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14일 월요일

박재범 사건에 대한 잡생각 두번째

지난번 글을 감정이 좀 가라앉은 다음에 다시 읽어보니 영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막 손발이 오글오글하는 그런 느낌까지는 아니지만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글을 썼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그래서 흥분은 금물이라니까...-_-; 아무튼, 그 사이에 또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고, 그런 것들을 보며 또 몇 가지 생각이 들어서 대충 적어 본다.

#1. 대단한 팬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버스정류장에 뭔가 붙어 있는 게 보였다.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니 2PM 팬클럽 연합 언더그라운드? 뭐 아무튼 그런 데서 붙여 놓은 작은 포스터였다. 박재범의 복귀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박재범을 지켜주지 못한(않은? ) JYP를 성토하는 내용이었다. 버스를 타고 집에 오면서 보니 그 곳 말고도 여기저기 많이 붙어 있었다...
(재밌네 하고 생각하며 폰카로 사진을 찍었는데, 막상 사진을 옮겨오자니 컴퓨터에 연결하는 게 너무 귀찮다. 역시 디카를 들고 다녀야 하나. 그건 무거운데...-_-;;; )

사실 그 내용이야 어차피 뻔한 것이었고, 그보다 재미있었던 건 포스터 하단에 조그마하게 쓰여 있던 한 줄.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2PM 팬클럽에서 익일 자진철거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오면서 보니 여기저기 꽤 많이 붙어 있던데, 정말 하루만 붙여놓고 철거할지는 내일이 돼 보면 알 수 있겠지. 꼭 그게 오늘 붙은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뭐, 어쩌면 새벽에 청소하시는 분들이 그걸 다 떼어버릴지도 모르고(자진철거하겠다는 글씨는 주의깊게 보지 않으면 안 보이니까), 그래서 어쩌면 2PM 팬클럽들이 까맣게 잊어버린다 하더라도 그 약속은 지켜질지도 모르겠다. 다만,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그들은 정말 그 게시물을 익일 자진철거할 것 같다. 이번 일에서 느껴지는 팬클럽 여러분의 집념은 뭐랄까, 약간 무섭기까지 하니까(절대 비하의 의미 아니다).

아마도 2PM 팬클럽은 대부분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생각해 보면 여성들로 이루어진 집단은 일단 어떤 사안에 대해 행동하기로 하면 정말이지 무서운 집중력을 보이는 것 같다(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추측으로 근거는 없다. 그럼 남성들의 집단이나 혼성 집단은 어떠냐고? 관심없다-_-;;; ). 이번 포스터를 보며 느껴졌던 어떤 결연한 감정. 좀 지난 일이지만 작년의 촛불집회 때 소울드레서 카페 멤버들이 보여줬던 그 질서정연함(촛불집회가 옳았느냐에 대한 평은 여기선 논외로 하자. 광화문 길가에 앉아 있다가 그들이 한 깃발 아래 줄맞춰 행진하던 모습은 뭐랄까, 무서웠다-_-;;; ). 그리고 가요프로 같은 데서 보이는 여성 팬클럽들의 그 일사불란함 같은...

수많은 사람들을 같은 주제에 저렇게 집중하게 하고, 그걸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어떤 힘. 아마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팬덤'이 그런 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거, 신기하다. 만만히 볼 것도 아닌 것 같고...


#2. 대단한 변희재 I

박재범의 탈퇴 후, 박진영이 글을 하나 썼다. 얼핏 보면 재범의 눈물겨운 성장드라마 수준인데... 변희재는 "박진영은 재범을 자유의 몸으로 풀어줘라"라는 글에서 박진영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박재범의 자진탈퇴라는 형식을 취했지만, 그 뒤에는 결국 박진영의 어떤 계산된 노림수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글 대부분이 관심법과 라면사설로 점철되어 있지만 상당히 설득력있다. 처음부터 박재범의 탈퇴 자체가 나에게는 짜증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박진영의 글을 뒤집어 읽어볼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는데,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난 음모론은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분명 석연찮은 구석이 있긴 있다. 박진영의 말이 사실이라면, 박진영은 왜 박재범을 그리 순순히 보내줬을까? 박진영은 완전 대인배 쿨가이인 걸까?
하지만 이 얘기를 별로 길게 하고 싶지 않은 게, 지난번 글에서도 썼다시피 나는, 박재범이 그 한국비하글을 4년 전이 아니라 바로 4일 전에 썼더라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먼저, 가장 많이 까야 될 건 우리의 히스테릭한 반응이지 박재범이나 박진영이 아니란 거다.


