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23일 화요일

그놈의 무상급식

6월에 있다는 선거 때문인지 요새 무상급식 때문에 시끄러운데, 다 좋다. 아무리 시끄러워도 그나마 이렇게 정책 비스무리한 걸 가지고 싸우는 게 서로 네거티브 하면서 물고뜯는 것보다야 나을 테니까. 그래서 다 좋은데, 근데, 제발 일부에서 꾸준히 밀고 있는 초딩 왕따드립이나 4대강 드립은 좀 안 봤으면 좋겠다.

교육의 목적이 결국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바람직한 인간을 키워내는 거라면(아닌가, 취업인가...orz), 학교에 들어간 초등학생들이 제일 먼저 배워야 되는 건 자신과 다른 사람을 인정하는 태도 아닌가? 피부색이 검든 희든, 머리가 좋든 나쁘든, 키가 크든 작든, 힘이 세든 약하든, 돈이 많든 적든, 이 모든 것들이 그저 '다르기만' 한 것일 뿐, 거기에 어떤 우열 혹은 선악의 가치가 끼어들어서도 안 되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 그게 현대 사회의 기본인 거잖아.

그래, 물론 다 맞는 말이고 듣기 좋은 소린데, 근데 너무 꿈같은 소리고 현실은 시궁창이라서 가난한 친구를 왕따하는 아이도, 가난해서 상처받는 아이도 현실에 존재한다고 치자(난 초등학교 졸업한 지 오래돼서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야 전체 무상급식 일단 할 수도 있겠다. 언제까지? 이쯤 하면 초딩들이 '다름'을 가지고 차별하지 않겠다는 확신이 서는 그런 교육환경이 만들어질 때까지. 그러니까 현실이 그리 녹록치 않다는 걸 인정한다면 지금 중요한 건 전체 무상급식보다도 교육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돼야 할 거고, 전체 무상급식은 어디까지나 임시적인 방편이어야 되는 거고, 일단 실시한다고 하더라도 차차 선별급식으로 가야 되는 게 맞는 거다. 근데 뭐, 전체 무상급식을 단계적 점진적으로 확대하겠다, 아니다 전면실시하겠다 이런 거 가지고 싸우고들 있으니.

또 한 가지, 어떻게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린애들은 아무튼 신통한 능력을 가져서 누가 공짜로 급식 먹는지 귀신같이 알아내서 걔를 힘들게 할 거라는 건데, 초큼 웃긴 게, 그게 해서는 안될 짓이라는 걸 배우러 학교에 다니는 거잖아. 애초에 그런 행동을 안 하게 잘 가르쳐야 되는 거고, 그런 일이 생기면 때려서라도(아니, 체벌 문제는 여기선 생략) 바로잡아야 되는 거지, 이런 식으로 알아서도 안 되고 알 필요도 없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이게 조선시대의 성교육이랑 다를 게 뭐람.

그리고 무상급식이란 거, 밥이야 물론 애들이 먹는 거지만, 이건 결국 애들보다도 그 부모들에 대한 복지다. 초딩들이 직접 경제활동을 하진 않잖아. 급식비라는 것도 결국 그 부모(혹은 보호자, 아주 드문 경우 초딩 자신이 되겠지만)에게서 나오는 거니까. 그래서 결국 실질적인 혜택을 보는 건 애들보다도 그 부모다(정말 아주아주 어려운 상황이 아닌 이상 애들이 학교에서 밥을 굶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초딩들의 왕따, 초딩들의 섬세한 감성 같은 핑계들을 쳐내면, 학부모들에 대한 복지인 전체 무상급식은 결국 부자 급식이라는 어떤 당의 비판을 피해나가기 어렵다.

한 가지 드는 잡생각이라면,



그리고, 예산 얘기하면 정말이지 기다렸다는 듯이 4대강 안하면 된다 뭐 이런 소리 들고들 나오는데, 도대체 이 사람들 이명박이 대통령 안 됐으면, 이명박이 4대강 한다고 안 했으면 어쩔 뻔 했어? 4대강 사업이 정말 필요한가, 효과있는가에 대한 문제는 논외로 하더라도, 그렇게 안 하면 큰일날 것같이 밀어붙이는 전체 무상급식보다 중요도가 떨어지는 게 도대체 4대강밖에 없나? 이명박 임기 끝나면 무상급식 안 할거야?

게다가 6월에 있는 선거는 지방선거다. 애초에 전체 무상급식 문제가 불거졌던 것도 경기도에서 김모 교육감과 얽혀서 시끄러웠기 때문이고, 어떤 당은 선거 이후에 자기 당 당선지역에서 전체 무상급식 하겠다고 그러고들 있다. 결국 무상급식 문제는 각 지방에서 각자 예산 가지고 알아서들 할 일인데 뜬금없이 중앙에서 계획, 집행할(아마도) 4대강 예산에 태클을 걸고 있는지 솔직히 좀 의문이다. 내가 세금 체계와 나라살림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탓이라면 좀 쪽팔려야겠지만.

