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안산에 사는 것도 아니니까 제삼자는 그냥 조용히 있으려고 했는데, 돌아가는 꼴을 보고 있으려니 영 짜증이 난다. 굳이 선거 전날 밤에 졸린 눈을 비벼가면서 글을 쓰고 있는 건, (어차피 여기다 써놓는 글 누가 볼 것 같지는 않지만) 그냥 마음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다가 선거가 지나가 버려 말하기도 뭣한 시점이 되어 버리면 짜증날 것 같아서, 그리고 그냥 구경꾼 입장이지만 선거 결과가 마음에 안 들게 나오면 더 짜증날 것 같아서다. 사실 며칠 전부터 '김영환으로 단일화해라'라는 제목을 생각해 두고 글을 하나 쓸까 말까 하다가 귀찮아서 미루고 있었는데, 단일화가 깨지는 바람에 제목이 바뀌었고, 미루다 미루다 어느새 선거 전날이 되는 바람에 지금 이 시간까지 잠도 못 자고 글 쓰고 있다. 제길.
이번 보궐선거에 대한 예비후보등록은 8월 12일부터였고, 이미 그 전에 당선자가 의원직을 박탈당하면서 전초전이 치열한 상황이었던 걸로 보인다. 낙선자 중 한 명이었던 임종인은 당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다.
(전략) ... "무소속으로 나오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밝힌 임 전 의원은 "최근 지역에서 지난 총선 출마자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했었는데, 근소한 차이지만 자신의 지지율이 가장 높게 나왔다"고 주장했다. 임 전 의원은 민주당 입당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 (후략)
그러나, 결국 민주당에서는 전략공천 얘기가 계속 나오다가 결국 포기. 여론조사를 경선삼아 후보를 내기로 결정, 김영환 후보를 공천했다.
민주당은 28일 재보선이 치러질 안산 상록을에 대해 "안산 상록을의 경우 100% 여론조사를 통해 공천을 결정키로 했다"고 밝혔다. 우상호 민주당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이같이 말한 뒤, "후보자 간에도 경선룰이 완벽하게 합의됐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안산상록을 후보는 김영환 전 과학기술부 장관, 김재목 현 지역위원장, 윤석규 전 청와대 행정관 중 1인이 여론조사를 통해 확정될 예정이다. ... (후략)
그랬더니 기껏 한다는 소리가, 다른 당이 기껏 경선까지 해서 공천해 놨더니, 후보등록을 하지 말란다. 민주당이 후보 정한다고 머리 싸매고 고민하고 있을 때는 밖에서 여론몰이하며 간보기하고 있다가 기껏 결정해 놓으니까 한다는 소리가 저거다. 이 글에는 안 적었지만, 열린우리당 탈당할 때의 그 기개, 통합민주당으로 합칠 때도 거부한 그 기개는 어디 가고 '야권 전체'라는 이름으로 어느새 '우리는 모두 친구'다. 그러면서 민주당에다 대고 '우선 단일화에 응하'라며 몰아대는데, 뭘 믿고 그러나 보면 자신은 '야 3당이 지지하는 후보이고, 야권 대통합을 위한 역할을 해야'하기 때문이란다. 야 3당... 그거 대단해 보이지만 결국 셋이 합쳐서 민주당 반에 반이나 될까말까한 수준이고 보면, '난 이미 야 3당의 지지를 업고 있으니 야권 대통합을 위해 민주당이 양보하셈'이라는 주장을 어찌 저렇게 당당하게 할 수 있는지 난 잘 모르겠다. 단일화 방법에 대해서는 '논의 기구가 만들어지면 방법이 정해지는대로 따르겠다'고 쉴드는 쳤지만, 단일화란 것도 하나의 협상이라고 생각한다면, 양쪽이 가진 패를 비교해봤을 때 애초에 임종인 측에서 저런 식으로 저런 태도로 단일화를 요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만약에 단일화된다고 했을때, 그리고 김영환으로 단일화된다고 했을 때 김영환이 민주당을 탈당해서 야 4당의 단일후보로 나설 게 아니었다면 전혀 의미없는 소리다. (이미 후보등록시한이 지난 시점이었기 때문에 가능하지도 않았을 거다) 저쪽 얘기에 따르면 "그 이유는 적합도 조사란 어떤 사람이 단일 후보로 적합한지를 묻는 것이지 소속 정당의 적합도를 묻는 것이 아니기 때문" 이라고 하는데, 웃기지도 않다. 그럼 "선거란 어떤 사람이 국회의원(혹은 대통령이나 아무 선출직 공무원)으로 적합한지를 묻는 것이지 소속 정당의 적합도를 묻는 것이 아니" 니까 선거에서 당명 다 뗄까? 아니면, "비례대표제는 어떤 당이 적합한지를 묻는 것이지 그 정당이 비례대표로 내세운 후보들의 적합도를 묻는 것이 아니" 니까 귀찮게 비례대표 후보 명단 사전에 공개하지 말고 그냥 투표한 담에 당에서 알아서 골라서 앉히라고 할까?
선거는 인물만 보고 인물만 가지고 하는 게 아니고, 정치도 마찬가지다. 집도 절도 아무것도 없는 인물론의 한계는 사실 지난 대선에서 문국현이 잘 보여줬다. 문국현이 별볼일없는 지지율을 받으며 낙선한 걸 꼬집으려는 게 아니라, 정치는 혼자서 하는 게 아니고 최소한 그와 사상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네트워크, 그리고 그 사상에 이론적 근거와 배경을 제시해줄 수 있는 두뇌집단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는 거다. 그걸 가장 쉽게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이 정당에 들어가는 것이고, 유권자가 그걸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후보자의 정당을 확인하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당명을 표기할지 말지의 여부는 토론의 대상이 아니다. 절대 지우면 안 되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링크한 기사 맨 끄트머리에 있는 민주당 대변인의 말을 곱씹어봐야 된다.
(전략) ... 노 대변인은 19일 ‘투데이코리아’와의 통화에서 “단일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소속 정당을 표시하지 말라는 것은
민주당의 지지도가 더 높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 아니냐?”며 “그러면 우리 민주당에서 임종인 후보에게 민주당에 들어와 경선을
하라고 했을 때 응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결국 이것 때문인 건 아니고? 대선 때 문국현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평소에는 민주당 신나게 까다가도 표가 아쉬울 때는 어김없이 와서 반한나라당 연대 운운하면서 달라붙는다. (근데 그 지지자들의 주장 중 하나가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노선 차이는 없다는 거 아닌가? ) 지역주의 욕하면서도 전라도 표는 필요하고, 한나라당과 똑같다고 욕하면서도 반한나라당 연대를 위해 민주당의 표가 필요하니까 내놓으라는, 더군다나 자기 주제도 모르고 자기가 더(혹은 자기만) 훌륭하니까 민주당은 표만 몰아주고 뒤에 가만히 있으라는 사고.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되는 걸까? (이를테면, 지난 대선 때 자선당*에서 '보수진영 단일화해야 되는데 우리 이회창 후보가 더 훌륭하니까 무조건 우리 쪽으로 단일화해야 됨. MB랑 한나라당은 경상도+수도권 표나 내놓고 찌그러져 있으셈' 이라고 하는 상황을 설정하면 비슷한 예가 될까? )
아무튼 이렇게 된 거 한번 두고 보자. 아주 재밌는 구경거리가 될 듯 하다. 여론조사 결과도 몇 개 나와 있으니까 선거 당일 표심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보는 것도 나름 재밌을 것 같다. 다만, 단일화가 됐을 때 떨어진 후보 지지자들의 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확인해보고 싶었는데 그건 좀 아쉽게 됐다. 그리고, 만약에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된다면 임종인은 욕을 좀 먹어야 된다. 정신 못 차리고 거기 동조한 3당도 함께.
