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9일 토요일

친일이 나쁜 건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망 이후 저런 짤이 돌기 시작했다. 뭐 그 전부터 돌고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는데, 내 눈에 띈 건 아무튼 그 이후였다. 참 저걸 가지고들 김대중을 까는데ㅡ아니, 정확히는 아무 내용 없이 그냥 저 짤만 올려놓고 스르륵 잠수를 타는데ㅡ도대체 그래서 어쩌자는 건지 난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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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코너―오종석] 조문 외교

그러니까- 저 사진 속에서 김대중이 조문하고 있는 히로히토가 죽었을 때, 전 세계 150개국이 조문사절을 일본으로 보냈다. 우리나라도 당시 국무총리가 조문하러 일본을 찾았고, (아마도)반일감정 둘째가라면 서러울 중국도 부총리를 조문사절로 보냈다. 2차대전이 끝난 후 도쿄재판에서 히로히토가 살아남은 건 말도 안 된다, 죄질이 아주 나쁘다는 주장이 많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것과 별개로, 2차대전 당시의 행실이 어떠했든 히로히토가 죽을 당시(지금도 그렇지만) 일본은 친해 두면 좋은 나라였고, 국가간의 관계에 있어서 조문 또한 외교의 한 수단이기에, 조문사절을 보낸 150개국에서는 히로히토가 누구며 생전에 무슨 짓을 했는지보다 일본과의 적절한 관계 유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는 거다. 2차대전 당시 많은 피해를 입었다며 조문사절을 보내지 않은 네덜란드의 이야기도 나오는 것 같은데, 네덜란드는 네덜란드다. 애초에 유럽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가 어차피 잘먹고 잘사는 네덜란드는 일본이 별로 아쉬울 게 없었을 거다. 좋든 싫든 일본과 부대끼며 살아야 되는 한국이나 중국, 게다가 당시 개발도상국이었던 한국과 중국은 어쨌든 선진국 일본과의 적절한 관계 유지가 아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거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국의 조문사절 파견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한다면, 김대중의 조문도 얼마든지 그런 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당시 김대중은 제1야당인 평민당의 총재였고, 따라서 그의 행동 하나하나도 국가 원수나 총리 정도의 무게감은 없었겠지만 어느 정도의 외교적 의미를 가진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또, 김대중은 아시아 작은 나라의 일개 야당 정치인에 불과했지만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다 외국을 전전하며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긴 사람이고 보면, 그저 일국의 야당 총재 이상의 유명세를 타고 있었을 것이라는 예상도 충분히 가능하고. 그러니까, 김대중이 당시 마음속으로 일본에 대해서 무슨 생각을 갖고 있었건 간에, 그의 행위를 개인적인 것으로만 생각하고 해석하는 건 너무 단순한 짓이란 거다. 아, 물론 김대중이 사실 골수 친일파라서 히로히토를 조문하면서 속으론 어디서 본 표현대로 '천황폐하, 저 도요타 다이쥬입니다...' 뭐 이랬을 수도 분명 있다. 근데, 제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관심법을 아무데서나 쓰는 건 좀 자제해야 되지 않을까?

두 번째 신문기사는, 저걸 가지고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더더욱 모르겠다(신문기자 말고 저걸 캡처해서 퍼뜨리는 사람이). 호칭을 지네들 부르는 대로 불러주겠다는 게 뭐 그리 큰일인지 솔직히 난 잘 모르겠다. 어차피 일본 천황은 실질적인 권한이라곤 없는 그냥 화석화된 상징일 뿐이고, 지금 세상에 일본 건국신화나 천황의 족보라던가 만세일계라던가 그딴 거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도 없고... 그거 가지고 비위 좀 맞춰주면 좋은 일이고, 그걸로 뭔가를 얻어낼 수 있었다면 더 좋은 일이고... 다만, 그런 의미에서 한 가지 불만인 건 천황보다는 현지발음대로 덴노가 더 좋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있긴 한데,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니 패스...

근데, 한 가지 불만인 건, 김대중을 좀 까보겠다고 저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 그리고 김대중을 지지하지만 저 사진과 기사를 보면 뭔가 속이 불편하면서 말이 잘 안 나오는 사람들은 결국 '친일은 나쁜 거다'라는 공통의 전제를 갖고 있다는 거다. 근데 그거 정말 나쁜 건가? 난 식민지근대화론이라던가, 식민지 시기 조선인들이 일본에 가졌던 감정이 어떠했다라던가 뭐 그런 건 잘 모른다. 근데, 그게 독립 60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모두가 가져야 하는 공리여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보다도 이제 우리한테 필요한 건 이런 거 아닌가?

(심심해서 해보는 책 광고다. 클릭하면 네이버 책 페이지로 이동한다. 저 두 권 중에 한 권밖에 안 읽었다는 건 일단 논외로 하자-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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