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30일 일요일

서거드립 제 2탄

우연히 좋은 곳을 발견, 지난번 글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좀 더 찾아보기로 했다. 분명 그럴 것이다라고 어느 정도 확신은 하고 있었지만,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각 전직대통령 사망 다음날의 기사 제목이 어떻게 나와 있나 정리했다. 다만, 지난번 조선일보 경우처럼 제목이 따로 정리돼있지는 않았기 때문에 직접 지면을 눈으로 읽으며 찾아야 했다는 거... 다행히 1990년 이전의 지면 PDF파일이 제공되는 건 한국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서울신문의 네 종밖에 없었고, 지면 숫자도 별로 많지 않아 수고를 덜었다. 다만 이승만 박정희 때는 '한자 + 세로쓰기 + 인쇄상태 나쁨' 의 콤보로 인해 대충대충 읽은 관계로 빼먹은 부분이 있을지... 도 모르겠다-_-;;;

아무튼, 귀찮은 관계로 다- 생략하고, 기사 '제목'에서 '죽음'을 뜻하는 단어 중 어떤 단어가 사용되었는가만 확인해 봤다. 그 결과는 아래 그림으로...
* 이름 밑의 날짜는 '사망한 날'이 아니라 "사망 다음날"

...좀 예상과 달랐던 건,
첫째, 박정희의 죽음에 대해 '서거'를 사용한 신문이 많았다는 거. 조선일보조차 사용하지 않은 표현을다른 신문들이 사용했다는 건 좀 의외였다. 기사 내용을 대충 보면 그 중에서도 서울신문이 특히 박정희를 많이 좋아라 했던 듯하다. 시대가 시대였던지라 박정희가 죽은 후에도 눈치를 봐야 했거나, 아니면 박정희가 어쨌든 인물은 인물이었거나, 둘 중 하나겠지. 난 전자라고 생각하지만.
둘째, 동아일보는 최규하의 죽음에 대해서도 '서거'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 최규하가 인물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아니면 동아일보는 그 시점에 이미 전직대통령에게는 서거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던 걸까?

노무현과 김대중의 경우는 예상대로 서거로 통일. 노무현의 사망 직후, 대부분 언론사에서 제목에 '사망'이란 단어를 사용했다가 네티즌들의 항의 폭주로 황급히 '서거'로 바꾸던 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 일이 없었다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노무현에게는 사망, 김대중에게는 별세 정도의 표현이 대세가 되지 않았을까 하고 예상하고... 동아일보가 최규하에게 사용했던 서거 표현을 계속 사용하는지 보는 것도 재밌는 일이 되었을 테지만, 다 지나간 마당에 별 의미없는 일이겠지. (게다가 그렇게 시끄러운 일 없이 넘어갔으면 내가 지금 이런 거 찾고 있지도 않겠지-_-; )

아무튼 그렇다는 거다. 언론들이 박정희의 죽음을 높여서 서거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까지는 서슬퍼런 독재 시대의 아픈 단면으로 이해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근데 인터넷 스타 노무현의 죽음을 계기로 전직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표현을 다시 '서거' 로 바꿔버렸으니 이걸 어쩌지? 내가 정말 걱정하는 건 나중에 전두환이 죽었을 때 언론이며 방송에 '서거'로 도배되는 거다. 정말 그런 꼴까지 앞으로 봐야 되나? 설마 정말 그렇게 되면 우리의 네티즌들은 다시 방송사에 전화를 걸어 서거가 가당키나 한 말이냐고 따져 줄까? 그럼 애국민주네티즌들과 전사모의 대결을 볼 수 있을까? 그분의 아호를 따서 이름붙인 공원까지 만들어지는 판이니 그분 역시 상당한 수준의 추종자들을 보유하고 있을 거라 가정한다면, 꽤나 볼만한 판이 벌어지겠다. 그거 보고 있으면 분명 정말 재밌을 것 같다.

"우리 ***오빠대통령 정도는 돼야 죽었을 때 서거했다고 할 수 있는 거임! 어디 (독재자/빨갱이) 주제에 감히!"

분명히 중딩 때 H.O.T와 젝스키스 팬들의 신경전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일 거야... 아, 정말이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고 별로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우울해진다. 하아...

...그리고 그보다 더 우울한 건, 다 써놓고 보니까 내가 도대체 왜 저걸 찾아서 이런 글을 쓰고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거다. 또 주말이 이렇게...



2009년 8월 29일 토요일

친일이 나쁜 건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망 이후 저런 짤이 돌기 시작했다. 뭐 그 전부터 돌고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는데, 내 눈에 띈 건 아무튼 그 이후였다. 참 저걸 가지고들 김대중을 까는데ㅡ아니, 정확히는 아무 내용 없이 그냥 저 짤만 올려놓고 스르륵 잠수를 타는데ㅡ도대체 그래서 어쩌자는 건지 난 모르겠다.

역대 세계 주요 인사 장례식 어땠나

[특파원 코너―오종석] 조문 외교

그러니까- 저 사진 속에서 김대중이 조문하고 있는 히로히토가 죽었을 때, 전 세계 150개국이 조문사절을 일본으로 보냈다. 우리나라도 당시 국무총리가 조문하러 일본을 찾았고, (아마도)반일감정 둘째가라면 서러울 중국도 부총리를 조문사절로 보냈다. 2차대전이 끝난 후 도쿄재판에서 히로히토가 살아남은 건 말도 안 된다, 죄질이 아주 나쁘다는 주장이 많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것과 별개로, 2차대전 당시의 행실이 어떠했든 히로히토가 죽을 당시(지금도 그렇지만) 일본은 친해 두면 좋은 나라였고, 국가간의 관계에 있어서 조문 또한 외교의 한 수단이기에, 조문사절을 보낸 150개국에서는 히로히토가 누구며 생전에 무슨 짓을 했는지보다 일본과의 적절한 관계 유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는 거다. 2차대전 당시 많은 피해를 입었다며 조문사절을 보내지 않은 네덜란드의 이야기도 나오는 것 같은데, 네덜란드는 네덜란드다. 애초에 유럽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가 어차피 잘먹고 잘사는 네덜란드는 일본이 별로 아쉬울 게 없었을 거다. 좋든 싫든 일본과 부대끼며 살아야 되는 한국이나 중국, 게다가 당시 개발도상국이었던 한국과 중국은 어쨌든 선진국 일본과의 적절한 관계 유지가 아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거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국의 조문사절 파견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한다면, 김대중의 조문도 얼마든지 그런 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당시 김대중은 제1야당인 평민당의 총재였고, 따라서 그의 행동 하나하나도 국가 원수나 총리 정도의 무게감은 없었겠지만 어느 정도의 외교적 의미를 가진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또, 김대중은 아시아 작은 나라의 일개 야당 정치인에 불과했지만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다 외국을 전전하며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긴 사람이고 보면, 그저 일국의 야당 총재 이상의 유명세를 타고 있었을 것이라는 예상도 충분히 가능하고. 그러니까, 김대중이 당시 마음속으로 일본에 대해서 무슨 생각을 갖고 있었건 간에, 그의 행위를 개인적인 것으로만 생각하고 해석하는 건 너무 단순한 짓이란 거다. 아, 물론 김대중이 사실 골수 친일파라서 히로히토를 조문하면서 속으론 어디서 본 표현대로 '천황폐하, 저 도요타 다이쥬입니다...' 뭐 이랬을 수도 분명 있다. 근데, 제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관심법을 아무데서나 쓰는 건 좀 자제해야 되지 않을까?

