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10일 화요일

호들갑은 떨지 말자 #1

최근 충남대 서상희 교수와의 인터뷰라면서 아래와 같은 내용의 글이 여러 군데 돌았다.

<충남대 서상희 교수 인터뷰>


링크를 안 하고 굳이 전문을 여기다 복사해둔 건 도무지 원 출처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검색어를 이리저리 바꿔가면서 검색해본 결과 위 글이 블로고스피어나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 돌기 시작한 건 11월 2일부터인 걸로 추측된다. 위 글과 같은 내용의 글이 가장 먼저 올라온 곳은 아무래도 여기인 것 같다(11월 2일 오전 8시경).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global&uid=122159

근데 이거, 읽고 있자니 정말 찝찝한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서프라이즈에 올라온 글에도 출처는 네이버 블로그라고 달려 있는데, 그 "네이버 블로그"를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는 거다. 원글이 인터뷰 형식으로 되어 있다는 건 누군가가 서상희 교수를 인터뷰했다는 건데, 설마하니 일개 블로거가 서상희 교수를 인터뷰하는 데 성공해서 그걸 자기 블로그에 올렸을 것 같지는 않다. 또 서상희 교수쯤 되는 사람이 일개 블로거의 인터뷰 요청을 받아들여 저렇게 시간을 내줬을 것 같지도 않고. 그래서 혹시나 서상희 교수가 자기 생각을 혼자 인터뷰 형식으로 풀어서 쓴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봤는데, 대충 검색해본 결과로는 서상희 교수는 네이버 블로그 따위 없다. 충남대 수의대 홈페이지에 딸려 있는 서상희 교수의 홈페이지나 미니홈피에도 위 인터뷰와 관련된 어떤 내용도 없다.

한편, 서 교수가 언론과 한 인터뷰 중에 위 글과 (그나마) 비슷한 것들이 있었는데, 다음과 같다.
"AI 대유행시 인류 멸망할 수도. 인플루엔자 대유행, 인류의 영원한 화두" (뉴스한국 2009.9.9)
“신종플루 백신 안전성 철저한 검증을” (대전일보 2009.10.9)

보면 윗글과 비슷한 내용이 어느 정도 들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위 뉴스한국이나 대전일보 인터뷰에 없는 내용도 들어 있고, 비슷한 내용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같은 인터뷰 내용을 가지고 쓴 거라고는 보기 힘든 표현의 차이나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 혹은 내용 배치의 차이 등등... 아무튼 찝찝한 구석이 많다. 최근에 인터넷에 돌던 맨 위의 글은 아무래도 뉴스한국 인터뷰를 기본으로 해서, 서상희 교수 관련 몇 개의 기사와 (누군지 모를) 글쓴이의 창의력이 조금 가미되어 만들어진 것 같다. 한 마디로, 조작인 것 같다는 얘기다.

그리고 또 한가지 찝찝한 것은, 누가 무슨 의도로 만든 건지는 모르겠지만, 과장되었거나 잘못된 내용이 많다는 거다.

...게다가 정부 당국과 A 제약회사의 유착관계로 인해 국민의 생명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시기를 놓쳤다며 둘 다 국민에게 큰 죄 를 짓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런 독감 대유행에 관한 정부 정책 시행은 직접 바이러스를 연구하고 팩트를 가지고 있는 전문가에게 자문 을 구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비전문가들의 추측성 말만 믿은 결과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

 글쎄, 일단 정부당국과 모 제약회사의 유착관계는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다. 그건 그렇고, 독감 대유행에 관한 정부 정책 시행은 일차적으로 역학이나 공중보건학 전공자들의 일이다. 해당 병원체를 연구하는 전문가의 의견 역시 중요하겠지만, 어디까지나 자문역일 뿐이다. 서상희 교수도 수의과대학을 졸업했고, 수의학과에도 수의공중보건학이라는 과목이 있는 모양이지만,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예방의학이나 공중보건학과는 좀 컨셉이 다른 과목인 것 같고, 또한 현재의 서상희 교수는 역학 전문가가 아니라 바이러스학 전문가다. 그런 정책 결정 과정에 있어서는 서상희 교수 같은 사람들보다도 역학 전문가들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맞다. 지금의 상황이 역학 전문가들의 판단 착오 때문이라면 안타까운 일이고, 애초에 그 자리에 역학 전문가들도 아닌 전혀 엉뚱한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면 그건 욕을 먹을 일이지만...

