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23일 수요일

촘스키, 부적절한 권위.

사실 몰랐는데, 매년 12월 10일이 유엔에서 정한 '세계 인권의 날' 이라고 한다[footnote]http://100.naver.com/100.nhn?docid=92593[/footnote]. 그리고, 그 즈음해서 아래와 같은 기사들이 여러 신문에서 떴다.


그리고 저 기사들이 수많은 커뮤니티 사이트들과 카페, 블로그 등에 퍼날라졌다. 그래, 용산참사나 국보법 기타 등등 저 기사들에서 언급되는 사건들은 분명 논란의 소지가 충분히 있고, 그걸 가지고 이명박과 이명박 정부를 비판할 수도 있다. 근데, 아무리 그래도 아래와 같은 식의 제목뽑기는 좀 너무한 거 아닌가?

촘스키 “MB정부 민주주의 탄압 중단하라”
촘스키 등 국제저명인사 173명 성명 (한겨레. 2009.12.09)


어쨌든, 성명 발표의 주체는 '민주주의 수호 공안탄압 저지를 위한 시민사회단체 네트워크'(민주넷)고, 촘스키를 포함한 173명은 그 성명서에 서명한 사람들이다. 근데 그걸 가지고 촘스키가 주체가 되어서 한국 정부에 한마디 한 것 같이 기사를 쓰는 건 좀 아니잖아. 수많은 인터넷 사이트와 블로그에도 그런 식의 제목을 달고 퍼져나갔고.

호들갑은 떨지 말자. 아무리 MB와 한나라당이 짜증나도, 아무리 촘스키가 후덜덜한 명성을 가졌어도, 성명의 주체와 참여자를 뒤바꿔 버리는 게 어딨어. 게다가 그 당시(12월 9일) 성명서 전문은 공개되지도 않은 상태였다[footnote]확실치 않다. 12월 11일인가 12일쯤에 겨우 찾아내기는 했는데, 그게 12월 10일 이전부터 거기 올라와있었을지는 모르는 거니까. 다만 12월 10일에 발표한다고 했었으니 그렇게 추측할 뿐. 다만 촘스키 및 서명에 참여한 인사들의 면면보다 성명서 내용에 관심을 갖고 찾아보려는 사람은 보질 못했다[/footnote]. 기사에 짤막하게 성명서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갔다고만 나와 있던 상태였는데 다들 그저 촘스키 촘스키. 더군다나 20개국 173명의 인사와 4개의 단체가 참여했다는데도 그저 촘스키 촘스키.

솔직히 난 저런 식의 국제서명운동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고, 어떤 식으로 서명을 받는지 모른다. 아무리 그래도 민주넷의 성명에 촘스키가 서명한 걸 가지고 촘스키가 나서서 한국 정부를 비판한 양 기사를 쓰는 건 오바고, 촘스키 등 173명이 정말 진지하게 서명했는지 아니면 그냥 이런 마음가짐[footnote]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1278252&cp=nv[/footnote]으로 대충 서명했는지도 모르는 마당에 성명서 내용보다도 촘스키 이름을 앞세우는 건 호들갑이 맞다.

그러니까, 촘스키가 성명서에 서명했다는 사실을 가지고 '촘스키가 MB정부 비판했대요! 대한민국 개망신!' 이라는 반응들은 많았지만, '도대체 성명서에 무슨 내용이 들어 있길래 그러지?' 하는 반응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는 게 난 아쉬웠던 거다. 그 성명서의 내용이 정말 제대로 된 비판이든, 아니면 허무맹랑한 환타지 소설이든 간에, 어느 시민단체가 MB를 비판한 것에 대해 그 내용보다 촘스키를 앞세우는 건 좀 우스운 일이잖아. 근데, 정말 짜증났던 건, 성명서를 발표한다고 했던 12월 10일에도, 그리고 그 후에도 그 성명서를 도통 찾아볼 수가 없었다는 거다. 어느 신문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고, 저 성명서를 발표했다는 민주넷의 홈페이지[footnote]http://minju.jinbo.net/[/footnote] 같은 데를 들어가 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이 단체에서 촘스키 이름으로 바람만 잡고 성명서 내용은 그냥 어물쩍 넘어가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던 차에 성명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좀 힘들었다.

