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30일 일요일

서거드립 제 2탄

우연히 좋은 곳을 발견, 지난번 글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좀 더 찾아보기로 했다. 분명 그럴 것이다라고 어느 정도 확신은 하고 있었지만,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각 전직대통령 사망 다음날의 기사 제목이 어떻게 나와 있나 정리했다. 다만, 지난번 조선일보 경우처럼 제목이 따로 정리돼있지는 않았기 때문에 직접 지면을 눈으로 읽으며 찾아야 했다는 거... 다행히 1990년 이전의 지면 PDF파일이 제공되는 건 한국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서울신문의 네 종밖에 없었고, 지면 숫자도 별로 많지 않아 수고를 덜었다. 다만 이승만 박정희 때는 '한자 + 세로쓰기 + 인쇄상태 나쁨' 의 콤보로 인해 대충대충 읽은 관계로 빼먹은 부분이 있을지... 도 모르겠다-_-;;;

아무튼, 귀찮은 관계로 다- 생략하고, 기사 '제목'에서 '죽음'을 뜻하는 단어 중 어떤 단어가 사용되었는가만 확인해 봤다. 그 결과는 아래 그림으로...
* 이름 밑의 날짜는 '사망한 날'이 아니라 "사망 다음날"

...좀 예상과 달랐던 건,
첫째, 박정희의 죽음에 대해 '서거'를 사용한 신문이 많았다는 거. 조선일보조차 사용하지 않은 표현을다른 신문들이 사용했다는 건 좀 의외였다. 기사 내용을 대충 보면 그 중에서도 서울신문이 특히 박정희를 많이 좋아라 했던 듯하다. 시대가 시대였던지라 박정희가 죽은 후에도 눈치를 봐야 했거나, 아니면 박정희가 어쨌든 인물은 인물이었거나, 둘 중 하나겠지. 난 전자라고 생각하지만.
둘째, 동아일보는 최규하의 죽음에 대해서도 '서거'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 최규하가 인물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아니면 동아일보는 그 시점에 이미 전직대통령에게는 서거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던 걸까?

노무현과 김대중의 경우는 예상대로 서거로 통일. 노무현의 사망 직후, 대부분 언론사에서 제목에 '사망'이란 단어를 사용했다가 네티즌들의 항의 폭주로 황급히 '서거'로 바꾸던 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 일이 없었다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노무현에게는 사망, 김대중에게는 별세 정도의 표현이 대세가 되지 않았을까 하고 예상하고... 동아일보가 최규하에게 사용했던 서거 표현을 계속 사용하는지 보는 것도 재밌는 일이 되었을 테지만, 다 지나간 마당에 별 의미없는 일이겠지. (게다가 그렇게 시끄러운 일 없이 넘어갔으면 내가 지금 이런 거 찾고 있지도 않겠지-_-; )

아무튼 그렇다는 거다. 언론들이 박정희의 죽음을 높여서 서거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까지는 서슬퍼런 독재 시대의 아픈 단면으로 이해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근데 인터넷 스타 노무현의 죽음을 계기로 전직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표현을 다시 '서거' 로 바꿔버렸으니 이걸 어쩌지? 내가 정말 걱정하는 건 나중에 전두환이 죽었을 때 언론이며 방송에 '서거'로 도배되는 거다. 정말 그런 꼴까지 앞으로 봐야 되나? 설마 정말 그렇게 되면 우리의 네티즌들은 다시 방송사에 전화를 걸어 서거가 가당키나 한 말이냐고 따져 줄까? 그럼 애국민주네티즌들과 전사모의 대결을 볼 수 있을까? 그분의 아호를 따서 이름붙인 공원까지 만들어지는 판이니 그분 역시 상당한 수준의 추종자들을 보유하고 있을 거라 가정한다면, 꽤나 볼만한 판이 벌어지겠다. 그거 보고 있으면 분명 정말 재밌을 것 같다.

"우리 ***오빠대통령 정도는 돼야 죽었을 때 서거했다고 할 수 있는 거임! 어디 (독재자/빨갱이) 주제에 감히!"

분명히 중딩 때 H.O.T와 젝스키스 팬들의 신경전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일 거야... 아, 정말이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고 별로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우울해진다. 하아...

...그리고 그보다 더 우울한 건, 다 써놓고 보니까 내가 도대체 왜 저걸 찾아서 이런 글을 쓰고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거다. 또 주말이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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