* 정정 : 자유선진당은 지난 대선 이후에 창당했고, 이회창은 당시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착각했다... 다만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아 제발. 국회의원이라는 작자들이 무슨 아고라 서명놀이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지금 뭐 하자는 거지? 삼권분립이라며. 물론 개개인은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갖지만, 입법부의 국회의원들이 사법부의 의사결정에 노골적으로 영향을 주려는, 이런 것까지 정말 멋대로 해도 되는 건가?
정말이지 뽀샵으로 사기치다가 걸려서는, 반성은커녕 뻔뻔하게 값싼 애국주의나 음모론에 호소하고, 눈물샘을 자극해서 동정론에 기대 어떻게 상황이나 모면해 보려던 작자를, 뭐, 선처해 달라고? 이 사람들은 아직도 황우석의 줄기세포 매트릭스에 사나?
어디어디 정부청사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하나도 안 먹었다던가, 어디 전경들은 미국산 쇠고기를 먹었다던가 하는 것들이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 혹은 위험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부터 일단 짚고 가자. 쇠고기의 안전성은(미국산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 것이든) OIE 등급이라던가, 동물사료 관련 조치의 수준, 위험부위의 제거, 월령 제한, 해당국가의 광우병 발생 빈도 등을 고려해서 판단할 문제다. 당연한 것 같은데 의외로 헷갈리는 사람들이 많은 듯...
구내식당이나 급식소가 딸린 기관/시설에서 그걸 직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거의 대부분이 업체에 위탁해서 해당 시설을 관리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정부청사들도 그런 것 같다.
(전략) 8개월간 중앙청사 2161.2㎏, 과천청사 3325.5㎏, 대전청사2265.5㎏, 제주청사 474.6㎏ 춘천청사 8㎏ 등
5개 정부 청사 구내식당에는 호주산 쇠고기만 공급됐다. 지난해 7월부터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본격 재개된 뒤 정부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시중에서는 본격적으로 유통됐지만, 정작 공무원 급식에는 한번도 공급되지 않은 셈.
이들 청사 대부분은 구내식당을 외부 업체에 위탁하고 있다. 중앙청사와 과천청사 구내식당을 담당하고 있는 위탁급식업체 E사의
업소 관리 담당자는 "우리가 쇠고기를 공급받는 거래처가 축협인데, 축협에서 미국산을 취급하지 않고 호주산만 쓰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자연히 호주산만 취급하게 된 것 같다"고 미국산 쇠고기를 쓰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후략, 강조는 인용자)
급식서비스를 맡기는 쪽에서 위탁업체에 어느 정도까지 요구할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다만, 기껏해야 식사의 가격대 정도, 잘 해 봐야 메뉴 구성에 몇 마디 할 수 있는 정도겠지. 업체가 서비스를 한두 군데에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면야 분명 대량거래를 통한 비용절감 혹은 안정적인 공급 등의 이유로 식재료의 공급원과 경로 등은 정해져 있을 거다. 수많은 고객들 중 하나가 원한다고 해서(설사 그게 정부청사라고 해도) 재료 공급라인을 늘리거나 혹은 바꾸는 게 쉬울까? 아니 가능하기나 할까? 혹시 가능하다고 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느 기업이 그걸 하려고 할까?
더군다나 다른 재료도 아니고, 무려 '미국산 쇠고기'다. 실제 위험한 정도와 관계없이 그 많은 사람들이 위험하다 위험하다 주문을 외워대는 바람에 웬만한 사람은 그냥 찝찝해서라도 안 먹고 말지 하는 바로 그것. 근데 그걸 단 하나의 고객을 위해서 새로 수입해서 공급하라고?
(전략) 급기야 한 국회의원이 정부 청사 구내식당에 미국산 쇠고기를 등장시키는 건 어떠냐는 제안에 정장관은 단비라도 만난 듯 선뜻 좋은 아이디어라고
화답했다.
그러나 정작 과천정부종합청사와 정부중앙청사에 위탁급식을 맡고 있는 풀무원계열의 위탁급식업체 ECMD(이씨엠디) 관계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급식업체로서 브랜드 이미지 관리가 가장 중요한 데 미국산 쇠고기를 식재료로 사용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설사 고객사가 미국산 쇠고기 사용을 요청한다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는 게 기본 원칙이라고 했다. (후략, 강조는 인용자)
물론 수많은 회사가 쇠고기를 다룰 테고, 개중에는 미국산을 호주산보다 싸게 들여오는 데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최소한 미국산이 호주산에 비해 가격면에서 그리 큰 강점이 없다는 거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청사에서 요구한다고 미국산 쇠고기를 들여 올 용가리 통뼈 수입업자가 있을까? 작년 여름의 촛불시위를 보고도?
이쯤 하면 대충 예상되는 게, '싸고 질좋은 쇠고기' 드립. 그러니까, 이명박이 지 입으로 분명 ★싸고★ 질좋은 쇠고기라 했는데 왜 안 싸냐는 거지. 이쯤 되면 정말 이것들이 농담따먹기를 하자는 건가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텐데, 뭔가 우기다가 잘 안되면 '싸고 질좋은 쇠고기라고 했는데 왜 비싸냐'고 드립치는 인간들이 의외로 많았다. 그럼 어떡할까? 미국산 쇠고기를 '싸게' 유지하기 위해서 고정환율제라도 할까? 아니면 국가에서 독점해서 싼 값에 공급할까?
도대체 이게 무슨 깜이라고 생각한건지 대서특필해 댄 언론들은 반성 좀 하자. 또, 이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뒷조사까지 해서 자료랍시고 공개한 민주당 모 의원은 특히 처절하게 반성 좀 하자. 도대체 미국산 쇠고기와 광우병 문제에 있어서 아예 뇌 사용하는 걸 포기한 ㅈㅂㅅ당이나 ㅁㄴ당이야 그렇다 치고, 민주당 이름 걸고 그 짓거리를 하고 있으면 도대체가 쪽팔려서 난 앞으로 어딜 찍으라는 거냐. 정말이지 내가 한나라당이라도 찍는 꼴을 봐야 이것들은 속이 시원할까?