...또한 정부와 모 제약회사가 지금 생산한다는 백신은 동물실험도 안 거친 상태인데다 면역증강제를 쓴 백신을 대량으로 접종할 경우 분 명 사망자가 나올 것이라며 그렇지 않아도 짧은 시간에 대량으로 제조한 백신을 맞아야 하는 상황에서 부작용이 없을 수는 없는 데 큰 일이라고 말했다. ...

 그 '모 제약회사'가 어딘지는 모르겠다. 근데 그게 녹십자라면 이 부분은 다 틀렸다. 녹십자에서 개발하여 지금 접종중인 백신은 동물실험과 임상시험 모두 통과했고, 면역증강제도 안 들어가 있다.

...지난 27일부터 접종이 시작된 신종플루 백신은 (주)녹십자가 자체 개발·생산한 그린플루-에스다. 이 백신은 지난 6월 시제품 생산에 착수한 뒤 3~4개월여 만에 동물실험과 임상시험을 모두 마쳤다. 일반적으로 백신 개발부터 허가가 1~2년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에 비해 이번 신종플루 백신은 신속심사를 거쳤다....

신종플루 백신 부작용 없다고 하지만... (코메디닷컴 2009.10.30)


녹십자가 면역증강제를 사용해 내년에 생산 예정인 신종플루 백신 중 1000만 도즈 가량이 정부와 추가 계약될 전망이다. 현재 정부가 확보한 백신은 1200만 도즈(면역증강제 미사용)로, ...

녹십자, 신종플루 백신 1000만 도즈 정부와 추가 계약할듯 (헬스코리아뉴스 2009.10.26)

 
...서 교수는 지난 5월 세계 최초로 신종플루 백신을 만드는데 성공했지만 정부가 의도적으로 쓰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
 내 주제에 이런 말 해도 될지는 모르겠는데, 서상희 교수의 자질을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솔직히 이 대목이 조작이었으면 좋겠다. 근데, 아무래도 이 분은 진짜 진지하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중앙일보) ... 지난 5월 백신개발이후 복지부에서는 백신생산 초기 단계인 ‘후보 바이러스주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으며, 식약청에서는 ‘실험적 연구로는 의미가 있을 수 있으나,

              WHO에 의해 백신 생산용으로 검증되지 않은 만큼, 동 연구결과를 백신 생산과 연관

              지어 확대 해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두 기관에서 본인의 연구를 평가

              절하하는 것은 아닌가?
(서상희) 서운함 마음을 가진 것도 사실입니다. ...

[인터뷰] 독감바이러스 권위자 충남대 서상희 교수 (중앙일보 2009.10.6)


(서상희) ... 신종플루 표준바이러스를 국가기관보다 먼저 입수했고 백신 개발에도 성공했다.

             국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이것을 무상 제공할 용의도 있다고 밝혔다. ...
(대전일보) 보건복지가족부나 식양청에서는 이것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서상희)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그 전에도 이와 유사한 일이 반복됐다. 해외에서는 인정하는

            데, 국내에서는 오히려 평가절하하는 풍토에 대해 서운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 이유를

           안다....
(대전일보)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일종의 ‘괘씸죄’에 걸린 것인가?
(서상희) 많은 일들이 있었다. ...

“신종플루 백신 안전성 철저한 검증을” (대전일보 2009.10.8)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난 이런 음모론적 사고방식은 무지 싫어한다. 일단 그들이 그들의 음모론에 대한 근거라고 제시한 것들은 확인 혹은 통제가 가능한 사안이 아니다. 맞는지 틀리는지 확인할 방법도 없는 주장을 징징대면서 계속 반복재생하고 있으니 정말 짜증나는 일이다. 게다가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그들은 항상 옳고, 또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 해 왔으며, 모든 문제는 외부의 (부패한) 권력집단 때문이다. 즉 모든 원인이 외부 때문이며 자신은 아무 잘못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주변 환경이 아무리 변해도 이 사람들은 안 되면 남 탓만 하기 때문에 발전이 없다. 예전에 서상희 교수가 세계 최초로 신종플루 백신을 개발했고, 그걸 미국 CDC에 보냈다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그 후로 어떻게 됐는지 한번 보자면,

