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27일 금요일

혼인빙자간음죄 위헌판결을 보고

작년엔 간통죄 합헌이라던 사람들이 웬일일까. 하긴 그 때도 2/3을 못 채워서 그랬지 위헌의견이 많긴 했었다. 그래도 1년밖에 안 지났는데, 장족의 발전인 듯?

헌재, `간통죄` 가까스로 합헌 … 위헌 의견 크게 늘어 (한국경제 2008.10.31)
[사설]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진 '혼인빙자간음죄' (조선일보 2009.11.26)

법 쪽에야 거의 문외한이라 몰랐지만, 혼인빙자간음죄라고 하니까 뭔가 대단한 건가 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그냥 형법 한가운데에 달랑 한 줄 들어가 있는 게 전부였다. 이렇게...

제304조 (혼인빙자등에 의한 간음) 혼인을 빙자하거나 기타 위계로써 음행의 상습없는 부녀를 기망하여 간음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개정 1995.12.29>


법은 결국 그 시대에 그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에 따라 만들어질텐데, 저 조항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가치관이 뭘까 생각해보니 이건 뭔가 타임머신을 탄 느낌이다. 그러니까,

첫째, "혼인을 빙자하거나 기타 위계로써..." 라는 말은, 여성은 결혼 혹은 그에 준한다고 볼 수 있는 어떤 사유가 있을 때만 섹스할 수 있다(혹은 그러한 사유가 있을 때만 섹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남성은 아무때나 해도 되지만)는 것이고,
둘째, 섹스는 분명 남녀가 같이 하는 것, 그러니까 둘 모두가 주체가 되는 건데, 굳이 '부녀'를 기망하여 간음했을 경우로 한정하는 건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또 하나의) 섹스의 주체가 아니라 남성에 의한 섹스의 대상으로 보는 거잖아.
셋째, 그나마도 모든 여성이 아니라 '음행의 상습없는' 여성의 성만을 보호하겠다는 거(그럼 왜 굳이 성매매는 못하게 막는 걸까? ). 그러니까 섹스를 경험하지 않은, 혹은 섹스 횟수가 적은 여성의 성, 성기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믿음인가? 법 만드는 분들 법 공부하기 전에 해부학 조직학 공부부터 좀 하자.

법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조만을 보호한다는 그야말로 주옥같은 명판결이 나온 지 50년도 더 지났는데, 95년에 개정된 법조문에도 그런 가치관이 남아있을 줄이야. 여성을 보호한다고 하는데, 도대체 이 법으로 보호하겠다는 게 여성이라는 인간 ㅡ남성과 동등한ㅡ 인 건지, 아니면 여성이라는 이름의 '애완동물'인 건지, 그것도 아니면 "순결, 정조" 라는 어떤 '재화'인 건지 난 모르겠다. 근데 한 가지 확실해 보이는 건,

여성계 "혼빙간 위헌은 시대적 요구" 대환영
유림단체 "성적으로 문란한 사회 될 것" 반발


...필요없다잖아?

조선시대의 감성으로 21세기를 살아가는 분들은 오지랖도 참 넓다. 도포를 걸쳐서 그런가?


뭐, 아무튼 이제 간통죄랑 성매매 남았네. 앞으로 재밌는 구경거리가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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