두 번째 신문기사는, 저걸 가지고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더더욱 모르겠다(신문기자 말고 저걸 캡처해서 퍼뜨리는 사람이). 호칭을 지네들 부르는 대로 불러주겠다는 게 뭐 그리 큰일인지 솔직히 난 잘 모르겠다. 어차피 일본 천황은 실질적인 권한이라곤 없는 그냥 화석화된 상징일 뿐이고, 지금 세상에 일본 건국신화나 천황의 족보라던가 만세일계라던가 그딴 거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도 없고... 그거 가지고 비위 좀 맞춰주면 좋은 일이고, 그걸로 뭔가를 얻어낼 수 있었다면 더 좋은 일이고... 다만, 그런 의미에서 한 가지 불만인 건 천황보다는 현지발음대로 덴노가 더 좋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있긴 한데,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니 패스...

근데, 한 가지 불만인 건, 김대중을 좀 까보겠다고 저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 그리고 김대중을 지지하지만 저 사진과 기사를 보면 뭔가 속이 불편하면서 말이 잘 안 나오는 사람들은 결국 '친일은 나쁜 거다'라는 공통의 전제를 갖고 있다는 거다. 근데 그거 정말 나쁜 건가? 난 식민지근대화론이라던가, 식민지 시기 조선인들이 일본에 가졌던 감정이 어떠했다라던가 뭐 그런 건 잘 모른다. 근데, 그게 독립 60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모두가 가져야 하는 공리여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보다도 이제 우리한테 필요한 건 이런 거 아닌가?

(심심해서 해보는 책 광고다. 클릭하면 네이버 책 페이지로 이동한다. 저 두 권 중에 한 권밖에 안 읽었다는 건 일단 논외로 하자-_-;; )




2009년 8월 25일 화요일

멜라노마, 충격과 공포...

 [굿모닝닥터] 내몸의 소리없는 침략자 '점'(서울신문)

 

으... 제목 보고 분명 멜라노마 얘기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하고 봤는데도 읽고는 내가 다 무서워서 소름이 확 돋아 버렸다. 깎다니, 손톱깎이로 깎다니! 으으으!!

 

시간이 지난 탓에 자세한 내용은 이제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수업시간에 설명을 듣고는 '걸리면 거의 무조건 죽는 병' 수준의 느낌을 받았던 건 확실히 기억난다. 일단 전이가 되기 시작하면 이건 뭐 답이 없다고... 원발부위가 엄한 데 있으면 일단 찾기도 쉽지 않은데다가, 일단 전이가 되면 어디서 또 재발할지도 알 수 없다는 뭐 대충 그런 느낌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중에 돈 벌면 일단 온 몸에 점 빼는 수술부터 받아야겠다고 그런 농담도 하고 그랬었는데. (절대로 수술해서 도려내야 된다. 레이저로 태워버린다던가 그런 거 말고...-_-; 근데 그렇다고 그냥 조그만 점들을 wide excision 하겠다는 발상도 좀 오바인 것 같긴 하다. 하지만 확실히 멜라노마는 무섭다. 광우병보다 신종플루보다 훨씬 더...)

 

아무튼, 나중에 꼭 온 몸에 점 빼는 수술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만드는 기사였다. 그나저나 그걸 손톱깎이로 깎아내는데 아프지 않았을까? '통증'도 일반 점과 멜라노마를 구분하는 기준 중 하나였던 걸로 기억하고 있는데... 분명, 그걸 손톱깎이로 한번 깎아낼 때마다 그분 수명이 1년씩 줄어들었을 거야. 지속적인 자극은 세포의 암화를, 손톱깎이로 깎는 동작은 암세포를 피부 속으로 밀어넣어 암세포의 전이를 도와주는 꼴이 되어버렸을 테니...

 

대충 쓰려고 했지만 그냥, 복습을 위해 링크해보는 '악성 흑색종'에 관한 네이버 의학상세정보...

 

 

 

2009년 8월 23일 일요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죽음을 보며

#1. 인터넷 유감과 조갑제닷컴 안드로메다 기행

김대중 전 대통령 사망 당일, 수많은(아마도 모든) 인터넷 사이트들은 검은 톤의 근조 배경으로 갈아입고 포털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라는 기사를 긴급속보로 내보냈다.

고인을 애도하는 건 좋은데, 솔직히 별로 마음에 안 든다. 더군다나, 포털의 배경화면 바꾸기나 서거라는 표현은 노무현 사망(과 당시 네티즌들의 압력)으로 인한 학습효과처럼 보여서 더더욱 마음에 안 든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기억에 의존한 정보이기 때문에 장담은 못하지만, 2006년 최규하 전 대통령이 사망했을 때, 내 기억으로 배경을 검게 바꾼 포털사이트는 없었다. 애도를 다른 사람 보여주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각자 자기 마음 속에서 하면 되는 걸 굳이 며칠동안 수많은 인터넷 사이트가 검은 톤으로 갈아입고 있어야 할 이유는 없지 않냐는 거다. 더군다나, 어차피 사람들이 인터넷하면서 계속 그 화면을 보고 있다고 해도, 인터넷 공간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문이나 애도와는 별 상관없는 일을 한다. 도대체 누구를, 무엇을 위한 배경화면 바꾸기인가? 노무현 때나 이번의 소동ㅡ검은색 배경화면이나 서거 파동ㅡ은 결국 인터넷의 철없는 일부 빠들의 정신적 자위행위를 위한 건 아닌가?

또, 지금까지 사망한 다른 전직 대통령들의 경우를 봐도 서거라는 표현은 노무현 이후에 굳어진 걸로 보인다(아래 자료 참고). 그리고, 노무현 사후 '서거가 옳은 표현이다, 포털사이트는 왜 애도를 표시하지 않느냐'며 설레발치던 일부 네티즌들의 행태를 기억하고 있다.