...앞서 5월말 서상희 교수팀은 자체 개발했다는 후보바이러스를 미CDC(질병통제예방센터)에 우송한 바 있으나, CDC측은 서 교수의 바이러스를 두고 "서 교수가 사용한 방법은 (백신) 후보로서 적합하지 않으며, 고려하고 있지도 않다"고 미CNN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

일양약품 "충남대와 신종플루 백신 개발" (아시아경제 2009.6.15)


참고로, 서상희 백신에 대한 식약청과 보복부의 반응을 보면,


... 이에대해 식약청 관계자는 18일 정책설명회에서 “현재 일양약품의 신종플루개발은 2~3년은 걸린다고 봐야한다”면서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복지부 또한 “서 교수팀의 신종플루 백신 개발 보도는 백신생산 초기 단계인 ‘후보 바이러스주’인 것으로 추정된다”며 신종플루 대유행에 대비하기에는 물리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

 ...해외에서는 인정하는데 국내에서는 오히려 평가절하한다면서? 저 기사 내용만 보면 오히려 미국 CDC의 평가가 보복부나 식약청보다 더 가혹해 보이는데. 미국 CDC마저도 한국정부와 보복부 식약청에 손에 놀아나고 있는 걸까? 세상엔 참 다양한 종류의 매트릭스가 존재하는 것 같다. 아무튼, 서상희 교수팀의 백신은, 뭔가 만들기는 했는데 뭔가 좀 부족하다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이 이후 내용에 대해서도 뭔가 해보고 싶은 말은 많지만, virology를 제대로 공부한 적도 없으면서 덤벼드는 건 너무 무모한 짓인 것 같아서 관둔다. 귀찮기도 하고... 다만 계속되는 정부와 모 제약회사 유착 음모론과, 공중보건학의 영역과 자신의 영역을 구분하지 못하는 모습, 면역증강제 첨가 여부에 대한 일관된 착각. 기껏 긴 글을 시간내서 읽은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 일이다. 더군다나, 맨 마지막에, 보복부와 식약청에서 2~3년 정도 걸릴 거라고 예상한 바로 그 백신. (세계 최초로 개발했으나) 미국 CDC 에서 부적합하다고 판단한 바로 그 백신을 어쨌든 공장 완공되면 대량생산하겠다고 큰소리치고 있으니 참 걱정된다. 국민건강은 둘째치고(그런 백신이 돌아다니는 건 보복부나 식약청에서 적절히 차단해줄 테니까), 괜히 애먼 회사 하나ㅡ일양제약ㅡ말아먹는 건 아닌지 참 걱정이다...


 조작된 내용으로 보이는 부분을 빼고 보면 좀 양호한 편이지만(...사실 그런 것 같지만도 않다 orz), 서상희 교수가 인터뷰에서 직접 한 말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에서도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잘 모르고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필요 이상으로 위험을 과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쯤 되면 (정말 이러고 싶지는 않지만) 서상희 교수의 의도가 의심되기도 한다. 나름 공부 좀 한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궁금해서 BRIC에 가 봤는데, 서상희 교수의 인터뷰에 대한 BRIC의 반응은 싸늘한 편이다. (정말이지 어떤 댓글러의 말처럼 연구비가 다 떨어져가는 건 아니신지... )

http://bric.postech.ac.kr/myboard/read.php?Board=sori&id=38048
http://bric.postech.ac.kr/myboard/read.php?Board=sori&id=25587
http://bric.postech.ac.kr/myboard/read.php?Board=sori&id=25167
http://bric.postech.ac.kr/myboard/read.php?Board=sori&id=25307

http://bric.postech.ac.kr/myboard/read.php?Board=sori&id=27869


그리고 결정적으로 서상희 교수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는 건,

Science. 2005 Mar 4;307(5714):1392.

Infectious diseases. Experts dismiss pig flu scare as nonsense.
Enserink M.