정말이지 죽은 사람 두고 이런 말 하기 싫은데, 노통이 참 원망스럽다. 왜 쇠고기를 끝까지 끌어안고 있다가 일을 이렇게 만들어. 보면 결국 광우병 사태에서도 제대로 된 지식과 근거를 가지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었던 사람은 좌우를 막론하고 극소수였고, 피디수첩을 앞세워서 괜히 좌파들이 날뛰는 바람에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에 대한 의견은 과학적인 근거보다도 개개인의 정치성향에 의해서 갈렸다. 피차 잘 모르기는 똑같은 상황(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게 아니라, 미국산 쇠고기가 왜 안전한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얘기다)에서 줄 잘못 선 한쪽만 완전 병신된 상황이고, 더 최악인 건 아직까지도 지들이 잘못 찍은 줄 모르고 점점 안드로메다를 향해 가고 있다는 것,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목소리는 그들이 제일 크다는 거다.
...그러니까 애초에 노통이 쇠고기까지 깔끔하게 열고 갔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 아냐. 물론 작년의 촛불시위를 주도했던 세력이 주축이 되어 선동을 시도했겠지만 그 타겟이 이명박과 한나라당이었을 때보다는 그 선동의 파괴력과 전염력이 훨씬 떨어지지 않았을까? 게다가 임기말에 열어놓고 퇴임해버렸다면 (정치적인 이유로) 이명박 정권에서 쇠고기로 노무현을 까고 있었을 사람은 우리가 겪었던 것보다 적었을 테고. 어차피 허황된 상상인 걸 아니까 좀 더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자면, 노무현이 쇠고기를 풀어놓고 낙향했다면 지금 좌빨이니 촛불좀비니 하며 낄낄대고 있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오히려 촛불을 들고 난리치고 있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제발, 광우병 떡밥은 이제 유통기한이 지나도 한참 지났단 말이다. 그래 가지고 언제 집권할래?
지난번 글을 감정이 좀 가라앉은 다음에 다시 읽어보니 영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막 손발이 오글오글하는 그런 느낌까지는 아니지만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글을 썼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그래서 흥분은 금물이라니까...-_-; 아무튼, 그 사이에 또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고, 그런 것들을 보며 또 몇 가지 생각이 들어서 대충 적어 본다.
#1. 대단한 팬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버스정류장에 뭔가 붙어 있는 게 보였다.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니 2PM 팬클럽 연합 언더그라운드? 뭐 아무튼 그런 데서 붙여 놓은 작은 포스터였다. 박재범의 복귀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박재범을 지켜주지 못한(않은? ) JYP를 성토하는 내용이었다. 버스를 타고 집에 오면서 보니 그 곳 말고도 여기저기 많이 붙어 있었다... (재밌네 하고 생각하며 폰카로 사진을 찍었는데, 막상 사진을 옮겨오자니 컴퓨터에 연결하는 게 너무 귀찮다. 역시 디카를 들고 다녀야 하나. 그건 무거운데...-_-;;; )
사실 그 내용이야 어차피 뻔한 것이었고, 그보다 재미있었던 건 포스터 하단에 조그마하게 쓰여 있던 한 줄.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2PM 팬클럽에서 익일 자진철거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오면서 보니 여기저기 꽤 많이 붙어 있던데, 정말 하루만 붙여놓고 철거할지는 내일이 돼 보면 알 수 있겠지. 꼭 그게 오늘 붙은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뭐, 어쩌면 새벽에 청소하시는 분들이 그걸 다 떼어버릴지도 모르고(자진철거하겠다는 글씨는 주의깊게 보지 않으면 안 보이니까), 그래서 어쩌면 2PM 팬클럽들이 까맣게 잊어버린다 하더라도 그 약속은 지켜질지도 모르겠다. 다만,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그들은 정말 그 게시물을 익일 자진철거할 것 같다. 이번 일에서 느껴지는 팬클럽 여러분의 집념은 뭐랄까, 약간 무섭기까지 하니까(절대 비하의 의미 아니다).
아마도 2PM 팬클럽은 대부분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생각해 보면 여성들로 이루어진 집단은 일단 어떤 사안에 대해 행동하기로 하면 정말이지 무서운 집중력을 보이는 것 같다(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추측으로 근거는 없다. 그럼 남성들의 집단이나 혼성 집단은 어떠냐고? 관심없다-_-;;; ). 이번 포스터를 보며 느껴졌던 어떤 결연한 감정. 좀 지난 일이지만 작년의 촛불집회 때 소울드레서 카페 멤버들이 보여줬던 그 질서정연함(촛불집회가 옳았느냐에 대한 평은 여기선 논외로 하자. 광화문 길가에 앉아 있다가 그들이 한 깃발 아래 줄맞춰 행진하던 모습은 뭐랄까, 무서웠다-_-;;; ). 그리고 가요프로 같은 데서 보이는 여성 팬클럽들의 그 일사불란함 같은...
수많은 사람들을 같은 주제에 저렇게 집중하게 하고, 그걸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어떤 힘. 아마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팬덤'이 그런 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거, 신기하다. 만만히 볼 것도 아닌 것 같고...
#2. 대단한 변희재 I
박재범의 탈퇴 후, 박진영이 글을 하나 썼다. 얼핏 보면 재범의 눈물겨운 성장드라마 수준인데... 변희재는 "박진영은 재범을 자유의 몸으로 풀어줘라"라는 글에서 박진영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박재범의 자진탈퇴라는 형식을 취했지만, 그 뒤에는 결국 박진영의 어떤
계산된 노림수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글 대부분이 관심법과 라면사설로 점철되어 있지만 상당히 설득력있다. 처음부터 박재범의
탈퇴 자체가 나에게는 짜증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박진영의 글을 뒤집어 읽어볼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는데,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난 음모론은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분명 석연찮은 구석이 있긴 있다. 박진영의 말이 사실이라면, 박진영은 왜 박재범을 그리 순순히 보내줬을까? 박진영은 완전 대인배 쿨가이인 걸까?
하지만 이 얘기를 별로 길게 하고 싶지 않은 게, 지난번 글에서도 썼다시피 나는, 박재범이 그 한국비하글을 4년 전이 아니라 바로 4일 전에 썼더라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먼저, 가장 많이 까야 될 건 우리의 히스테릭한 반응이지 박재범이나 박진영이 아니란 거다.