역대 전직대통령 사망 관련 신문기사 제목


이승만(서거, 운명, 부음), 박정희(유고), 윤보선(별세, 타계), 최규하(별세) 그 누구의 경우에도 노무현, 김대중의 경우처럼 모든 표현이 서거로 통일된 적은 없었다(다만, 노무현의 경우만 盧로 표현된 건 눈에 띈다. 조선일보만 그런지, 다른 신문들도 그런지 찾아보는 것도 재밌을 듯). 최규하 사망 후 노무현 사망까지의 3년 동안 죽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표현을 서거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어떤 공감대가 이루어진 거라면 모를까, 이건 좀 아니지 싶다. 그런 면에서,

 ...언론은 객관적이고, 보편적이며, 평등한 용어를 써야 할 의무가 있다. '서거'를 전직 대통령 專用으로 하는 것은 계급적 특권을 인정하지 않는 헌법정신과 맞지 않다. 1987년 이후 현직 대통령에게까지 '각하'라는 말을 쓰지 않도록 한 나라이다... (조갑제, 2009년 5월 23일)

 조갑제가 노무현의 죽음 이후 쓴 글의 일부인데, 적어도 이 대목에만큼은 조갑제에 100% 동의한다. 물론 같은 해 2월에 쓴 글에서는 다음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시지만 말이다.

올해는 朴正熙(1917~1979)가 서거한 지 30주년이다. 62년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통하여 한국을 근대화시키는 데 旗手(기수)가 되었던 민족사의 大인물이자 20세기를 대표하는 세계적 지도자였다. 그의 삶 속에서 특히 드라마틱하였던 62개 장면들을 뽑아 소개한다. 이 장면들은 박정희 개인뿐 아니라 한국인들의 삶에 큰 영향을 준 것들이다. 별도의 설명이 없는 장면은 필자가 쓴 '朴正熙 傳記(全13권)'에서 뽑은 것이다... (조갑제, 2009년 2월 17일)

1987년 이전의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사회라고 볼 수 없었으니, 유신독재체제의 수장으로 살다 민주화 이전에 죽은 박정희에게 그가 살았던 시대의 가치관을 적용해 전제군주에게 맞는 어휘선택을 한 거라면야 뭐 할 말은 없겠다. 다만, 이 분이 자신이 지지하고 존경하는, 한국 근대화의 기수가 되었던 민족사의 대인물이자 20세기를 대표하는 세계적 지도자 박정희 각하의 서거 30 주년을 맞아 쓴 글도 '사망'이나 '피살' 혹은 '죽음'정도의 어휘를 사용해서 고쳐쓰는 정도의 일관성을 보여준다면야 앞으로 이 분의 글도 진지하게 읽어 드릴 의향은 있다.
(조갑제닷컴이 그냥 조갑제의 개인적 공간이라면 내 글도 번지수를 잘못 잡은 것이긴 하다. 조갑제가 말하고 있는 건 '객관적이고, 보편적이며, 평등한 용어를 써야 할 의무가 있'는 '언론'에 해당되는 내용이니까... 근데 조갑제닷컴을 보면 난 이걸 개인사이트라고 봐야 할지 아니면 또 다른 무엇으로 봐야 할지 모르겠다. 돈을 내면 어떤 특전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무려 '유료 존'도 있다. '수익추구를 한다고 해서 개인사이트가 아니고 언론이다'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 구성이나 여러가지를 볼 때 조갑제닷컴을 최소한 그냥 개인사이트나 블로그 수준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지 싶다)

그래서, 김대중 사후 모든 기사의 제목이 '서거'로 통일되는 것을 보면서 조갑제가 또 노무현의 죽음 때처럼 서거드립을 치지 않을까 생각하고 조갑제닷컴에 구경을 갔던 건데, 아무래도 한번 써먹은 건 식상하셨던 것 같다. 이번엔 국장을 트집잡기 시작하셨다.

조갑제의 국장 태클


한참 웃다가, 문득 이명박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왼쪽에서 씹히고 오른쪽에서 까이고... 김대중 국장이 불만이면 국장의 빌미를 만들어 준 법을 까던가, 굳이 국장을 요구한 유족 등을 까던가. 적법하게 장례 치뤄준 이명박은 또 무슨 잘못이람. 정치적으론 이명박에게 반대하지만 인간적으론 이제 동정심마저 들려는 순간이다. 조갑제는 혹시 우파의 X맨을 가장한 지능적 우파가 아닐까(뭔소리래-_-; )?


#2. 서울광장을 다녀와서

목요일, 서울광장에 가서 그를 조문했다. 솔직히, 난 어려서 김대중-박정희, 김대중-전두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른다. 거기까지는 별로 관심없기도 하고...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김대중에 대한 존경의 마음은 사실 내가 좋아하는 모 사이트의 모 논객들의 글에 영향을 받은 바가 크다. 그냥 그렇다는 얘기고... 아무튼, 그런 마음으로 조문을 하러 갔다.

가서 근조리본을 받고 줄을 서서 들어가는데, 좀 짜증나는 게 있었다. 장례식장 천막 기둥 이곳저곳에 붙어 있던, 이명박과 조중동을 욕하는 문구들이 쓰여 있는 플래카드들. 급하게 대충 만들었는지 검은색과 붉은색 매직으로 손으로 쓴 글씨와 조잡한 문구들... 사진이라도 찍어 올리면 좋겠지만 장례식장까지 가서 사진을 찍고 싶지는 않았다. 근데, 도대체 장례식장에서 뭐 하는 짓거리들이지?

물론 김대중이 노무현의 경우처럼 뒤끝있는 정권의 표적수사로 핍박받다가 자살해버린 건 아니지만, 분명 김대중의 죽음은 그가 갖는 상징성, 그리고 그의 일생과 정치철학을 되돌아보게 하는 효과가 있었을 것이고, 그에 따라서 어느 정도 그와 그를 따르는 정치세력들을 돋보이게 하며 그 반대쪽에 있는 정치세력들을 안 좋게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었을 거다. 근데 그런 자리에다가 매국노니 뭐니 하는 배설글들을 걸어 놓는 건 도대체 뭐 하자는 짓이냔 말이다. 고인에 대한 예의도 예의지만, 정말 냉정하게 봐서, 정치적으로도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거다. 딱히 특별한 정치적 성향이 없는 사람이 한 원로정치인의 죽음에 애틋한 마음이 들어 광장을 찾았다가 '이명박 나쁜놈, 조중동 보면 매국노' 뭐 이 따위 글들이 걸려있는 걸 보면 무슨 생각이 들지 잘 상상이 안 되는 걸까? 이건 도대체 개념도 없고 뇌마저도 없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저런 짓을 할 수 있는 거지? 그런 걸 왜 장례식장에서 하는 걸까? 이건 뭐 죽은 시체를 파먹고 사는 언데드들인가? 장례식장 안에서는 그냥 죽은 사람에 대한 추모만 하면 안 되나? 그게 그렇게 힘든가?

아무튼... 그랬다는 거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라면,

"그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2009년 8월 16일 일요일

김민선 소송과 그들의 병림픽

# 개막식


한 미국쇠고기 수입업체가 김민선 등을 고소하면서 시작된 사태가 이사람 저사람 끼어들면서 점점 커지는 모양이다. 근데 구경을 하고 있자니 이거 너무 흥미진진하다. 그래서 심심하던 차에 관전평이나 한 번.

