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8일 금요일

호들갑은 떨지 말자 #2

'국민' 때문에 쇠고기 협상 뒤집은 대만...우리는? (오마이뉴스)
대만發 '촛불 후폭풍', 한국에 역상륙할까? (프레시안)

위 기사들을 읽은 나의 심정

정말이지 거짓말 안 보태지 않고, 나 진짜 2008년으로 돌아온 줄 알았다. 이것들 아직 정신 못 차렸구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조건을 대폭 완화하려던 대만이 국민들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혀 소의 월령에 관계없이 6개 부위(머리뼈, 뇌, 눈, 척수, 분쇄육, 내장) 관련 생산품의 수입, 수출, 판매를 금지하는 쪽으로 식품위생법을 개정했다. 이에 우리 정치권에서 "우리도 미국과 재협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당장 제기됐다.
(위 링크 기사. 프레시안)

우선 대만과 우리나라의 협상내용부터 비교해 보자.

수입금지되는 부위


대만 (식품법 개정 전) 참고자료
한국 (추가협상결과 반영) 참고자료
모든 월령
편도, 회장원위부, 기계적 회수육(MRM), 기계적 분리육(MSM)

편도, 회장원위부, 기계적 회수육(MRM), 기계적 분리육(MSM)
30개월 이상
뇌, 머리뼈, 눈, 삼차신경절, 척수, 등배신경절, 척주(꼬리뼈, 흉추/요추의 횡돌기, 천추 날개 제외) 머리뼈와 척주에서 얻은 선진회수육(AMR)

뇌, 머리뼈, 눈, 척수, 등배신경절, 척주(꼬리뼈, 경추/흉추/요추의 횡돌기와 극돌기, 천추의 정중천골능선과 날개 제외), 머리뼈와 척주에서 얻은 선진회수육(AMR)

* 분쇄육, 가공제품, 그리고 쇠고기 추출물은 선진 회수육을 포함할 수 있지만 특정위험물질과 모든 기계적 회수육/기계적 분리육은 포함하지 않아야 한다.
* 30개월 미만 소의 뇌, 눈, 머리뼈, 또는 척수는 특정위험물질 혹은 식품안전 위해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나 수입자가 이들 제품을 주문하지 않는 한, 이들 제품이 검역검사과정에서 발견될 경우, 해당 상자를 반송한다.

빨간 글씨로 된 부분은 대만에선 금지하지만 우리나라에선 금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부위다. 왜 저런 차이가 생기냐면, 아래는 우리나라 협정서에만 있는 내용인데,

"쇠고기 및 쇠고기 제품"은 미국 연방 육류검사법에 기술된 대로 도축 당시 30개월령 미만 소의 모든 식용부위와 도축 당시 30개월령 미만 소의 모든 식용부위에서 생산된 제품을 포함한다.
......
본 수입위생조건 제1조(9)(나)의 적용과 관련하여 미국정부는 미국내에서 도축되는 모든 소(수출용 또는 내수용을 불문한다)로부터 미국규정(9CFR§310.22(a))에 정의된 특정위험물질(SRM)을 제거한다.


미국 규정 9CFR§310.22(a) 에는 특정위험물질이 어떻게 정의되어 있냐면,

(1) 30개월 이상 소의 뇌, 머리뼈, 눈, 삼차신경절, 척수, 척주(꼬리뼈, 흉추/요추의 횡돌기, 천추 날개 제외), 등배신경절
(2)
모든 소의 편도
(3)
모든 소의 회장원위부

...위에 링크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기사가 거짓말이 아니라면 저 규정은 수출용/내수용 공통이다. 그러니까, 아까 빨간 글씨로 해 놓은 삼차신경절, 경추, 극돌기, 정중천골능선 모두 제거된다. 우리나라에는 어차피 안 들어오는 부위라는 얘기다.

...그럼 어차피 안 팔고 안 들여올 부위를 왜 굳이 저렇게 써 놨냐고? 나도 몰라.
......혹시 몰래 빼돌려서 우리나라에 팔려고 하는 거 아니냐고? 음모론 즐.