#3. 대단한 변희재 II
아... 정말, 이 사람은 존경해야 된다. 사회적 발언을 하고 싶다면 "최소한 1주일에 2-3권 이상의 사회과학서, 인문과학서 책을 읽고, 매일 신문과 잡지의 글을 최소 3시간 이상 읽고, 정부 정책 등에 대한 보고서도 주마다 서너 편씩 읽"으라고 하시는 분인데, 그렇게 글 읽는 데 시간을 쏟으면서도 온갖 이슈란 이슈는 하나도 놓치지 않고, 그것도 웬만해서는 글 하나로 끝나지 않고 자기 글에 대한 반응에도 일일이 반응하신다. 이번 박재범 사태 때도 5일만에 글 3개를 쏟아내셨다. 이 분, 잘 되는지 안 되는지도 모르겠는 언론사 붙잡고 계시는 것보다 '변희재 속독법' 같은 걸로 장사하시면 대박날 것 같다. 물론 그분은 사회과학적, 인문과학적 내공도 킹왕짱이고 글도 빨리 읽고 기억력도 스캐너 수준이라서 그렇게 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지. 아무튼, 나같은 필부가 감히 범접할 수 있는 경지는 아닌 것 같다. 그나저나, 이분은 그렇게 많은 책을 읽고 글을 쓸 시간의 십분의 일만이라도 빅뉴스 사이트 디자인에 들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변희재가 직접 하는 게 아니라 누굴 써서 하고 있겠지만(그렇다면 그 사람의 미적 감각을 좀 의심해봐야 된다), 그가 하루에 10분씩만 투자해도 사이트가 최소한 지금보다는 보기좋아질 것 같다. 맨날 미디어가 어떻고 포털이 어떻고 하는 사람이 정작 자기 사이트는 저리 허술하게 하니 이거야 원...
아무튼, 그런 얘기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니고, 글을 읽다 보니 뭔가 불편한 느낌이 들어서 몇 가지만 짚고 넘어가야겠다.
...박재범 사건의 경우 팩트는 매우 단순하다. 영어에 대한 오독이니, 예전 글이니 이런 논란을 다 떠나 정확한 팩트는 박재범이 (과거에) “미국인으로서 한국 연예계에서 활동을 하면서도,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매우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었고, 돈만 벌면 본국인 미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지녔다는 것이 일반 대중들에 드러난 사건이다.
자신이 활동하는 국가와 국민을 비하하며 살아남을 수 있는 연예인은 없다
이에 대해서 분노하지 않을 한국 대중은 사실 상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만의 특수한 민족주의니 국가주의 문제가 아니다. 반대로 2PM과 박재범이 미국 시장에 진출하여 활동할 때, 그 누구든 미국인을 비하하면서 미국에서 돈만 벌면 한국에 돌아가겠다는 생각이 드러난 순간 퇴출이다. 중국이든 일본이든 마찬가지이다. 최소한 언더그라운드나 인디 시장이 아닌 주류시장에서 자신이 활동하는 국가를 비하하면서 버텨냈던 사례는 없다...
- 변희재. '박재범과 네티즌에 책임 몽땅 떠넘긴 JYP' 中 . 9월 9일
시제는 확실히 하자. 그래, 박재범이 그런 생각 했던 적 있다. 근데 문제가 된 바로 그 글 쓴 게 4년 전이다. 물론 글을 쓰자마자 생각이 바뀌었을 리는 없으니 한 1년 정도 더 그렇게 생각했다고 치자. 아니, 2PM 데뷔 직전까지라고 해도 좋다. 중요한 건, 2PM 데뷔 이후, 혹은 그 글이 발견되어 문제가 된 시점에 박재범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거다. 한국 아니라 미국이라도 그러면 바로 퇴출이라고? 무의미한 가정은 관두자. 중요한 건, 박재범이 그 글을 쓴 시기와, 그 글이 문제가 된 시기 사이에 상당한 시간차가 있고, 그 사이에 박재범을 둘러싼 상황이 너무 많이 변해서 박재범의 생각에 변화가 있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거다. 그런데, 변희재는 이 글에서 인용한 두번째 문단에서는 대놓고 시제를 현재로 바꿨다. 그러니까 변희재의 글은, 박재범이 '돈만 벌면 미국에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지금도 갖고 있다는 의미이며, '박재범은 자신이 활동하는 국가를 비하했던 적이 있다'가 아니라 '박재범은 자신이 활동하는 국가를 (지금도) 비하하고 있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4년 전, 데뷔하기도 전에 별 생각없이 쓴 글 하나가 한 연예인을 나라에서 쫓아내야만 하는 일인가? 적어도 그 정도면, 진정성있(어 보이)는 사과 한 마디면 끝나야 하는 일이다. 실제로 사과도 했다. 제발로 나간 거라고? 그럼 안 나가고 버티고 있었으면 용서해 줄 생각들이었나? 그렇게 돌아가지 않으니까 어쩔 수 없이 나간 건 아니고? 혹시나, 사과하면서도 속으로는 아직도 한국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근데, 실제로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다. 들키지 않으면 장땡이다. 우리는 관심법을 사용하지 못한다. 그리고 다시, 4년 전, 데뷔하기도 전에 별 생각없이 쓴 글 하나가 문제가 되어 활동하던 나라를 떠나야 하는 상황이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종종 발생하는 상황이라고 해서 그게 문제가 안 되는 게 아니다. 그들은 시간능력자다. 과거의 사건을 현재로 치환시켜서 언제나 방금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게 감정을 느끼며, 또한 한번 가졌던 감정은 절대 변하지 않고 변해서도 안 되는 사람들이다. 이런 현상은 존재 자체가 문제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다고, 만연한 현상이라고 해서 그게 정당한 일이 되는 게 아니란 말이다. 그게 우리나라 사람 중 일부이든 대다수이든 상관없고, 그게 영국 사람이든 미국 사람이든 상관없다. 혹시나 60억 지구인이 모두 다 그런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런 식의 시간능력자들이라면 어디에 사는 누구건, 그 수가 몇이건 정신을 좀 차려야 되는 거다.
지난 7월 31일과 8월 6일, 2회에 걸쳐 KBS에서는 동의보감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와 관련된 특집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링크) 마침 동의보감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게 세계가 한의학의 우수성을 인정한 것이라는 한의학계의 자뻑을 들어주고 있기가 영 짜증나던 차에 이런 프로그램이 방송된다고 하길래, 평소에 안 보던 TV를 무려 인터넷 다시보기까지 하면서 봤다.
...솔직히 말하면, 동의보감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와 관련된 한의학계의 자뻑과, 그리고 한의술의 허무맹랑함을 시원하게 까 줄줄 알았다. 근데 보면 볼수록 이게 교양프로인지 개그프로인지 헷갈리는 거다. 속에서 뭔지 모를 짜증이 치밀어, 메모까지 해 가면서 두 편을 모두 봐 버렸다. 그래서, 너무나 짜증이 났던 나머지 나름 자료까지 찾아가면서 공부를 했다.
뭐 자료 찾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러나 전문분야 아님 + 바쁨 + 귀찮음의 압박으로 시간은 계속 가고, 약간의 진전은 있었지만 원하는 수준에 도달하려면 도대체 얼마나 더 자료를 찾아봐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더 이상 묵히면 이건 떡밥으로써의 가치를 상실할 것 같다(이미 방송 후 한 달 지났다 orz)는 생각이 들어 일단 되는 대로 써 보기로 했다. 정 모자란 건 쓰면서라도 찾아보는거지 뭐. 이렇게라도 해야 글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텍스트큐브로 이사오기 전 블로그에서도 3월인가부터 쓰기 시작해놓고 아직까지 미완성 비공개로 남아있는 글도 있지만 orz) . 뭐 아무도 쓰라고 재촉하지는 않지만 orz...