노암 촘스키가 이명박의 반민주적 정책을 비판하다 (다함께 문서자료실)
노엄 촘스키가 이명박의 반민주적 정책을 비판하다 (레프트21 단독보도)

근데 왜 이게 다함께 자료실에서 나오는 걸까? 민주넷과 다함께는 무슨 관계인 걸까? '시민사회단체 네트워크'니까 다함께를 비롯한 수많은 시민단체들의 연합체라고 생각하면 되는 걸까? 왜 이건 '레프트21'에서만 단독보도된 걸까? '레프트21'과 '다함께'는 컨텐츠 제휴를 맺고 있다[footnote]http://www.left21.com/1_news_subject.php?pageNo=10&subject_code=02004000[/footnote]는데, 둘은 무슨 관계인 걸까? 성명서는 다함께와 제휴한 언론에만 보도되고, 서명운동에도 다함께 사람이 수고했고, 이 성명과 서명운동을 다함께가 주도한 걸로 봐도 될까? 촘스키가 성명서에 서명했다는 그 기사들을 열심히 퍼다나르던 사람들은 그걸 알까? 작년 촛불시위 때 참여자들에게 인터넷에서 그렇게 욕을 얻어먹던 다함께가 주도한 성명이라면 저 기사 퍼다나르던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footnote]말은 이렇게 해 놨지만, 다함께라는 단체에 대해서 딱히 안 좋은 감정은 없다. 왜냐면 일단 잘 모르니까...-_-;; 촛불시위 때 무슨 폭력시위를 유도하네 뭐네 해서 말이 많았는데, 그것도 뭐 내가 확인한 일은 아니고.[/footnote]

다시 촘스키 얘기로 돌아가서, 저 서명에 참여한 173명 중 가장 많이 언급되는 사람이 촘스키인데(아마 제일 유명해서 그렇겠지만), 촘스키란 사람이 우리나라 시시콜콜한 사안에 대해 정부를 비판할 때 그 이름을 앞장세울 수 있을 만큼 이 분야에서 권위를 가진 사람일까?

일단, 내가 아는 촘스키는 언어학자다. 물론 난 그쪽 전공이 아니라 그의 언어학 책은 구경도 못 해봤다.
그리고, 사회 및 정치에 대해서도 촘스키는 책을 많이 썼다. 다만 난 촘스키 책은 아직 한 권도 못 봤다.

도대체 촘스키가 정치, 사회 분야에서도 언어학에서의 그의 입지만큼이나 후덜덜한 권위를 가져도 되는 사람인지 궁금했다. 예술 및 인문학 인용 색인(A&HCI)에 의하면 1980년부터 1992년 사이에 촘스키는 생존해 있는 학자들 중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학자이고, 역대 인물 중 여덟 번째로 자주 인용되는 학자로 기록되어 있다[footnote]http://ko.wikipedia.org/wiki/%EB%85%B8%EC%97%84_%EC%B4%98%EC%8A%A4%ED%82%A4[/footnote]고는 하는데, 그게 다 언어학으로 쌓은 권위일지 어떻게 알아.

아무튼, 그래서 저 A&HCI 자료에 어떻게 접근해보려고 했는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고, 꿩 대신 닭이라고 구글 학술검색으로 촘스키의 저서들을 모두 검색해보기로 했다. 촘스키의 저서 목록은 여기서 가져왔고[footnote]http://www.chomsky.info/books.htm[/footnote], 그걸 구글 학술검색에 넣어서 각각 얼마나 인용됐는지 검색해봤다. 그 결과,

스크롤의 압박. 첨부파일 참고.


촘스키의 후덜덜한 인용숫자의 거의 대부분은 그의 언어학 분야 저작들에서 나왔다. 물론 그의 언어학 분야의 저작들은 그야말로 학술자료고, 그 외 분야의 저작들은 학계의 사람들보다는 대중들을 목표로 쓰여진 책이라고 본다면 인용횟수를 단순히 비교하는 건 좀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기서 확실한 건, 언어학 이외의 분야에서, 특히  정치, 사회 분야의 학계에서 촘스키는 별로 주목받는 존재가 아니라는 거다. 즉, '살아있는 학자 중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었다'는 타이틀이 정치, 사회분야에서 촘스키에 어떤 유효한 권위를 부여해 주지 않는다는 거다. 민주넷의 성명서에서도 마찬가지고. (물론 이것도 촘스키가 정치, 사회분야에서 뭔가 후덜덜한 논문이라도 써서 학계에 파란을 일으켰다던가 하는 일이 있었다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그래서 말인데, 정치, 사회분야에서 촘스키의 위치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베스트셀러 작가' 수준이 아닐까 감히 추측해본다. '진중권의 미국 버전'이라고 표현하면 딱 내 생각과 맞을 것 같다.