QSA

사실 저 위에서 금지하고 있는 부분은 OIE의 권고사항[footnote]http://www.oie.int/eng/normes/mcode/en_chapitre_1.11.6.htm[/footnote]과 거의 일치한다. OIE는 WTO가 공인한 동물검역에 관한 국제기준을 수립하는 국제기관이다[footnote]http://www.wto.org/english/tratop_E/sps_e/spsagr_e.htm#Annexa Annex A. 3. (b)[/footnote]. 아무튼 저 협상내용대로라면, 우리나라나 대만은 저 표에 적은 부위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부위는 월령 상관없이 수입을 하게 되는 건데, 어쨌든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거다. 미국 FDA의 규정[footnote]http://edocket.access.gpo.gov/2008/pdf/08-1180.pdf[/footnote][footnote]http://www.fda.gov/cvm/Images/6597bse.pdf[/footnote]이나, 유럽연합의 규정[footnote]http://www.agriculture.ie/feedingstuffs/legislation/Animal_Health/EU_Legislation/CommReg722_2007(Amends999_2001).pdf[/footnote]이나 세부사항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이 OIE 권고사항과 거의 비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찝찝하다고 몇 가지 조건을 더 달았으니 그게 QSA다. 그래서 애초 협상결과 SRM 제외하고 연령 상관없이 모든 부위를 수입하기로 했지만, 우리나라는 이를 통해서 30개월 이상 살코기(결국 30개월 이상은 아무것도 안 산다)를 제외시켰고, 30개월 미만에서도 뇌, 눈, 머리뼈, 척수를 제외시켰다[footnote]http://news.hankooki.com/lpage/economy/200806/h2008062303043021500.htm[/footnote]. 대만도 QSA 를 통해서 자세한 수위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30개월 이상 소는 모두 제외시키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footnote]http://www.mdtoday.co.kr/mdtoday/index.html?no=103422[/footnote]. 이번 법 개정을 굳이 한 걸 보면 30개월 미만의 뇌, 눈, 머리뼈, 척수 등을 막고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따라서, 양국의 QSA 내용을 빼면 대만이 합의한 조건은 우리나라가 합의한 조건과 똑같다(QSA 내용을 합치면 오히려 우리나라가 조금 더 강력했다). 물론 똑같은 걸 우리나라는 2008년 5월에 추가협상까지 해 가면서 만들어냈고, 대만은 그걸 2009년 10월까지 버티다가 만들어냈다는 차이는 있다. 아마 대만에게나 미국에게나 우리나라의 수입위생조건이 어떤 기준이 됐겠지. 물론 우리나라가 협상을 멍청하게 하는 바람에 주변국에 안 좋은 선례를 만들어줬다는 식으로도 해석은 가능하겠지만, 애초에 안 위험한 걸 가지고 왜 꼭 땡깡을 부려야 되는 건데. 양쪽 모두 OIE의 권고사항보다 강력한 기준을 가지고 있잖아. WTO 체제 하에서 무역을 할 생각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산 쇠고기를 어떻게든 막아야겠다면, 납득할 만한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와야 되는 거다[footnote]http://www.wto.org/english/tratop_E/sps_e/spsagr_e.htm#Article2[/footnote]. 아니면 눈물을 머금고 돈을 발라서라도 같은 기준을 국산 쇠고기에도 적용하던가[footnote]http://www.wto.org/english/tratop_E/sps_e/spsagr_e.htm#Article4[/footnote]. 이도저도 다 싫다면 그냥 WTO를 탈퇴하던지.

재협상?
대만이 이번 법 개정으로 6개 부위를 금지시키면서 분명 우리나라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덜 하게 되는 건 맞다. 그 차이는 두 가지, 30개월 미만의 내장과 역시 30개월 미만의 분쇄육이다. 대만이나 일본이 우리보다 나은 조건으로 협상하면 재협상하겠다고 한 말 때문에 신난 사람들이 많은데 일단 보자. 저게 협상이냐? 기껏 다 협상하고 도장찍은 걸 뒤에서 국내법 바꾸고 입 닫은 거잖아.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저거 WTO에 제소라도 들어가면 백이면 백 다 깨진다. 본전도 못 뽑고 OIE 권고안대로 수입하게 되는 수가 있다. 물론 미국 입장에서 저 정도 열어준 거라도 어디냐 하고 그냥 눈감고 넘어갈 수도 있다(내 생각에도 그럴 것 같다). 그래서 어떡하자고. 대만에서 법 바꿔서 뒤통수친 걸 가지고 우리도 똑같이 해달라고 '재협상'을 하자고? 애초에 저 결과는 대만과 미국의 '협상'결과로 나온 게 아니다. 차라리 우리도 대만처럼 협상 상대국의 뒤통수를 쳐서라도 법 바꿔서 막자고 하는 사람들은 그나마 양심은 있다고 봐 줄 수 있겠는데, 재협상이라니, 재협상이라니!! 

