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9일 토요일

적응의 힘

뭐 새삼스러운 이야기지만 그렇다. 인간의 적응력이란 참 대단하다.

이사를 하고 나서, 아침 저녁 합쳐서 버스에 앉아있는 시간이 하루 30분에서 두 시간으로 늘어나 버리는 바람에 도대체 차 안에 있을 때 뭘 해야 되는지가 참 고민이었다. 이어폰 끼고 하릴없이 창 밖이나 보다가 꾸벅꾸벅 졸고만 있기는 너무 아까우니까.

그래서, 버스 안에서 책읽기에 도전했는데, 역시나 쉽지 않았다. 아주 어릴 때는 차멀미를 자주 경험했고, 좀 커서는 그건 없어졌지만 그래도 뭔가를 보려고 펴들면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렸으니까. 그래도 뭐라도 좋으니 책을 좀 읽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 그리고 어쨌든 가만히 있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에 책읽기를 다시 시도했다. 그리고 역시나 처음엔 힘들었다.

...근데, 계속 보니까 그게 되더라. 신기했다. 예전에 하루 30분 버스 타던 시절에는 그리도 힘들어서 시험보는 날 학교가는 버스에서도 차마 공부할 걸 꺼내볼 생각을 못 했는데, 이제는 버스 안에서 한 시간도 넘게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게 됐으니까. 물론 아직 원서나 논문 같은 걸 펴들고 읽을려고 하면 몸이 반응하기는 한다. 공부는 하지 말라는 신의 계시인가.

...하기사, 학교 다닐 때, 하루 중 제일 좋은 시간을 꼽으라고 하면 난 등/하교 시간을 꼽곤 했었다. 왜냐면 그 시간은 정말로, 물리적으로, 공부하기가 불가능한 시간이었으니까. 그렇다고 내가 뭐 먹는 시간 자는 시간을 쪼개 가면서 공부했냐 하면 그건 또 아니지만 :D

...아무튼 그래서, 아침저녁 버스에 앉아있는 시간에는 책을 보더라도 웬만하면 공부 관련된 거 말고 다른 걸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럼 문제는 일과시간에 얼마나 공부에 집중하느냐가 되는데, 아, 찔린다.

......아무튼-_-;;;; 그렇게 버스 울렁증을 극복했다고 생각하고, '역시 인간은 뭐든지 할 수 있어!' 라고 생각하며 흐뭇해하던 차에 다시 문제가 생겼다. 어느새 책을 보는 시간보다 책을 펴들고 앉아서는 꾸벅꾸벅 조는 시간이 많아졌고, 졸다가 내릴 데를 지나치는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버스 안에서 책 읽는 것에 이제 몸이 완전히 적응해버렸나 보다. 전혀 불편하지가 않으니 잠도 잘 오는 거겠지.

그래서 잠은 일찍 자야 되는데, 앞으로 잠은 열두 시에 자야지라고 수없이 결심해 보지만 쉽지가 않다. 컴퓨터를 치워버리던가 해야지. 하지만 문제는 컴퓨터로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는 거다. 그리고 시간이 별로 없다는 거다. 그리고 이 저주받은 집중력. 그리고, 일은 진작부터 나와 있있던 일인데, 직접 안 하시고 시키실 생각이셨다면 좀 진작에 던져 주시면 안 될까요...ㅜㅜ

p.s. 그래도 토요일 안에는 다 끝낼 수 있겠지. 그리고 일요일엔 놀고, 월요일부터는 일과 시간에 집중해서 진짜 열심히 하는 거지. 아,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댓글 4개:

  1. 버스 안에서 책을 잘 못 읽겠다->책을 잘 읽게 되었다->졸면서 책을 읽게 되었다... 실로 대단한 적응력이군요ㅎㅎ 재밌게 보고 갑니다~ 아.. 그리고 '지상 최대의 쇼'는 잘 읽고 계시는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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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CANO - 2010/01/20 19:45
    앗... 그걸 아직까지 기억하고 계시면 안됩니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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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타타상자 - 2010/01/22 01:47
    모든 책을 즐겁게 읽을 수는 없겠죠? 그 책이 다시 말을 걸어올 때 편안히 읽으시길... 저는 절대 재촉한 적은 없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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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CANO - 2010/01/20 19:45
    저는 도킨스 아저씨의 팬이라 책은 항상 저한테 말을 걸고 있죠. 문제는 제가 게을러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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