또 한 가지, 이건 다음 의문과도 연결되는 건데, 촘스키 등 20개국 173명의 사람들이 도대체 우리나라 사정에 대해서 얼만큼이나 잘 알고 있겠느냐는 거다. 몇 군데 미국 유명 일간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yongsan'으로 검색해봐도 아무것도 없다. 기껏해야 용산 미군기지 얘기나 가끔 보인다. 그들이 한국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갖고 한국 신문사들이 내는 영자신문 같은 걸 찾아본다던가, 아니면 누군가가 한국 소식을 영역해서 보내준다거나 하지 않는 이상 그들이 성명서에 언급된 사건들에 대한 심도있는 정보를 얻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쯤에서 한번 우리가 미국, 영국, 호주, 포르투갈... 등의 나라의 내부사정에 대해서 과연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었는지나 한번 생각해 보자.

그리고, 사실 내가 제일 궁금했던 건, 도대체 어떻게 173명에게서, 그것도 20개국의 사람들에게서 서명을 받아낼 수 있었을까 하는 거였다. 그래서 기사에 있는.
- 국제서명 조직을 위해 박준규(다함께 국제 연락팀) 씨가 수고해주셨습니다.
- 이 국제서명운동은 올해 초 광우병국민대책회의와 민생민주국민회의가 지난해 촛불 운동을 방어하기 위해 조직한 국제방어성명의 연장선에 있다.
라는 내용을 보고,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한번 검색이나 해보기로 했다.

우선, 레프트21에 실린 다른 기사[footnote]http://www.left21.com/article/1064[/footnote]에서, 다함께가 꽤 잘 갖춰진 국제적 조직을 갖고 있다는 짐작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국제 사회주의자 경향(International Socialist Tendency)의 한국 가맹단체라는 것도[footnote]http://ko.wikipedia.org/wiki/%EB%8B%A4%ED%95%A8%EA%BB%98[/footnote][footnote]http://ko.wikipedia.org/wiki/%EA%B5%AD%EC%A0%9C_%EC%82%AC%ED%9A%8C%EC%A3%BC%EC%9D%98%EC%9E%90_%EA%B2%BD%ED%96%A5[/footnote][footnote]http://en.wikipedia.org/wiki/International_Socialist_Tendency[/footnote].

그리고, 올해 초 광우병국민대책회의와 민생민주국민회의가 조직했다는 국제방어성명이란 건 이거다.
촛불구속자 석방을 촉구하는 국제호소문 발표

아마도, 저 호소문을 가지고 1월부터 계속 서명을 받으면서 근 1년을 끌어오는 동안 용산참사 내용 추가하고 언론노조 관련 내용도 추가시키고 그랬겠지. 그래서인지 1월의 성명서에 싸인한 사람들은 그대로 12월의 성명서에도 포함되어 있다. 연장선상에 있다니까 당연한 거겠지만... 싸인을 받고 내용을 추가하게 되면 다시 싸인을 받는 게 상식일 텐데 과연 그렇게 했을지는 모르겠다. 물론 싸인한 사람들의 면면을 보니 다시 부탁했더라도 해 줬을 것 같긴 하다.