-여기부턴 본문
KBS의 동의보감 세계기록유산 등재신청기념 특집 프로가 두 편으로 나눠서 방송되었으므로, 이 글도 두 편으로 나눠서 써 보려고 한다(이 글은 1편에만 해당하는 내용이다). 물론 두 번째 글은 언제나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해당 프로그램을 직접 보고 싶은 사람은 여기로. 방송 직후에는 고화질 다시보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_-;
프로그램은 동의보감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을 소개하면서, 그걸 추진한 문화재청 이건무 청장의 인터뷰를 내보낸다. 그리고, 이거 만드느라 미국에도 다녀들 오셨나보다. 무려 존스홉킨스 의대 교수의 인터뷰도 들어있다.
근데 말이다, 이건무 청장의 인터뷰 내용에 따르면, 결국 동의보감의 중요성은 '당시'의 의학을 집대성한 백과사전이라는 것, 그러니까 그 문화사적 가치에 있다는 거다. 이건 저 존스홉킨스 의대 교수의 인터뷰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단 저 교수의 소속부터 보자. 의사학과... 그러니까 의학의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이란 거다. 무려 저 멀리 떨어진 미국인 교수가 동의보감을 알고 있고, 그걸 칭찬하고 있으니 일견 대단해 보이지만, 그가 주목하고 있는 것도 결국 자신의 분야인 의사학과 관련된 부분, 그 편집의 명확성과 독창성에 대한 거다. 이 프로그램 제목인 '동의보감, 세계적 의학서적이다'(현재형이다)라던가, 동의보감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이후 나온 한의학계의 논평 '한의학의 우수성을 세계가 인정'이라는 등의 내용 따위와는 관계가 없단 얘기다. 저 두 인터뷰 사이에, 보건복지가족부 사람이 나와서 이번 등재 추진사업은 언제부터 어떻게 추진했고 하는 얘기를 하는데, 보건복지가족부에서는 유네스코가 뭐 하는 덴지 몰랐다는 걸까? 그네들은 설마 동의보감을 진지하게 의서로 받아들이고 있는 걸까?
아... 뭐 깔 거야 많지만 겨우 프로그램 도입부를 가지고 까는 것도 참 재미없는 일인 것 같고. 20분쯤인가부터는 동의보감의 목차대로 '내경','외형','잡병','탕액','침구'의 순서대로 동의보감 얘기를 하고 있는데, 그 순서대로 따라가는 게 무난하겠지.
내경편
몸 속을 비추는 거울이라서 내경이라는데, 그거랑 내경편 시작하자마자 나오는 태극권은 뭔 관계인지 도통 모르겠다. 인간신체는 우주와 같아 모든 자연법칙이 그대로 적용되고, 이게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탈이 난단다. 그래서 병 발생 이전에 신체를 조화시키는 게 양생이란다. 아, 물론 예방의 중요성은 현대의학에서도 강조하고 있는 것이긴 하다. 근데, 우주랑 자연법칙이 어떻고 조화가 어떻고 하는거랑 그거랑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도통 모르겠다. 아무리 답이 맞아도 그 답에 이르는 과정이 엉망이면 그건 틀린 거고, 아무리 멋들어진 설명이라도 그걸 써먹을 데가 없으면 그건 그냥 잡소리일 뿐이다. 삼라만상 우주만물과 자연의 이치로부터 양생이 좋다는 걸 이끌어내는 설명을 보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게 '뭔가 있어 보이는 느낌'말고 또 뭐가 있을까?
그런 내용들이 좀 나오더니, 동의보감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처방이라는 경옥고 얘기로 빠진다. 그걸 제조하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하는데, 좋다. 무슨무슨 약재들을 뭘로 빻는데 쇠붙이를 쓰면 안되고 그걸 무슨 나무로 불을 때서 얼마동안 달이다가 식혔다가 또 중탕을 햇다가 어디에 얼마 동안 뒀다가... 아무튼 그래서 정성이 무지 많이 들어가는 약이란다. 좋다. 다 좋은데, 그래서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다. 정성이 많이 들어간 약이니까 좋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걸까? 하기사, 여기 링크하는 이야기의 주인공도 분명 '그걸' 만들어내기 위해 정성은 엄청 많이 들였을 거다. 그 정성을 엉뚱한 데 들여서 문제지. 그러니까, 문제는 '정성'의 양이 아니라는 거다. 물론 정성을 안 들이는 것보다야 좋을지도 모르지. 근데, 그 정성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기준과 근거는 최소한 갖고 있어야 되는 거잖아.
"경옥고는 정성으로 제조된 약이다. 깨끗한 물처럼 약을 빚는 사람의 깨끗한 마음이 필수적이다."
...그런 기준도 근거도 없으니까 방송에서 이런 얘기를 자랑스럽게 할 수 있는 거겠지. 근거도 기준도 없는 막연한 정성과 깨끗한 마음이 어떤 효과를 낼 수 있는지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는데. 바로 이것처럼... 약재를 빻을 떄는 금속 말고 나무만 쓰고, 불은 꼭 뽕나무로만 때야 된다는 그런 정성과 노력, 아무 기준도 근거도 없다면 이런 것과 다를 게 없잖아.
외형편
루 게릭병 환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애석하게도 현대 의학은 아직 루 게릭병에 대해 뚜렷한 치료법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네이버 의학상세정보 참고) 그러나 우리의 훌륭한 한의사 선생님들은 그걸 치료해 내셨나 보다. 대략 26분경부터 나오는 루 게릭병 환자의 상태를 볼 때 완전한 수준은 아닌 것 같지만 워낙 난치병이니 삶의 질이 개선된 것만으로도 훌륭한 치료가 되겠지. 그래서, 어떻게 치료하는 건가 궁금해서 PubMed에서 검색해봤다. 그런데...
루게릭병의 정식 영문명칭인 amyotrophic lateral sclerosis와 침술을 뜻하는 acupuncture를 넣어서 검색해봤다. 물론 저거 말고도 다양한 검색어로 검색해봤다...
루게릭병의 치료와 관련해서, 제대로 된 논문 한 편조차 없다. 뭐 몇 종류의 논문이 검색에 걸리긴 했지만 별로 영양가 있는 내용은 없었고, 루게릭병 환자들 중 어느 정도나 대체요법을 시도하는가, 시도한다면 어떤 대체요법을 시도하는가 하는 설문조사 등이 검색되는 정도. 확립된 치료법이나 그 기전, 아니면 어느 정도 규모의 집단을 대상으로 잘 설계된 임상시험은 고사하고(애초에 기대도 안 했지만), 그 흔한 case report 하나조차도 없다. 좀 너무한 거 아닌가?
(↓드래그)
그렇게 좋은 거면 같이 좀 알자.