민주당, 4대강 예산이 도깨비 방망이냐 (프레시안)
...솔직히 기사는 다 안 읽어봤는데, 제목이 너무 맘에 들어서 그냥 가져와 버렸다.

어느 신문기사에서도(이번 무상급식 논란을 프레임의 관점에서 해석한 기사는 꽤 나왔는데, 내 기억 속의 '바로 그 기사'를 찾지 못해서 그냥 에둘러 넘겼다) 지적했다시피, 이번 무상급식 건은 확실히 한쪽 진영에서 프레임을 잘 잡았다. 그 반대쪽 진영에선 무슨 짓을 해도 질질 끌려다니기만 하고 있었으니까. 근데, 이쯤 와서 생각해보면 과연 이게 제대로 된, 그러니까 진실한 프레임인지 좀 고민해볼 필요가 있지 싶다. 프레임 얘기 하면 으레 따라나오는 어떤 사람은, 역시 으레 따라나오는 그의 어떤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여론 조작(spin)은 프레임을 조작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는 뭔가 부끄러운 일이 일어나거나 폭로되었을 때, 거기에 결백한 프레임을 뒤집어씌우려는 시도이다. 즉 부끄러운 사건을 정상적이거나 좋은 일로 포장하는 것을 말한다.
  프로파간다는 프레임을 조작적으로 사용하는 또 한 가지 예이다. 프로파간다는 정치적 통제권을 획득하거나 유지하기 위해, 대중으로 하여금 진실이 아닌 프레임을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것을 말한다.
  내가 제안하는 프레임의 재구성은 여론 조작도 프로파간다도 아니다. 진보주의자들은 자신의 신념을 프레임으로 전달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여기서 프레임이란 자신의 도덕적 관점을 진실되게 표현하는 프레임을 말한다. 나는 어떤 기만적인 프레임에도 단호히 반대한다. 이는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짓임은 물론이고 별로 실용적이지도 않다. 기만적인 프레임은 조만간 폭로되어 역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 조지 레이코프.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187쪽.


그리고 한 가지 더 불안한 것은,
'무상급식' 쟁점화되면 야당에게 불리할 수도
글쎄, 졸린 관계로 좀 거칠게 한줄요약하면 '너무 당연한 소리라서'쯤 되지 않을까. 누군가가 '법을 잘 지키는 사회를 만들겠습니다'라는 공약을 들고 나왔다고 해서, 그런 공약을 제시하지 않은 다른 후보들은 법을 안 지키겠다는 얘기가 될 수 없는 것이고, 따라서 선거에 전혀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물론 그 외의 다른 측면이 있을 수 있고,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서 충분히 가치있는 논의가 가능하지 않을까. 여기서는 한쪽만 주구장창(x) 까대긴 했지만, 솔직히 난 아직 어느 쪽 말을 더 들어줘야 되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한 쪽이 너무 이상한 얘기들만 근거랍시고 들고 나와서 짜증이 났을 뿐이고, 난 그런 이상한 얘기들 빼고 좀 제대로 된 논의를 보고 싶었을 뿐이고... 물론 보다 보니 무슨 토론회 같은 것도 한 모양인데 난 바빠서 보지 못했고, 거기서라도 제대로 된 얘기가 오고갔으면 다행인 것이고... 다른 측면에서 이 문제를 다룬 좀더 건설적인 논의를 구경하고 싶은데, 이건 결국 내 체력과 정신력의 문제인 것이고, 그리고 바로 위 링크 글에 대한 짧은 평에서도 적었다시피, 그렇다고 이 쟁점이 내 표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줄 것 같지는 않고...


p.s. 아. 졸려.

댓글 2개:

  1. trackback from: ‘차별’의 밥상을 넘어 ‘행복’의 밥상으로(펌글)
    국회의원 김춘진(민주당, 고창ㆍ부안)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민주당 무상급식추진위원장) 출처 :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서 퍼옴 (http://bbs4.agora.media.daum.net/gaia/do/agora/participant/read?bbsId=C001&articleId=1714&issueBbsId=I001&issueArticleId=4&RIGHT_DEBATE=R4) 무상급식은 우리 아이들의 기본적인 권리이며, 국가의 의무입니다.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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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rackback from: 그놈의 무상급식 #2
    예전에 썼던 그놈의 무상급식에 트랙백이 걸렸길래 몇 마디 더 써본다. 깊이 파고들고 싶은 주제도 아니고, 링크 따라가 보니 다른 데 글을 퍼다가 트랙백걸어논 것도 그렇고, 별로 안 좋은 느낌이 들어서 여러모로 썩 내키진 않지만 아무튼. 이 글인가 본데, 하나씩 보자. 첫째, 무상급식은 ‘교육’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초중고 12년 동안 매일 1시간, 180일 이상 학교급식 시간을 거치고 있습니다. 학교급식은 올바른 식습관을 길러주는 동시에 협동,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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