탤런트 김민선 "美쇠고기 먹느니 차라리 청산가리 먹겠다" (2008.05)

아마도 저게 이번 일의 발단이라고 볼 수 있겠지. 좀더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올라가면 저 발언 며칠 전의 피디수첩이나, 그 전의 일이라면 이명박-부시 정상회담 일정에 맞춰 급히 진행된 것처럼 보이는 소고기 협상, 그보다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참여정부 시절 미국쇠고기에 대한  좀 과도한 수입제한조치 같은 걸 꼽을 수도 있겠지만,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면 아무래도 김민선의 청산가리 발언이겠지.

혹자들은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참여정부 시절 조중동의 광우병 선동이 원인이라고 외치고 싶겠지만 글쎄. 조중동의 입장은 대충 2007년부터는 광우병 선동이라고 보기 어렵다. 뭐 그마저도 이명박(혹은 다른 한나라당 후보)의 차기 대선 당선을 확신하고 미리 밑밥을 뿌려둔 거라던가, 광우병보다 한미 FTA 체결이 더 중요해서 그랬다던가, 아무튼 이유를 갖다 붙이면 끝도 없겠지만 관심법을 쓸 생각은 없고 적어도 겉으로 드러난 건 그랬다는 얘기다. 특히 그중 동아가 '우린 정권 바뀌니까 말바꾸기 한거 아님'이라고 변명에 열심이었다. 오히려 얘네 뭔가 찔리는 게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_-;;

[특파원 칼럼/이기홍]쇠고기, 서울과 워싱턴 사이의 거리 (2008.06.26)

[독자와 함께]어떤 협박에도 펜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2008.08.01)

이상은 정권 바뀌어서 말 바꾼 거 아니라는 동아일보의 항변.
그리고 이하는 2007년을 전후하여 나온, 동아 기사들. 읽어보면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분위기.

쇠고기 뼛조각’ FTA로 파편 튀나 (2006.11.30)
[특파원 칼럼/이기홍]워싱턴의 이구동성 (2007.01.25)
[기자의 눈/김승련]‘쇠고기 뼛조각’에 흠집난 한국 이미지 (2007.04.14)
검역원 “홈플러스 쇠고기 뼛조각 이상 없다”  (2007.07.31)

아... 좋아하지도 않는 것들에 대해서 장문의 변명을 늘어놓으려니까 속이 불편하다. 게다가 애초에 쓰려던 얘기도 이게 아니었는데. 다시 병림픽 얘기로 돌아가서.

아무튼 내 얘기는 이번 사단의 직접적인 원인은 결국 에이미트와 전여옥이 김민선의 일년 전 얘기를 걸고넘어진 거라는 얘기. 그래서, 하나씩 구경해보자.

#1. 김민선의 뻘소리


링크는 맨 위에 했으니 생략. 그녀가 당시 싸이에 썼던 글을 직접 볼 수 없는 건 유감이지만 워낙 많은 언론이 당시 그 글의 내용을 퍼다날랐으니 뭐... 지금이야 '광우병 쇠고기>청산가리'에 동의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지만(아닌가?) 그때는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나도 지금이야 둘 중에 하나를 먹으라면 당연히 광우병 쇠고기를 고르겠지만, 작년 그때였다면 모르겠다. 그때의 분위기도 그렇고, 그 때 내가 갖고 있던 지식의 수준도 그렇고.
그래서 그 때 김민선의 발언은, 다분히 악의적이었던 피디수첩의 편집과 반이명박의 목소리가 드높던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그녀가 광우병과 그에 관련된 의학적 지식을 제대로 갖추고 있을 리 없었다는 점, 또 어디까지나 개인적 공간인 싸이 미니홈피에 올린 글이라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그냥 피식 웃고 지나가면 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2. 에이미트의 소송

미(美)쇠고기 수입업자들, PD수첩 고발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생겼다. '도대체 왜 지금와서 지랄이냐?' 라는 질문(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_-;; )이 목구멍까지 올라오지만 어쩌랴. 버르장머리를 고쳐 줘야겠다는데... 물론, 시간이 얼마가 지나더라도 잘못된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고 잘못된 내용을 바로잡겠다는 그 의지는 좋은데, 다만 한 가지 고려해야 할 건, 원래 애들이 잘못했을 때 그걸 지적하고 혼내는 건 바로 그 순간에 하는 게 제일 효과적이라는 거다. 시간이 지나버리면 일단 자기가 뭔 짓을 했는지 까먹는 데다가, '도대체 왜 지금와서 지랄이냐?'라는 반감이 들고, 잘못 자체 때문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평소의 악감정을 그 잘못을 핑계로 드러낸다는 느낌이 들거든. 김민선과 피디수첩 제작진이 어린애가 아니니 그 동안 공부를 했다면 자신들이 한 일이 뭐가 틀렸는지는 알지도 모르겠지만, 분명 이 뜬금없는 소송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다. 도대체 왜 지금와서 지랄이냐?'고...

아무튼 오마이뉴스와 한 다음의 인터뷰로 에이미트 사장님은 병림픽 출전권을 획득하셨다.

"미 쇠고기 홍보대사되면 소송취하 고려"
"10대 계속 미 쇠고기 안 먹으면 체력 저하"


분명 촛불집회가 미국산 쇠고기의 소비량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그래서 사장님의 억울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닌데, 너무 흥분하셨다. 저렇게 앞뒤없이 울분을 토해내는 사장님을 보면서 어떻게 지금까지 참고 계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를 오마이뉴스가 아니라 조중동이랑 했으면 편집이라도 좀 예쁘게 해 주지 않았을까 싶은데, 이건 뭐 버르장머리를 고쳐 주겠다느니, 미국산 쇠고기 홍보대사를 하면 용서해 주겠다느니, 미국산 쇠고기 안먹으면 영양상태가 안 좋아질 거라느니 하시는 걸 보면 이건 인터뷰를 에이미트 사장님 말고 사장님의 초등학생 손자랑 한 건 아닌가 싶다.

그나저나 김민선도 피해자다. 피디수첩을 순수하게 믿고 흥분해서 글을 쓴 글을 언론들이 또 신나서 뿌려대는 바람에 그녀 자신의 이미지는 이미지대로 깎이고, 더군다나 누군지도 모를 전문가보다 연예인 언니오빠(형 누나)들의 말을 더 믿는 중고등학생 친구들이 덥썩덥썩 낚여주는 바람에 김민선이 그 글을 쓰자마자 그 글은 그녀의 통제범위를 벗어나 버렸던 거다.

#3. 전여옥의 지원사격


연예인의 한마디-사회적 책임 있다.