그런데,
위에 링크한 네이버 의학상세정보의 루게릭병 부분에 보면 위와 같은 내용이 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루게릭병 환자 중에 10% 정도는 저절로 상태가 좋아지기도 한다는 거다. 아, 물론 방송에 나온 그 분이 저 10%에 해당한다는 보장은 없다. 침으로 고쳤다니 믿는 수밖에.
* 여기까지 방송 보느라 수고하셨으니 잠깐 쉬어 가라는 의미였을까. KBS에서 아주 혼자 보기 아까운 명품 동영상을 준비해 주셨다. 쉬어가는 의미에서 잠시 구경을. (저거 하면서 저 아나운서는 얼마나 웃겼을까? )
잡병편
탕액편
그 이후에 이어지는 잡병편, 탕액편으로 들어가면 이건 완전 중구난방이다. 난 도대체 제작진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동의보감 내용 소개를 해 주는 건 좋은데, 프로그램 제목대로 동의보감이 '세계적 의학서적이다' 라고 주장하고 싶은 거라면 그 근거를 제시해야 되는 거 아닌가? 잡병편에는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미이라가 발견됐는데 간디스토마 환자였다. 근데 직접사인은 간디스토마가 아니라 기도확장에 의한 출혈이었다. 근데 몸 속에서 꽃가루가 많이 발견됐다. 간디스토마 때문에 피를 토하니까 피를 멎게 하려고 동의보감에 나온 대로 꽃가루를 먹은 것 같다.
이런 얘기를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이라는 걸까? 간디스토마에 의한 사망을 막아준 동의보감의 꽃가루 처방 킹왕짱? 꽃가루 먹다가 잘못 흡입해서 폐에 문제가 생겨 사망했을 가능성은 없나? 뭐 아무래도 좋다. 어차피 몇백년 전에 쓰여진 책의 내용이 다 맞길 기대하는 것도 아니고, 그걸 가지고 잘못됐다고 까는 것도 웃기니까. 근데, 이쯤 되면 이 프로그램이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 알 수 가 없다는 거다. 동의보감이 우수한 의서라고 말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그냥 단순히 동의보감 내용 소개를 해 주겠다는 건지...
탕액편에서도 마찬가지다. 동의보감의 처방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 자체는 동의보감의 우수성을 논할 근거가 못 된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구성된 그 처방이 표준처방(그런 게 있는지 모르겠지만)과 비교했을 때, 아니 최소한 플라시보와 비교했을 때 더 나은 효과를 보이는지가 입증되지 않으면 그건 동의보감의 장점이 아니라 동의보감이 '그냥 그랬다더라'라는 이야기밖에 안 되는 거다. 아... 뭐, 제대로 된 치료법이 아무것도 없던 시기에 플라시보 효과라도 보려면 어쨌든 '무언가를' 해야 했으니,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의료행위가 가능했다는 건 그 시대에는 장점이었을 거다. 어떤 병에 걸렸는데 처방이 '용의 비늘을 달여먹는다'라면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고,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느낌에 낙담해서 병이 더 안 좋아 질 수도 있지만, 만약 처방이 '소주에 고춧가루를 풀어먹는다'라면 그게 효과가 있건 없건 일단 실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플라시보 효과라도 기대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감기 걸렸을 때 소주에 고춧가루 풀어먹는 건 효과가 없다. 아니 마이너스 효과가 있을지도...)
물론 수백 년 전에 쓰여진 책에다 대고 플라시보와 비교해서 효과를 입증한 내용이 없다고 따지는 게 웃긴 일이란 건 안다. 그러니까, 여기서도 다시 하고 싶은 말은, 그런 것들이 동의보감이 '과거에 우수했음'을 말해 주는 근거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현재 우수함'을 말할 수 있는 근거로는 말이 안 된다는 거다. 그런데 왜 프로그램 제목은 '동의보감, 세계적 의학서적이다'이며, 왜 동의보감의 내용을 과학적 방법을 이용해서 검증하려는 시도는 별로 없으며,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의사들은 아직도 동의보감의 내용을 금과옥조로 삼아 따르고 있느냔 말이다.
침구편
1부 마지막 부분인 침구편에서 정말 간만에 제대로 깔 거리가 나온다. 뜸으로 폐경기 여성의 안면홍조를 치료한다고 자랑하면서, 친절하게 Menopause지(IF가 3.5정도였던가? 아무튼 나름 준수한 잡지다)에 실은 논문까지 소개해 준다. 아주 반가웠다. 이러면 자료 찾는 수고를 더니까... 그 논문, 바로 이거다. 에디터의 코멘트가 달려 있길래, 그것도 같이 읽어봤다. 근데... 좀 웃기다. 내가 색안경을 끼고 봐서 그럴지도 모르겠는데, 아무튼 좀 웃겼다. 그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Menopause 지 논문 내용 정리
논문내용 요약
51명의 폐경기 안면홍조 환자들을 대상으로 2가지 뜸법의 효과를 시험함.
방법 1 - 신체기능 향상, 부인병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여겨지는 혈자리에 뜸치료
방법 2 - 한의학 서적들에 기술된 방법대로 뜸치료
방법 3 - 아무 처치도 안한 대조군.
다음의 사항들을 평가함
Primary outcome : visual analog scale(VAS) 이용
안면홍조의 빈도
방법 1 - 60% 감소
방법 2 - 59% 감소
두 방법 모두 대조군과 유의차 있음. 두 방법간 유의차 없음
안면홍조의 강도
방법 1- 50% 감소
방법 2 - 43% 감소
두 방법 모두 대조군과 유의차 있음. 두 방법간 유의차 없음
Secondary outcome - 설문지
MENQOL - 폐경 특이적 삶의 질 척도
방법 1 - 12% 증가
방법 2 - 27% 증가
대조군 - 4% 증가
방법 1과 대조군 사이에 통계적 유의차 없음. 방법 2는 방법 1과 대조군에 대해 통계적 유의차 보임
MRS - 폐경 평가 척도 (갱년기증상 평가)
방법 1 - 34% 감소
방법 2 - 38% 감소
대조군 - 9% 감소
세 그룹 사이에서 통계적 유의차 없음. 데이타가 춤을 췄다는 얘기일 듯.