근데, 법 바꾸면 해결될까? 까딱 잘못하다가는 미국은 물론이고 캐나다까지 와르르 무너지는 데다가 그나마 추가협상과 QSA로 막은 미국쇠고기까지 OIE 기준대로 풀어주게 될 가능성이 있지[footnote]http://www.nongmin.com/article/ar_detail.htm?ar_id=168278&subMenu=articletotal[/footnote].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오든 캐나다 쇠고기가 들어오든 미국산 쇠고기 월령제한이 풀리든 내가 보기엔 다 안전하니까 난 상관없다. 그래도 도저히 불안해서 안되겠다 하시는 분들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노력하는 건 좋은데, 재협상 해봤자 씨알도 안 먹힐 가능성 높고, 법 가지고 장난치다가는 겨우 막아놓은 것까지 와르르 무너질 가능성 높다는 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나마 성공률을 높이려면 당장 한우에 대해서부터 월령기준이랑 SRM 기준 빡세게 정하고, 검역 제대로 하고, 법을 바꾸려면 같은 기준을 한우에도 적용시키는 게 좋을 거다. 우리나라는 이제 땡깡부리면 되는 후진국 및 개도국이 아니라 나름 국제사회에서 암묵적으로 바른 행실을 요구받는 선진국이란 걸 명심하자[footnote]http://ko.wikipedia.org/wiki/%EC%84%A0%EC%A7%84%EA%B5%AD[/footnote].

이쯤 하면 일본드립이 한 번씩 나올 것 같은데, 제발 일본 반만이라도 따라가고 나서 그런 소리를 하자. 일본이 그런 조건으로 협상하려고 얼마나 돈을 들여가면서 고생했는데. 거기다가 그거 다 뻘짓이라는 소리까지 들어가면서[footnote]http://www.fujipress.jp/finder/access_check.php?pdf_filename=DSSTR000200020003.pdf&frompage=abst_page&errormode=Login&pid=428&lang=English 회원가입만 하면 볼 수 있다.[/footnote]. 근데 우리는 뭘 했을까? 난 한우에 월령제한이 있다는 소리도 들어본 적 없고, 한우에서 특정위험부위를 제거한다는 소리도 들어본 적 없다(도저히 못 찾겠으니 혹시 그 기준을 아시는 분은 좀 알려주시기 바란다).

그러니까 제발, 우리 호들갑은 좀 떨지 말자. 블로그며 커뮤니티에 저런 거 퍼날라놓고 비분강개하여 나라 걱정하는 댓글 하나 달 때마다 이쪽 표가 하나씩 떨어져 나갈 거다. 명색이 언론사라는 곳들에서 저런 기사 하나씩 때려서 어떻게든 촛불을 되살려보려고 할 때마다 지역구가 하나씩 떨어져 나갈 거다. 그리고, 명색이 대한민국의 정당이라는 것들이 저런 거에 흥분해서 당장 재협상하라고 설레발칠 때마다 재집권이 5년씩 멀어질 거다. 그러니까 제발, 우리 호들갑은 좀 떨지 말자. 이미 내놓은 진보신당[footnote]http://www1.newjinbo.org/xe/bd_news_comment/459720[/footnote]이랑 민주노동당[footnote]http://www.kdlp.org/news/1222355[/footnote]은 그렇다 치는데, 민주당[footnote]http://www.minjoo.kr/news/news.jsp?category=briefing[/footnote]. 너마저...orz


p.s. 내가 그래서 노무현이 원망스러운 거야. 물러나기 전에 확 다 열어제끼고 나갔으면 지금 이런 상황까지는 안 됐을 거 아냐. 정말이지 요새는 어떻게 다들 하나같이 자폭 팀킬만 하는지, 이 놈이고 저 놈이고 전부 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보낸 트로이목마 같애. 이제 어디 찍어야 돼?

p.s. 이제 이 문제로는 화내는 것도 짜증내는 것도 귀찮은데, 그래도 글에서 감정을 빼는 건 쉽지가 않다.

p.s. 이쯤에서 꼽아 보는 적절한 추천도서.
과학이 광우병을 말하다. 유수민. 지안.주-나는 사실을 존중한다. 정지민. 시담.눈초의 광우병 이야기. 양기화. 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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