에이미트 사장님과 전여옥의 글을 거치면서 김민선의 한마디는 '악의적인 한마디'로 확정돼 버렸다. 물론 정말로 김민선이 나쁜 의도를 품고 일부러 그런 자극적인 어휘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난 흥분해서 아무 생각없이 나온 말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근데 이 사람들, 너무 확고하다. 에이미트 사장님("그런데 청산가리라니. 이건 의도적으로 선동한 거다.")이나, 전여옥("연예인 김모씨의 '악의적인 한마디'에,")이나. 이쯤 되면 이건 '나쁜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정도가 아니라, '나쁜 의도로 그랬음이 확실하다'는 거다. 에이미트 사장님이야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대충 정신상태를 봤으니 이해하겠는데, 전여옥씨는 국회의원씩이나 되는 분이 일개 연예인을 향해 관심법을 시전하다니. 초능력자가 참 많은 것 같다. 우리가 주의해야 하는 사람은 아이큐 430에 공중부양과 축지법을 시전하는 어떤 분만이 아니었던 거다. 나름 책도 베껴쓰고 메이저 정당의 대변인까지 지냈던 분이 초능력자라니 흠좀무.

연예인이 정치인인들이나 각 분야의 지식인들보다 더 많은 사회적 관심을 몰고 다니는 게 사실이고, 그래서 대중들이 연예인들의 정치적 견해에 노출될 기회도 많은 게 사실이다. 근데, 연예인이 어쩌다 뻘소리를 했을 때, 이를 바로잡아주는 게 정치인과 지식인의 역할이고, 사실을 판단해서 제대로 된 쪽에 무게를 실어 주는 게 언론의 역할 아닌가? 피디수첩의 선동 앞에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은 침묵하고, 언론은 그게 무슨 얘긴지 따져보지도 않고 연예인 누가 그랬다더라 하는 기사만 주구장창 쏟아내고 있었으니 우리 중고등학생 소년소녀들은 덥석덥석 낚일 수밖에 없었겠지. 그래 놓고 이제와서 한다는 소리가 '니가 헛소리하는 바람에 애들이 낚여서 촛불시위하러 나왔고 촛불시위때문에 손해가 얼마니까 배상하고 앞으로 입닥치'라는 게 정치인이 할 소린가?

#4. 정진영의 동료애


'사실 잘 모르는' 연예인 입조심 하라?
 전여옥 의원님, 배우도 시민의 권리가 있습니다


아... 뭐랄까. 그래. 처음 시작은 좋다. 앞쪽 절반까지도 그럭저럭 봐줄만 하다. 문제는, 분명 정진영은 '사실 잘 모르는' 연예인은 입조심하라는 말을 반박하기 위해 이 편지를 썼을 텐데, 이 편지가 바로 '사실 잘 모르는' 연예인은 입조심하라는 주장을 강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연예인도 시민이니까 정치/사회에 대한 의견을 내놓을 수 있고, 연예인도 사람이니까 잘 모르고 실수할 수 있지 않느냐'고 하는 데까지만 나갔으면 얼마나 좋았겠냐마는, 정진영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미국산 쇠고기는 위험하다'는 명제를 참으로 만들려고 시도한다. 문제는 당연히 그게 제대로 될 리가 없다는 거고, 더 큰 문제는 그 시도로 인해 무수히 많은 깔 거리가 만들어지며 그래서 글 전체가 순식간에 코메디가 되어 버린다는 점이다.
'사실을 잘 몰라도 누구나 말할 자유가 있다'를 넘어서 '당시 김민선의 말은 허위사실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 정진영은 너무 무리했다. '자기가 먹을 것이 위험하다 우려해도 정치적 견해인가요?' 라는 말을 하면서 미국산 쇠고기가 위험하다는 전제를 은근슬쩍 깔고 들어가는 정도는 약과다.

  특히 정치적인 논리는 진리를 추구하는 논리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흔히 말하는 정치적 전략과 전술은 진리를 구현하는 방법론이 아니라, 다만 이기기 위한 것일 뿐이지요. 이기면 반칙도 합리화되고, 거짓말도 합리화 되는 것이 정치의 세계이지요. 진실이든 아니든 사실이든 아니든 다중에게 호소하여 표를 얻는 행위가 정치행위이지요? 그렇게 얻은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정치행위이지요? 제가 너무 냉소적인가요? 예, 저는 최소한 현실 정당과 정치인에 대해서는 냉소적입니다.

이른바 '사실' 이란 것도 그렇습니다. 광우병 쇠고기에 대해서 작년에 많은 전문가들의 논란이 있었습니다. 과학적 사실이란 것은 항상 논란거리입니다. 접근에 따라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는 것이 과학이거든요. 믿을 수 있는 과학자를 판별할 능력을 우린 갖고 있지 않고, 누구의 말이 맞는지 판별할 과학적 지식을 일반인은 갖고 있지 못합니다.

 

이제 막장테크를 타기 시작한다. 창조론자/음모론자/한의학 옹호자들이 흔히 쓰는 수법인 '헛소리해서 시끄럽게 만들고 대단히 중요한 논쟁인 것처럼 호도하기/불가지론/인식론적 상대주의'의 공격이 마구잡이로 뿜어져 나온다. 좀 당황스럽다. '잘 모르면 말도 하지 말란 소리냐'도 좋고, 전여옥 씹어준 것도 좋았는데, 자기가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진영논리에 빠져 있으면 어떻게 막장테크를 타게 되는지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줘 버렸다.

#5. 진중권의 오지랍


김민선 피소? 어느 수입업자의 불량한 상도덕


아... 진교수님이 심심하셨나 보다. 최근의 일로 앞으로 그의 글을 더 자주 볼 수 있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앞으론 좀더 공부를 하고 글을 쓰셨으면 좋겠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련해서 작년 백분토론에 나와서는 꿔다논 보릿자루마냥 침묵을 지키던 모습. 이 사람은 토론 준비를 다음 아고라에서 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던 그 말들. 물론 정진영이 잘 말해줬다시피 사실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시민이라면 누구나 정치적 의견을 개진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근데, 명색이 대학교 겸임교수고,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시사논객의 한 사람이라면 좀 더 수준높은 얘기를 해 줘야 하는 거 아니냔 말이다. 어디 다음 아고라 같은 데서 긁어온 것 같은 글들 말고... (물론 남이사 블로그에 뭐라고 쓰든 니가 뭔 상관이냐고 물으면 할말 ㅇ벗다)

근데, 애석하지만 별로 기대할 게 없을 것 같다. 진중권이나 정진영이나 '미국산 쇠고기는 위험하다'라는 명제를 기본 전제로 깔아 놓고 글을 쓰려니 글이 엉망이 되고, 촛불시위의 원인을 찾는데 굳이 피디수첩만은 빼놓고 찾으려고 하니 더욱 더 엉망이 될 수밖에...

#6. 변희재의 스토킹


김민선과 TN엔터, 시장에서 퇴출시켜야
[시론/변희재]연예인 김민선, 미국인 박경신
"박중훈 글 마음껏 쓰고, 김민선은 빠져라"

변희재는 참 대단하다. 싸움판에 뛰어든지 일주일도 안 되어 글 3개를 쏟아내며 '지적 수준'이 떨어지는 연예인들을 양민학살하기 시작했다. 그간의 패턴으로 보아 당연히 진중권이 끼어드니까 변희재도 진중권을 공격하면서 따라서 끼어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변희재가 먼저 뛰어들었다. 첫번째 글은 진중권의 글보다 먼저 쓰여졌고, 세번째 글은 박중훈의 글보다 나중에 쓰여졌지만 그냥 #6으로 묶기로 했다.