FSH의 변화
여포자극호르몬(FSH)의 변화를 봤다고 돼 있는데, 어떻게 봤다는 건지 방법이 안 나와 있다. 뜸을 어디에 어떻게 떴는지나 설문조사를 어떻게 했는지는 자세히 써놨으면서 이건 그냥 'FSH농도를 봤다'한마디로 끝. 뭐 아마도 피를 뽑아서 FSH의 농도를 봤겠지만... 그나저나 앞의 결과들은 결국 모두 설문지를 이용하는 방법이라 환자의 주관적인 느낌이 개입될 가능성이 매우 큰 데 비해, 이 검사는 유일하게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검사법이다. 그렇기에 앞의 설문조사결과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결과라고 생각되고, 여기서 방법이 FSH의 농도를 현저히 떨어뜨린다면 이거야말로 대박인 거다. 근데 앞의 설문조사결과들에 대해서는 길게 설명하며 그래프까지 그려놓고는 이 결과에 대해서는 그래프도 없이 그냥 단 네줄로 마무리다. 내용이 걸작이다. 세 그룹간 FSH 농도는 통계적 유의차가 없었으나, 대조군에선 FSH 농도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었고, 방법 1과 2에선 감소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 경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통계적 유의차가 없었다는 건 데이터들의 편차가 컸다는 얘기겠지. 설문지 조사한 결과와 달리 그래프가 근사하지가 않고 영 효과가 없는 것 같이 나오니까, 주장하고 싶은 내용에 도움이 안 될 것 같으니까 일부러 뺀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통계적 유의차는 없지만 그래도 효과가 있(을 것 같)다'는 뉘앙스만 남기고...
문제제기
우선, 데이터의 신뢰성이 의심된다. 일단 논문에서 중요하게 언급하고 있는 데이터는 모두 설문조사 결과다. 즉, 피험자의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많다는 것... 그리고, 논문의 그림 2와 그림 3에 들어간 그래프는 분명 환자들의 설문을 토대로 평균을 낸 결과일 터, 그렇다면 최소한 error bar 정도는 표시해주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 물론 본문에 p-value 를 언급하면서 통계적 유의차가 있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가장 객관적이라고 볼 수 있는 FSH측정치를 아주 간단히 언급만 하고 넘어간 부분이라던가, MRS 척도의 변화에서 방법 1,2의 변화량과 대조군의 변화량 평균의 차이가 상당히 많이 남에도 불구하고 유의차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 등에서, 데이타가 완전 춤을 춰서 표준편차가 매우 컸고, 따라서 그래프가 '예쁘지 않아서'빼버렸을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리고 이 논문의 저자들도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지만, 위약(placebo)효과를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변명하고 있기는 하다. 의역하자면 다음과 같다. "침술의 효과를 보기 위한 실험의 경우 위약효과를 rule-out 하기 위해 환자에게 침술을 시행한다면 신경생리학적 및 신경화학적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뜸의 경우도 비슷해서 다른 물질로 만들어진 뜸을 써도 피부를 자극할 수 있으며, 뜸에서 발생하는 열이 경락 이외의 부위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솔직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이걸 변명이라고 하는 건가? 침과 뜸에서 그렇게 강조하는 것이 '특정 위치'의 혈자리잖아. 침이나 뜸이 효과가 있다고 말하려면 아무데나(혹은 관계없는 다른 혈에) 찌르고 뜸뜬 것과 비교하여 더 좋은 결과를 내야 하는데 그걸 못하겠다는 얘기고. 또한 특정 증상, 특정 위치에는 특정한 형태의 침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그리고 뜸의 재료도 아무거나 쓰는 게 아니라 뭔가 정해져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다른 형태의 침이나 다른 재료로 만든 뜸을 사용했을 때와 분명 다른 결과를 내야 되는 건데, 그걸 못 한다고 말하는 건 뭐지? 침은 아무데나 찔러도 되고 뜸도 사실은 아무데나 그냥 뜨거운 걸로 지지면 된다는 고백은 아닌가?
방법 1과 방법 2로 나누어 서로 다른 위치에 뜸을 뜬 건 아마도 동의보감에 적혀 있는 전통적인 방법과 새로운 방법(근데 이 새로운 방법에서 혈자리를 선택한 근거가 뭔지 도통 모르겠다. 논문에는 supported by evidence from clinical experts 라고만 돼 있다-_- )을 비교해 보려는 목적이었을 것 같은데, 두 방법은 거의 차이가 없다는 게 논문의 결론이다. 새로운 방법도 예전 방법만큼이나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 같은데, 아무데나 뜸을 떠도 똑같다는 결론을 내려도 논리적으로 문제가 없다. 제대로 된 대조군을 설계하는 게 이래서 중요한 거다.
그래도 학자로서의 양심은 있는지 좀더 큰 실험군과 위약효과 대조군을 포함해서 다시 실험할 필요가 있다는 말은 들어가 있다(자기네들이 할 생각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나마 다행이다. 근데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거다. 이 논문이 실린 해당 호에 폐경기 안면홍조에 대한 논문이 2편 더 실렸는데, 편집자들이 그 세 편의 논문에 대한 코멘트를 달았다. 뭐가 문제인지 편집자들이 해당 논문에 대해 평한 내용을 보자. 별로 길지 않은 관계로 (대충 의역해서) 옮긴다.
안면홍조 치료법으로써의 침술
이 논문은 뜸의 안면홍조 치료효과에 대해 연구한 것이다. 근데 몇 가지 이유로, 이 방법이 안면홍조 치료에 도움이 되는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일단 적절한 대조군이 없다. 플라시보 군을 디자인하기 어려운 건 알겠는데, 어쨌든 적절한 대조군이 없다. 논문 저자들은 안면홍조에 대한 플라시보의 효과가 20~30% 정도이며 약물치료의 효과가 50~60%인 점을 들어 제대로 된 치료라면 환자의 증상을 50%정도는 떨어뜨려야 될 것이라고 하고 있지만 사실 경우에 따라서는 플라시보 효과가 50%까지 뜨기도 하기에 그렇게 말하긴 힘들다. 또한 부작용 발생 가능성(22%)이 너무 높은 것도 문제다. 물론 뜸 뜨는 과정에서 불에 데거나 연기에 의한 부작용 등 가벼운 증상들이긴 하지만, 뜸의 효과나 독성에 대해서 제대로 밝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이런 시술법은 권장할 만한 게 못 된다. PubMed에서 사람을 대상으로 무작위 임상검사(randomized clinical trial)를 통해 안면홍조에 대한 침술의 효과를 평가한 논문 중 영어로 된 게 11편 있다(뜸을 뜬 건 이 논문이 최초인 것 같다. 저자들도 그렇게 말하고 있고). 문제는, 침술의 효과가 가짜 침술(얕게 찌르거나, 안 찌르거나, 다른 위치에 찌르거나)과 비교했을 때 더 낫다고 말할 수 없으며, 에스트로겐 요법이나 휴식과 비교해도 나을 게 없었다는 점이다. 다만, 특별한 치료 없이 자가요법이 적힌 유인물을 나눠주는 방법보다는 효과가 있었다고 보고한 논문이 한 편 있는데, 이 실험에는 대조군이 없다-_-;
그러니까, 이걸 계속 연구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긴 한데, 우선 제대로 된 대조군을 개발해야 될 것 같다. 혹시나 나중에 침이나 뜸이 정말 안면홍조에 효과가 있는 걸로 밝혀질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런 근거가 없고, 따라서 지금 그걸 임상에 적용하는 것도 역시 근거없는 짓이다.
에디터들의 코멘트를 읽고 살짝 어안이 벙벙했다. 도대체 저런 평가를 내릴 거면 애초에 왜 실어 준 걸까? 아예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겠다는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닐까 싶기까지 하다.