전부 다 확인해 볼 수는 없었지만 다들 사회주의자라는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회주의자가 나쁘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별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도 않고. 다만, 다함께가 IST의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직접적으로가 아니라 각 나라의 IST 관련 단체를 통해서 각국의 인사들에게 접촉해서 서명을 받은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려는 거다. 미국 쪽에 대해서만 대충 검색을 해 봤는데, 직접 미국 ISO 에 속해 있는 사람들도 있고, ISO에 속해 있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우호적인 관계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고. 다양한 사람들 사이의 다양한 관계를 쉽게 정의내리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자신과 같은 정치적 지향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어느 정도 우호관계에 있는 사람 혹은 집단의 요청이라면 쉽게 들어줄 수 있는 거 아니냐는 얘기다. 그 사안에 대해서 설사 잘 모른다 하더라도... (물론 이쪽에서 만들어간 성명서 정도는 읽어봤겠지)

그리고 이건 여담인데, 물론 어떤 사람의 사회적 지위가 그 사람의 권위를 보증해 주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명색이 국제서명인데 (시민)이라던가 (~~대학 학생회)는 좀 너무하잖아. '우리 이렇게 많이 싸인받았어요!'가 목적이었다면 그냥 국내 서명으로도 충분하잖아. 명색이 국제서명운동인데 좀 이름 말하면 딱 알 것 같은 사람들 싸인만 좀 집중해서 받지들 그랬어. 물론 지금까지 쭉 해온 얘기가 '유명한 사람도 다 필요없다!'니까 다 쓸데없는 얘기긴 하지만.

...이리저리 힘들게 검색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뒤늦게 이런 기사를 발견했다.
우리 정부에 인권 개선 촉구 국제 서명

민주넷은 이메일 답장 형식으로 서명을 받았고, 서명인 가운데는 노엄 촘스키 미 매사추세츠 공대 언어학 교수와 하워드 진 미 보스턴 대학 명예교수 등 저명 인사도 포함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맨 처음 짐작대로 이메일이었어. 하긴 뭐 딱히 다른 방법도 없겠지만 설마설마했는데 진짜 이메일이었다니. 이쯤 되면 이메일이 다함께에서부터 각 대상으로 직접 보내졌는지 아니면 세계 각국의 IST 단체들을 경유해서 전달되었는지가 궁금하고, 또 몇 명에게 이메일을 보내서 그 중 몇 명으로부터 답장을 받았는지 뭐 그런 것들이 궁금하긴 하지만 더 이상은 힘들어서 포기.

근데, 그렇다면 도대체 호주의 경우나, 중간에 간간이 보이는 (시민)들의 경우는 뭘까. 설마 저거 일차 수신인에게 전달된 이후 행운의 편지 돌듯이 거기서 빙빙 돌았던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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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결론.

저 서명에 참여한 각국의 유명인사들이 한국의 국내사정에 대해 진지하게 관심을 가지며 걱정하고 있을 것 같지 않다. 서명은 다함께의 국제 네트워크를 이용했을 것으로 보이며, 서명운동을 주도하는 측과 서명하는 사람들 사이의 사상적 유사성으로 인해 서명도 쉽게쉽게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성명서의 내용은 서명을 받는 중간에 바뀐 것으로 보이며, 서명 참여자 중 일부는 자신의 서명 이후 성명서의 내용이 바뀐 줄도 모르고 있을 가능성마저도 있어 보인다. 성명 참여자 중 특히 촘스키를 많이들 언급하는데, 촘스키를 딱히 이런 분야에 어떤 전문성이나 권위를 가진 사람으로 보기 힘들다. 게다가 미국 내부 일도 아니고 멀리 떨어진 외국 일인 담에야 더더욱.

그러니까 저 성명서를 가지고 이명박 정부를 까고 싶다면 괜히 애먼 촘스키를 앞세우지 말고 공부를 좀 한 다음에 촛불시위 폭력진압이나 용산참사, 언론노조 탄압 등의 개별 사안에 대해 제대로 된 논리를 먼저 세우고 공격을 하자. 촘스키의 이름이 주장에 논리정연함을 부여해 주지 않으며 서명 참여자의 숫자가 주장에 힘을 실어 주지 않는다. 유효한 무기는 언제나 논리와 대안뿐이다. 



p.s. 이왕 쓰는 거, 촘스키라던가 저 서명에 참여한 개인 및 단체들에 대해서 좀더 제대로 스토킹(......)을 해 보려고 했는데, 며칠 동안 이 글을 붙잡고 있으려니 도저히 지겹고 귀찮고 힘들어서 대충 마무리. 난 안될거야 아마(......)

[footnote]http://reds.linefeed.org/groups.html 글 쓰면서 돌아다니다가 본 자료인데, '미국 좌파의 분류' 쯤 되는 듯. 나중에 읽어보면 나름 재밌을 것 같다. [/foot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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