변희재의 말은 구구절절이 옳다. 근데, 왜 기껏 앞사람들이 개그콘서트장으로 만들어놓은 싸움판에 백분토론 모드로 끼어드느냔 말이다. 예전 고재열이 썼던 글의 한 대목이 떠오르는 부분이다.

나는 변희재에게 졌다.
나는 변희재와 바둑을 두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변희재는 나와 알까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알까기에는 재주가 없다.
기권하겠다.

그렇다. 변희재가 이겼다. 근데, 좀 체급이 맞는 데서 놀아 달라는 거다. 이를테면 '60억분의 1의 사나이' 효도르가 어디 시골 중고등학교를 돌면서 '니가 이 학교 짱이냐?'하고 다니고 있으면 좀 웃기잖아. 더군다나 기껏해야 중고등학교 일진들을 상대로 효도르가 칼을 휘두른다면 그보다 더 웃긴 일이 있을까. 근데, 변희재는 왜, 도대체 왜, 개그콘서트장에 정색을 하고 진지모드로 뛰어드는 것도 모자라서, 좋은 말로 논리만 밟아주면 될 걸 왜 굳이 인신공격에 협박까지 하고 있는 걸까? (자기자랑도 곁들여서) '듣보잡'이라는 단어의 정의마저 갈아치우며 초고속 성장한 한 청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관심에 목마른 것일까?

#7. 박중훈의 사행시


박중훈, 저도 글 올리는 걸 그만둬야 하나요?

동료 연예인이 '지적 수준'이 모자란다는 소리까지 들어가면서 학살당하는 게 못마땅했던지 한팔 거들고 나섰다. 문제는 이 글 때문에 본격적으로 배가 산으로 가기 시작했다는 거다. 더 이상 주제는 '김민선에 대한 쇠고기 수입업체의 소송(좀 더 확장하자면 연예인의 사회적 책무)'이 아니게 돼 버렸다. 아무리 분하고 급했어도 좀 큰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글을 써야지. 이 글은 결국 한줄 요약하자면 '니가 뭔데 우리 진영이 까냐? 짜증나네?'라는 내용밖에는 안 되는 거다. 물론 여러 사람이 이야기하다 보면 주제에서 벗어나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다(사실 박중훈의 글에는 딱히 주제라고 할 것조차도 없다-_-;;; ). 그러면 그냥 적절히 무시하고 계속 얘기를 진행하면 되는데, 우리의 변희재, 또다시 정색을 하고 달려들었다. 그 결과는 변희재의 연예인 양민학살과 어느새 안드로메다로 가버린 주제뿐. 난 박중훈과 변희재보다도, 박중훈이 '개인공간'인 트위터에 올린 별 내용없는 글을 아무 생각없이(작년 김민선 청산가리 글처럼!) 신나서 여기저기 뿌려댄(그래서 변희재 귀에 들어가게 한), 언론들이 더 짜증난다.

# 폐막식


김민선에 대한 에이미트의 소송에서 시작된 이번 병림픽의 주제는 '연예인은 공인인가?'를 거쳐 어느새 '연예계, 대대적 정화가 필요하다!'가 돼 버렸다. 챔피언은 누가 뭐래도 개그콘서트장에 백분토론 모드로 뒤늦게 난입하였으나 물량공세를 통해 싸움의 주제가 안드로메다로 가버리려는 틈을 타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적절한 자기자랑을 곁들여) 모두 다 해버리는 데 성공한 변희재. 게임이 끝난 경기장에 남은 건 까이고 까여 가루가 되어버린 '지적 능력 떨어지는' 연예인들의 시체와, 어느새 듣보잡이 되어버린 전여옥과 진중권, 그리고 진심으로 미래 세대의 영양상태를 걱정하는 에이미트 사장님의 따스한 마음뿐. '...이겨도 넌 병신이다'라고 써 있는, 디씨에서 만들어졌다는 어떤 짤방이 생각나는 순간이다(짤방 첨부는 귀찮아서 생략).





2009년 8월 12일 수요일

불쌍한 김민선

김민선 ‘광우병 청산가리’ 발언 피소 “사태 지켜보고 있는중”

이 건으로 수많은 기사들이 쏟아졌는데 결국 내용은 다 거기서 거기.
그 중에서 사진이 예쁘게 나온 걸로 링크하려고 골라 보다가 졸려서 포기.
사실 청산가리 발언 이전에도 별로 관심없던 연예인이라 별로 정성들여서 기사를 고르고 싶지 않았음ㅜㅜ

처음 제목을 봤을 때는 그냥 웃겼다. 잘 모르고 헛소리 하더니 고생하는구나 하고...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니 또 웃겼다. 얼마나 할일이 없으면 저런 걸 이제 와서 걸고넘어지나 하고.
그런데 또다시 생각해 보니 웃을 일이 아니었다. ...이제 무식하면 죄가 될 수도 있는 건가?

'법에 대한 무지는 용서받을 수 없다'는 말이 있긴 있다. 근데, 이 말이 실제로 어떤 법적 효력을 갖는 말은 아니다. 그런데 이건 자연과학에 대한 무지는 죄가 되니까 처벌해달라는 거 아닌가? 아, 물론 무식하면 주위에 민폐를 끼치고 자신도 고생하는 건 맞다. 근데 그렇다고 '니가 무식해서 내가 삽질했으니까 돈 내놔'라는 건 좀 보기에 웃기다. 그래서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는데, 이 사람들 의외로 진지한 것 같다.

난 일기예보가 틀렸다고 기상청에 소송을 걸었다는 얘기는 들어보질 못했다. 그런데 비전문가에다가 문외한인 한 연예인의 헛소리를 걸고넘어지는 소송이라니. 솔까말 김민선도 피해자 아닌가? 적어도 그 사건 이후로 나에게 그녀는 무식한 연예인으로 각인되어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었으니까. 말 나온 김에 김민선도 PD수첩에 소송 걸어라. 너네 말 믿었다가 이미지 완전 X됐다고, 이거 어쩔 거냐고...

