여론 조작(spin)은 프레임을 조작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는 뭔가 부끄러운 일이 일어나거나 폭로되었을 때, 거기에 결백한 프레임을 뒤집어씌우려는 시도이다. 즉 부끄러운 사건을 정상적이거나 좋은 일로 포장하는 것을 말한다.
  프로파간다는 프레임을 조작적으로 사용하는 또 한 가지 예이다. 프로파간다는 정치적 통제권을 획득하거나 유지하기 위해, 대중으로 하여금 진실이 아닌 프레임을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것을 말한다.
  내가 제안하는 프레임의 재구성은 여론 조작도 프로파간다도 아니다. 진보주의자들은 자신의 신념을 프레임으로 전달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여기서 프레임이란 자신의 도덕적 관점을 진실되게 표현하는 프레임을 말한다. 나는 어떤 기만적인 프레임에도 단호히 반대한다. 이는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짓임은 물론이고 별로 실용적이지도 않다. 기만적인 프레임은 조만간 폭로되어 역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 조지 레이코프.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187쪽.


그리고 한 가지 더 불안한 것은,
'무상급식' 쟁점화되면 야당에게 불리할 수도
글쎄, 졸린 관계로 좀 거칠게 한줄요약하면 '너무 당연한 소리라서'쯤 되지 않을까. 누군가가 '법을 잘 지키는 사회를 만들겠습니다'라는 공약을 들고 나왔다고 해서, 그런 공약을 제시하지 않은 다른 후보들은 법을 안 지키겠다는 얘기가 될 수 없는 것이고, 따라서 선거에 전혀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물론 그 외의 다른 측면이 있을 수 있고,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서 충분히 가치있는 논의가 가능하지 않을까. 여기서는 한쪽만 주구장창(x) 까대긴 했지만, 솔직히 난 아직 어느 쪽 말을 더 들어줘야 되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한 쪽이 너무 이상한 얘기들만 근거랍시고 들고 나와서 짜증이 났을 뿐이고, 난 그런 이상한 얘기들 빼고 좀 제대로 된 논의를 보고 싶었을 뿐이고... 물론 보다 보니 무슨 토론회 같은 것도 한 모양인데 난 바빠서 보지 못했고, 거기서라도 제대로 된 얘기가 오고갔으면 다행인 것이고... 다른 측면에서 이 문제를 다룬 좀더 건설적인 논의를 구경하고 싶은데, 이건 결국 내 체력과 정신력의 문제인 것이고, 그리고 바로 위 링크 글에 대한 짧은 평에서도 적었다시피, 그렇다고 이 쟁점이 내 표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줄 것 같지는 않고...


p.s. 아. 졸려.

2010년 3월 21일 일요일

교수/포닥/대학원생의 9가지 유형

간만에 마음편히 노닥거리다가 문득 꽂혀서 대충 번역해봤다. 처음 이걸 봤을 때 그 빵 터지던 느낌은 아직도 잊을 수가... :D 개인적으로는 이 중에 PI의 9가지 유형이 가장 맘에 든다. 나머지 두 개도 재밌지만 PI편만큼의 포스는...-_-;

뭐 대학원생 편은 12가지 유형으로 되어 있지만, 원본 제목이 Nine Types Trilogy 인걸 뭐...;;;




http://dentcartoons.blogspot.com/
이건 원작자의 블로그 주소. 다른 만화들도 꽤나 재밌게 봤던 기억이......




2010년 3월 5일 금요일

공무원을 공격한다

폭풍같이 몰아치던 연구계획서의 러시도 일단락. 정말 보름동안 좀 과장을 보태서 하얗게 불태웠다.
그나저나 빠듯한 시간보다, 창작의 고통보다, 교수님의 압박보다 날 힘들게 했던 건,

...공무원. 공무원. 공무원!!!!!!

도대체가 연구내용이랑, 연구전략이랑, 연구방법을 따로따로 쓰라는 게 도무지 뭔 소린지 알 수 없었지만 이해해줄 수 있었고, 기초연구 하겠다는 사람들한테 굳이 연구의 활용방안과 사회경제적 파급효과를 써내라는 것도 그럭저럭 참아줄 만했다. 어쨌든 나랏돈 갖다 쓰려면 아쉬운 우리가 참아야지.

근데, 계획서 작성 방법이라고, 신청 요강이라고 올라온 걸 아무리 봐도 뭔 소린지 못 알아먹겠는데 도대체 뭘 어쩌란 거? 신청방법은 쓸데없이 복잡하게 만들어 놓고는, 설명서라고 나와 있는 걸 아무리 봐도 연구기간은 언제부터 언제까진지, 돈은 얼마를 주겠다는 건지, 서식에서 뭘 지우고 뭘 남기고 뭘 첨부하라는 건지 알 수가 없잖아. 한참 쓰다가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소린지 이해가 안 돼, 버럭 하면서 고민고민하다가 결국 전화기를 집어들고 전화를 걸어 보지만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건 비슷한 처지의 연구자들의 전화가 빗발치는지 통화중이라는 뚜뚜뚜 소리뿐.

그 고생 해서 연구비 딴다고 끝이냐 하면 또 그것도 아니지. 등록해라, 제출해라, 중간보고해라, 정리해라, 보고해라... 아놔 진짜, 그럼 실험은 언제 하라고. 정말이지 그런 행정적인 일 다 맡아서 처리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현실적인 문제점들이 떠오르면 결국 마무리는 '그래 세상이 그런 거지 orz'

도대체 누가 만든 서식이고, 누가 짠 일정인지. 그거 만든 사람은 자기가 써놓은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고 있을까? 아니 읽어보기는 했을까? 신청방법이 바뀌어도 옛 서식 수정 안하고 놔둔 티가 나도 너무 나고, 서로 다른 서식 짜는데 닥치고 복붙하다가 차마 발견하지 못한 실수도 보이고.

그래도 뭐 아쉬운 건 이쪽이니까 별 수 있나. 그래도 하나만 잘 얻어 걸리면 당분간 돈 걱정은 없겠는데. 그러니까 님들하 제발 돈 좀 주세요 orz

그리고, 그래서 난 공무원이 부럽다. 일을 그렇게 해도 이 쪽에서 맞춰야지 별 수 있냐는 거지.

이 쪽 일은 재미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들 하고, 다행히 나도 재미없는 건 아닌데(-_-;;; ), 이런 거 보면 참 느낌이 그렇다. 월화수목금금금 세븐일레븐(...보다야 훨씬 양호한 조건에서 일하고 있지만, 나야 뭐 그런 사람들 보면서 난 이래도 되나 싶은 쪽이니 뭐)은 아무리 좋고 재밌어도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것 같애. 주 5일에 9-to-5 는 어디 안드로메다에 가면 있는 세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