 

2005년 사이언스지에 뉴스 형식으로 가볍게 실린 내용인데, 원문은 셀프 :D ...고, 그 내용만 아주 간단히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2004년 말 서상희 교수 팀에서 한국 돼지에서 나온 바이러스의 것이라면서 Genbank에 몇 개의 partial RNA 시퀀스를 올렸다. Niman 이란 사람이 그걸 보고 WSN/33이라는 바이러스와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 WSN/33은 실험실에만 있고 자연에 존재하지 않으며, 매우 위험한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Niman 은 그걸 WHO에 알렸다.

 WHO에서는 단순한 실험실 실수인 것으로 판단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그래도 Stohr 라는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했다. Stohr 은 RNA 시퀀스를 검토한 결과 실험실 실수로 플루 바이러스와 WSN/33 이 섞인 것(RNA contamination)으로 결론지었다. 서상희 교수와 같이 일한 적이 있는 Webster 도 서상희 교수가 자기 실험실에서 WSN/33을 받아간 적이 있다며 contamination 설에 무게를 실어 주었다.
 
 그러나 서상희 교수는 WSN/33 같은 거 받은 적 없다며 부인. 다른 랩에서 contamination 아니란 걸 입증해 줄 것이라며 샘플을 Peiris 랩과 Kawaoka 랩에 보냈다. 그러나 해당 랩들에서는 대답을 거절했다. 한편 한국의 수의과학검역원에서도 실험결과 재현에 실패했다고 알려 왔으며, 분자생물학자 Fouchier 또한 contamination 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Niman 은 굴하지 않고 자기 홈페이지에 계속 관련된 글을 썼으며. 결국 Nature에서 Niman의 주장을 실어 주었다. 이에 짜증난 Stohr 은 Niman 은 연구성과도 별로 없으며 플루 전문가도 아니라고 까발렸고, Webster 또한 인터넷에서 사람들 선동하기가 너무 쉽다며 거들었다......

 

뭐, 판단은 알아서들 할 일이지만, 기사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한 마디가 참 가슴을 울린다.

 

"It’s so easy these days for somebody with a Web site to create a lot of panic.”


 RNA contamination 이야 일차적으론 직접 실험한 사람 책임이겠지만, 그게 Genbank 까지 올라갔다는 건 그 실수를 집어낼 능력이 그 랩에 없었다는 얘기고, 그건 좀 문제다. 그리고 이쯤 되면 (아마 그 랩의 지도교수였을) 서상희 교수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더구나, WSN/33 샘플을 준 사람은 있는데 받은 사람은 없는 상황이라니. 이런 말까지 해도 되나 싶기는 한데, 황우석 부류의 냄새가 난다. 또 (자칭) 세계최초 신종플루 백신개발과 관련한 피해의식과 음모론에서는 광우뻥 당시 우희종/우석균/박상표 부류의 냄새도 난다. 뭐 아직까지는 그들에 비하면 훨씬 양호한 상태인 걸로 보이지만 까딱 방심하면 언제든 그들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 같은 가능성이 엿보인다. 무려 Nature medicine 까지 쓰신 분이 어떻게 저럴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황씨는 사이언스도 썼는데 뭐. 어쩌면 그리 머지 않은 미래에 황우석-김양곤-양동봉 등과 함께 대한민국이 낳은 위대한 과학자의 반열에 올라설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댓글 4개:

  1. http://www.sisaseoul.com/news/articleView.html?idxno=12223



    휴... 이 사람 정말이지 설상가상 점입가경. 황우석-김양곤-양동봉의 뒤를 이어 대한민국이 낳은 위대한 과학자 라인 확정인 듯.

    답글삭제
  2. 논리전개가 상당히 믿을만한걸요. ㅎㅎㅎ

    최소한 보건복지부의 예방수칙 5개항보다는.... 훨씬요.

    답글삭제
  3. @goldenbug - 2009/11/30 00:16
    엥. 설마 서 교수 이야기를 두고 하시는 말씀이신가요... 근데 말씀하시는 보건복지부 예방수칙이랑은 별 관계없는 이야기 같은데요. 사실 읽으면서 찝찝했던 부분이 많이 있었는데, 확인하자면 공부해야 될 게 너무 많아져서 포기했습니다ㅜㅜ

    답글삭제
  4. @타타상자 - 2009/11/30 01:31
    하하하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