아무튼,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정말 과학적 지식의 부재는 죄가 되는 걸까? 아, 이건 물론 형사가 아니라 민사니까 이걸 가지고 죄가 되네 안 되네 따지는 건 좀 문제가 있는 것 같긴 하다. 근데, 정말 몰라서 헛소리를 좀 했는데 이것 때문에 다른 사람이 손해를 본(것 같다고 주장한)다면, 그걸 물어 줘야 되나? 근데 그렇다면 피디수첩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죄밖에 없는 김민선보다 피디수첩을 때리는 게 맞는 거 아닌가? (아참, 피디수첩도 같이 때리고 있구나-_-;;; ) 그나저나 굳이 김민선 하나만 걸려든 건 아마도 피디수첩의 해당 편 방송 이후 가장 먼저 뭔가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 그 뒤에 줄줄이 비슷한 글 올렸던 다른 연예인들은 지금쯤 X줄이 타고 있지 않을까 싶다...-_-;;;

아무튼, 아는 게 부족한 사람이 의욕이 넘치면 주위에 민폐를 끼치는 건 맞다. 그리고 '잘 모르고 함부로 말했다가 X되는 수가 있다'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그런 사람들이 입을 다물면 세상이 좀더 편한 곳이 될 것 같은 느낌도 든다(진심이다. 물론 그럼 나도 입 닫고 찌그러져야겠지만). 그래서 난 솔직히 전국민이 고등학교 졸업할 때 과학논문 하나씩 썼으면 좋겠다. 근데 그건 그거고, 아무리 그래도 이번 소송사건은 좀 병신같다.

아, 근데, 난 청산가리를 먹느니 차라리 광우병 걸려 죽은 소를 푹 고아 먹겠다...-_-;





2009년 8월 5일 수요일

진정한 의학은 하나

# 동의보감 사태를 보며.

 

동의보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이런 일이 있었다. 그래, 그냥 그랬다는 거다. 좋아할 사람은 좋아하면 되고, 아무 느낌 없는 사람은 그냥 그렇게 있으면 된다. 근데, 좀 엉뚱한 데서 문제가 터졌다.

 

대한한의사협회의 경축 담화문

동의보감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대한 의료일원화특위 논평

의사협회 동의보감 폄하 논평 '빈축'

 

대한한의사협회와 대한의사협회에서 나온 보도자료를 놓고, 언론사들이 신났다. 웹서핑을 넓게 하지는 않는지라 장담은 못 하지만, 네티즌들도 덩달아 신난 것 같다. 싸움구경은 재밌는 것이고, 의사들과 한의사들의 싸움은 분명 대한민국에서 가장 재밌는 싸움 중 하나이리라. 개인적인 생각은 뒤에 가서 이야기하기로 하고, 일단 한의협과 의협의 얘기를 각각 나름대로 세 줄 요약해 보자면.

 

* 한의협의 이야기

- 동의보감은 명실상부 한의학을 대표하는 의학서임

- 고로 동의보감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한의학의 우수성을 세계가 인정한 것임

- 열심히 하겠습니다 ^-^

 

 

* 의협의 이야기(1)

- 동의보감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축하할 일임

- 근데 솔직히 의학적으로 봤을 땐 좀 말이 안되는 듯...

- 의학서로써의 가치보다는 문화유산으로써의 가치가 인정된 것임

 

 

일단 접어두고, 아무튼 유네스코가 뽑은 거니까 유네스코의 얘기를 들으면 되잖아.

유네스코의 이야기 - 세계기록유산 선정기준 -펼치기

 

그리고, 이건 동의보감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한 모 기관에서 신청서로 제출한 자료 같은데, 영어로 되어 있는 데다가 무려(?) 15쪽이나 되는 관계로-_-; 신청 사유를 간단하게 요약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길어서 접어놨음)

신청사유 - 펼치기

여기서 '한의학의 우수성'을 세계가 인정했다는 내용을 찾을 수 있나?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제출한 신청 내용에 한의학이 우수하므로 그 고전인 동의보감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나? 아니면 유네스코의 (일반적인) 선정기준에 '해당 기록이 그 주제 분야에서 현재에도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음'이라는 항목이 있나?


 

없다. 그런 이유가 아니란 말이다. 우리나라의 신청사유란 것도 결국 국가주도의 공공보건사업이었다는 점, 당시 동양의 문화와 의학을 연구할 수 있는 사료로써의 역사적 중요성, 그리고 초판본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점이다. 유네스코도 그 기록물의 내용이 과학적으로 옳으냐 그르냐를 가지고 기록문화유산 등재를 결정하는 게 아니란 말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되면 매년 얼마간 돈도 나온단다. 그건, 동의보감을 가지고 의학서를 쓰고 의학교육을 하고 의학연구를 하는 데 쓰라는 얘기가 아니라, 책 안 상하게 잘 보존해서 당시의 동양의학, 당시의 동양문화와 그 교류를 연구할 수 있도록 하란 얘기다. 근데 왜 한의학의 우수성을 운운하나? 한의학은 의학이 아니라 역사학인가? 동의보감의 세계기록유산 선정을 가지고 '한의학의 우수성을 세계가 인정' 운운하는 것은 혹시 현재의 한의학이 아직도 동의보감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인가? (이렇게 되면 둘 중 하나다. 동의보감이 17세기에 쓰여졌음에도 불구하고 ㅡ그나마도 새로운 내용이 아니라 그때까지 전해지던 것을 집대성한 것인데ㅡ 내용이 너무 킹왕짱이라서 지금까지 수정보완할 내용이 없었거나, 아니면 한의학계가 동의보감을 수정보완할 의지도 능력도 없거나)

 

그런 면에서 의협(정확히는 의료일원화특위)의 논평은 지극히 적절하다. 위에도 썼다시피 유네스코가 인정한 동의보감의 가치는 의학서로써의 가치가 아니라, 문화유산으로써, 사료로써의 가치다. 그렇기에 '세계가 인정한 한의학의 우수성'운운하는 한의협의 논평은 자뻑이거나 사기다. 그런 면에서,

 

의사협회 동의보감 폄하 논평 '빈축'(연합뉴스)

의협 “동의보감은 첨단의학서 아니야” 논란 (헤럴드경제)
의사협회 "동의보감에 '황당'내용 가득" 폄하 파문(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동의보감 폄하’ 황당한 의사협회 (문화일보)

“세계유산이지만 비상식적 내용 가득” 醫協, 황당한 ‘동의보감’ 폄하 (세계일보)

의사협 ‘세계유산 동의보감’ 폄훼 (경향신문)

의사협 ‘동의보감 폄하’ 논란(한겨레신문)

의사협회, 동의보감 비하 논란(중앙일보)

동의보감 깎아내린 의사협회(서울신문)

 

이런 식의 제목뽑기들은 좀 많이 실망스럽다. '의사들 저거 뭐냐'하는 느낌이 풀풀 나는 제목을 뽑는 저 신문들은 정말로 동의보감의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한의학계의 경사, 더 나아가 우리 민족의 경사'라고 생각하는 걸까? 정말로 '한의학의 우수성을 세계가 인정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물론 나도 동의보감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충분히 인정한다. 다만, 아닌 건 아니라는 거다. 유네스코는 의료단체가 아니고, 과학, 교육, 문화활동을 돕기 위한 단체다. 동의보감이 의학적인 면에서 훌륭한 자료인가 아닌가는 애초에 유네스코의 관심사가 아니다. 설사 유네스코가 동의보감을 훌륭한 의서라고 판단하여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다고 쳐도, 의학분야에 대한 전문성이라고는 없는 유네스코의 평가 따위 한의학계가 기뻐할 일이 아니다. 비전문가의 찬사 따위에 기뻐한다는 것 자체가 한의학의 허접함, 자신없음을 드러내는 증거는 아닌가?