아무튼, 다시 방송 내용으로 돌아오자. 1부는 다음과 같은 멘트로 마무리된다.
동의보감을 제대로 연구한다면, 우리는 동양의학의 새로운 장을 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아직 제대로 연구를 안 했다는 얘기잖아. 아직 제대로 연구되지도 않은 걸 갖고 대뜸 사람한테 실험하는 것부터 좀 자제해 줬으면 좋겠다. 수천년 간 경험적으로 검증된 거라고? 그 경험이란 것도 체계적으로 추적, 분석되고 기록을 통해 축적된 것이 아니라 그냥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것뿐일 텐데,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아직도 그런 걸 믿고 몸을 맡겨야 될까? 그나저나, 왜 여기서까지 라면사설을 봐야 되는 거냐. 일단 동의보감을 제대로 연구한 다음에 얘기하자. 제발 좀...
제목을 바꾸자. '동의보감, 세계적 의학서적이다'가 아니라. '세계적 의학서적이었다'로. 그 정도까진 인정해줄 의향이 충분히 있다.
보면서 참 웃기다 웃기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말이지 마지막까지 웃기게 끝나 버렸다. 물론 아직 안 끝난 건지도 모르겠다. 끝까지 그를 지키려 했던 2PM과 JYP에 대한 인민재판이 아직 남아 있을지도.
좀 거창할지도 모르겠는데, 대한민국 헌법 19조에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돼 있다. 해설하자면 이렇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 머릿속 생각 가지고 핍박하지 말란 말이다.
* 물론 박재범은 미국 국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 헌법 19조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해가 안 되는 일도 아니...... 기는 개뿔.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인간의 기본권이란 말이다. 근데 겨우 이런 일에 사상의 자유 어쩌고 하는 것까지 끌어다 쓰는 것도 웃기긴 하다.
* 징병제의 불합리함과 관련하여, 유승준에 대한 분노는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한 구석이 있긴 하다.
* 빅뱅 의상 논란과 별개로, 이번 쥐룡 싱글의 표절논란까지 옹호할 생각은 물론 없다.
이놈의 민족주의 떡밥, 이제 지겹다. 왜 아이돌 가수한테 난데없이 '한국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요구하나? 물론 아이돌 가수 따위, 취향에 따라 소비하는 상품이니까 '한국을 사랑하지 않는 아이돌 따위 내 취향 아니다'라고 하면 딱히 뭐라 할 말은 없겠다. 근데, 그런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이번 사태처럼 여론을 쥐고 흔들고 이런 광기에 가까운 격렬한 반응을 일으킨다는 건, 많은 사람들이 알게모르게 민족주의에 심각하게 중독되어 있다는 거다. 적어도 이건 문제다. 뉴라이트라면, 식근론이라면, 일본이라면 일단 감정적인 반응부터 앞서는 거, 간도떡밥에 덥썩덥썩 낚이는 거, 환단고기에 열광하는 거, 민족주의라는 마약의 서로 다른 부작용들이라는 거다.
아무튼 다시 박재범 얘기로 돌아가서, 상황이 하도 이상하게 돌아가니까 자기가 다 짊어지겠다는 생각을 하고 탈퇴를 한 모양인데, 뒷북이지만 이런 것도 발견됐다.
근데,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실제로 한국에 대한 애정을 담은 글 같은 거 하나도 안 썼더라도 상관없다. 문제가 됐던 한국 비하글을 4년 전이 아니라 바로 어제 썼다고 하더라도 그게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진짜 문제는, 아직도 조선시대의 정조관념과 구한말의 역사의식, 그리고 환단고기적 세계관을 가지고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정리하자.
박재범의 가장 큰 잘못은 다른 게 아니라,
소심하게시리 지 혼자 쫄아서 2PM을 탈퇴해버린 거다.버티면 되는데.
p.s. 참 보다보다 짜증나서 누군지도 잘 모르는 아이돌을 위한 변명을 늘어놨다. 하지만, 솔직한 내 심정을 말하라면, "기분좋다."
예쁘지도 않은 남자 아이돌 따위는 개나 줘버려!
그리고 말 나온 김에,
JYP는 이번 기회에 그냥 2PM 해체하고 원더걸스같은 그룹 하나 더 만들자.
SM도 이번 기회에 그냥 동방신기 해체하고 소녀시대같은 그룹 하나 더 만들자.
YG도 이번 기회에 그냥 빅뱅 해체하고 2NE1같은 그룹 하나 더만들자.
...어차피 남자 아이돌들은 예쁘지도 않고 나중에 군대문제 때문에 귀찮아지잖아. 상상만 해도 즐거워지는 귀엽고 예쁜 여자 아이돌들을 키우는 거다. 근데 나 이 나이 먹고 지금 뭐 하는 짓이지?
다들 신종플루 때문에 후덜덜하고 있으니까 타미플루가 뜨고, 타미플루의 원료라는 한약재 팔각이라는 것까지 덩달아 뜨는 것 같다. 타미플루를 급하게 많이 만들어야 한다면(솔직히 그럴 필요가 있는지 난 잘 모르겠다) 그 원료에 주목하는 건 당연하니까 뭐 거기까지는 좋다 치자. 근데 왜 거기서 엉뚱한 사람들이 덩달아 흥분하며 '그러므로 타미플루도 한약이라고 볼 수 있음 ㅇㅇㄳ' 이런 반응들은 왜 나오냐는 거다. 솔직히 나도 잘 모르는 분야라 설명은 못 하지만, 이건 그림 하나만 봐도 분명해지는 문제다.
위키피디아에서 긁어온 타미플루의 합성과정이다. 팔각은 어디 있냐고? 맨 처음에 있는 (-)-shikimic acid, 이게 팔각에서 나오는 성분이다. 수율은 3~7%정도 된다고 하는데, 그래도 현재까지는 팔각에서 뽑아내는 게 제일 수율이 높은 모양이다. 한의학에서 팔각을 넣고 무슨 약을 만드는지는 모르겠는데, 팔각이랑 각종 한약재 넣고 삼일밤낮 끓이면 저 복잡한 합성과정을 거쳐서 타미플루가 튀어나오나? 아니 백번 양보해서, 꼭 저 방법으로만 타미플루가 만들어지라는 법은 없으니까, 이런 건 되나?
타미플루의 원료가 한약재 팔각이라고 흥분하기 전에, 한번 팔각이 들어가는 한약(뭐가 있는지는 모르겠는데)을 가지고 HPLC, NMR 같은 거라도 해 보는 게 순서 아닌가 싶다. 그래서 저거랑 비슷한 구조가 나오면 설레발을 쳐도 그때 가서 치는 게 더 좋을 것 같단 말이지. 팔각에서 shikimic acid 뽑아내는 수율이 낮아서 E.coli 가지고 합성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고, 어느 정도 성과도 있는 모양인데, 그거 성공하면 어떡할려고들 저러는지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