 

의외로(?) 조선일보는 오히려 의협 쪽의 손을 들어주는 듯한 뉘앙스의 제목뽑기를 했고, 애초에 의학계열의 미디어인 코메디닷컴과 청년의사의 제목이 오히려 조선일보보다 중립적이다.

 

"오늘날 상식에는 안맞는 내용으로 가득"(조선일보)

동의보감 등재, 의협-한의계 신경전(코메디닷컴)

‘동의보감’ 유네스코 등재 놓고 醫-韓 공방(청년의사)

 

이번 의협의 반응을 대부분이 그저 의학계-한의학계의 밥그릇 싸움으로 보고 있는 듯한 느낌,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일반 사람들이 막연히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그리고 사람들이 의사집단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가 도대체, 도대체 어떻기에 언론과 사람들의 반응이 이렇게 차가울까 하는 우울한 느낌. 정말이지 답답하다.

 

 

# 의학은 하나다

 

의료의, 의술의, 의학의 목적은 뭘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것이 각 문화권에서 어떤 형태로 나타나건, 그 목적은 결국 건강이다. 좀 자세히 말하자면 질병 상태로부터의 회복과 건강 상태의 유지 정도 되겠다. (단정적으로 썼지만 개인적인 생각을 떠오르는 대로 쓴 것뿐이다. 그러나 모두 동의할 거라고 믿는다-_-;;; )

 

그렇기에, 의학을 나누는 것은 무의미하다. 어떤 방법론을 가지고 있든, 어떤 문화와 철학에 기반하고 있든 위에 적은 의학의 목적에 동의한다면 의학을 나누는 것은 무의미하다. 질병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되고,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법이라면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의학이다. 서양의학이니 한의학이니 중의학이니 대체의학이니 뭐니 해서 서로 다른 형태의 의학, 서로 다른 방법론과 철학을 가진 의학들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진정한 의학은 더 나은 치료를 위해서라면, 더 좋은 건강유지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방법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체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서양의학과 한의학은 다르다고? 웃기지 마라. 환자를 보는 관점이 다르니 철학이 다르니 하는 개소리는 집어치워라. 어떤 상황에서건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뿐이다. 의학은 그 '가장 좋은 방법'을 찾기 위한 끝없는 노력이다.

 

문제는 그 방법이란 걸 어떻게 찾느냐다. 옛날에야 닥치는 대로 아무거나 해 보고 그 중에 어떤 게 괜찮다더라 하면 그 방법을 썼지만 지금 세상에 그럴 수는 없다. 닥치고 생체실험은 윤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사람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하려면 충분한 세포실험과 동물실험을 통해 안전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된다. 인체는 정상일 때는 이렇다. 병에 걸렸을 때는 저렇다. 이 수술법은 이러이러하며, 이 약은 어디어디 작용해서 어떤 효과를 낸다... 하는 등의 근거를 바탕으로 의료행위를 해야 된다는 거다. 수천 년 전부터 쓰여 왔던 방법이라고 해도 지금 그걸 사용하려면 그 근거가 있어야 된다. 옛날부터 쭉 쓰던 방법이라는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즉, 의학은 엄격한 과학적 방법론에 기반해야 된다는 거다. 적어도 '서양의학'은 그렇게 하고 있다(물론 현대과학의 발전 이후부터긴 하지만). 실험과 연구를 통해서 끊임없이 새로운 방법을 탐구하고 있고, 기존에 잘 사용되던 방법이라고 해도 역시 연구를 통해서 그 근거를 다지고 있다.

 

근데, 한의학에선 그렇게 하고 있나? 사상의학의 이론적 근거는 확립되었나? 경락과 기혈은 있긴 있는 건가? 찬 음식과 더운 음식은 뭔가? 수많은 한약의 작용기전은 파악되었나? 이런 기사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자진 논문철회 논란…근거 없는 철회 VS 학자의 양심 고백

[과학 칼럼] ‘클라크의 법칙’

 

 

 

# 다시, 의학은 하나다.

 

의사협회, 한방의료기관 X-레이 등 불법사용 강력 대응

솔직히, 이런 기사들 보면 좀 아쉽다.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더 좋다는 것이 확인된 방법이라면 형식에, 전통에 구애받지 않고 그 어떤 방법이라도 가져다 사용하는 게 진정한 의학이라고 생각하니까. (물론 저런 것들을 사용하려면 그만큼 철저한 교육을 받아야 될 것이고, 혹시나 저런 걸 교육하는 것마저도 의료계에서 막고 있다면 그건 좀 짜증나는 일이다)

 

의사 면허와 한의사 면허를 통합하자. 의사들에게 침과 탕약을 허락하고, 한의사들에게 메스와 항생제를 허락하자. 의과대학과 한의과대학의 교육과정을 통합하자. 의대생들에게 황제내경과 동의보감을, 한의대생들에게 로빈스와 해리슨을 읽히자. 어떤 방법을 사용할 것인지를 그들의 판단에 맡기자. 어떤 방법이 과학적 방법을 통해 검증된 방법이고 어떤 방법이 그렇지 않은 것인지 그들이 판단할 것이다. 그들이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그 결과는 국민건강 수준의 변화로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어떤 방법이 더 좋은지, 무엇을 택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가 곧 명백해질 것이다. 사실상 대한민국을 거대한 의료시험장으로 만들고 엄청난 혼란과 의료비 지출의 증가를 가져오겠지만 뭐 어때. 의사와 한의사 모두 의료법에서 정하는 의료인이고, 의료인이 배운 범위에서 의료행위를 소신껏 선택하게 하는 것에 법적 하자는 전혀 없을 테니까.

 

...물론 난 한방진료를 하는 병원엔 안 갈 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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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작 의협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은 의료일원화특위의 논평이라고 되어 있다. 의협의 공식입장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의협의 본심도 크게 차이가 없으리라고 본다.

 

p.s.1

돌아다니면서 기사 읽던 중 이런 걸 발견했다. 이런 프로그램이 있다고... 꼭 봐야겠다 하고 생각하고 있으려니 그 시간에 실험실을 지켜야 된다. OTL...

 

p.s.2

졸린 눈을 비비며 제목을 뭘로 할까 고민하던 차에, 며칠 전에 겨우 끝냈던 어떤 책 10장의 제목이 떠올랐다. 다만 이 글의 내용을 그 책과 연결시키려는 의도는 없었다...-_-;;;

 

p.s.3

동의보감 얘기가 나온 김에 읽어볼만한 것. 한글 번역 동의보감!

http://hidream.or.kr/dongeuibogam/donguibogam_main.html

...사실 나도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음. 정말 투명인간이 되는 법이 나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