#3. 대단한 변희재 II

아... 정말, 이 사람은 존경해야 된다. 사회적 발언을 하고 싶다면 "최소한 1주일에 2-3권 이상의 사회과학서, 인문과학서 책을 읽고, 매일 신문과 잡지의 글을 최소 3시간 이상 읽고, 정부 정책 등에 대한 보고서도 주마다 서너 편씩 읽"으라고 하시는 분인데, 그렇게 글 읽는 데 시간을 쏟으면서도 온갖 이슈란 이슈는 하나도 놓치지 않고, 그것도 웬만해서는 글 하나로 끝나지 않고 자기 글에 대한 반응에도 일일이 반응하신다. 이번 박재범 사태 때도 5일만에 글 3개를 쏟아내셨다. 이 분, 잘 되는지 안 되는지도 모르겠는 언론사 붙잡고 계시는 것보다 '변희재 속독법' 같은 걸로 장사하시면 대박날 것 같다. 물론 그분은 사회과학적, 인문과학적 내공도 킹왕짱이고 글도 빨리 읽고 기억력도 스캐너 수준이라서 그렇게 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지. 아무튼, 나같은 필부가 감히 범접할 수 있는 경지는 아닌 것 같다. 그나저나, 이분은 그렇게 많은 책을 읽고 글을 쓸 시간의 십분의 일만이라도 빅뉴스 사이트 디자인에 들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변희재가 직접 하는 게 아니라 누굴 써서 하고 있겠지만(그렇다면 그 사람의 미적 감각을 좀 의심해봐야 된다), 그가 하루에 10분씩만 투자해도 사이트가 최소한 지금보다는 보기좋아질 것 같다. 맨날 미디어가 어떻고 포털이 어떻고 하는 사람이 정작 자기 사이트는 저리 허술하게 하니 이거야 원...

아무튼, 그런 얘기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니고, 글을 읽다 보니 뭔가 불편한 느낌이 들어서 몇 가지만 짚고 넘어가야겠다.

...박재범 사건의 경우 팩트는 매우 단순하다. 영어에 대한 오독이니, 예전 글이니 이런 논란을 다 떠나 정확한 팩트는 박재범이 (과거에) “미국인으로서 한국 연예계에서 활동을 하면서도,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매우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었고, 돈만 벌면 본국인 미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지녔다는 것이 일반 대중들에 드러난 사건이다.

자신이 활동하는 국가와 국민을 비하하며 살아남을 수 있는 연예인은 없다

이에 대해서 분노하지 않을 한국 대중은 사실 상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만의 특수한 민족주의니 국가주의 문제가 아니다. 반대로 2PM과 박재범이 미국 시장에 진출하여 활동할 때, 그 누구든 미국인을 비하하면서 미국에서 돈만 벌면 한국에 돌아가겠다는 생각이 드러난 순간 퇴출이다. 중국이든 일본이든 마찬가지이다. 최소한 언더그라운드나 인디 시장이 아닌 주류시장에서 자신이 활동하는 국가를 비하하면서 버텨냈던 사례는 없다...

- 변희재. '박재범과 네티즌에 책임 몽땅 떠넘긴 JYP' 中 . 9월 9일

시제는 확실히 하자. 그래, 박재범이 그런 생각 했던 적 있다. 근데 문제가 된 바로 그 글 쓴 게 4년 전이다. 물론 글을 쓰자마자 생각이 바뀌었을 리는 없으니 한 1년 정도 더 그렇게 생각했다고 치자. 아니, 2PM 데뷔 직전까지라고 해도 좋다. 중요한 건, 2PM 데뷔 이후, 혹은 그 글이 발견되어 문제가 된 시점에 박재범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거다. 한국 아니라 미국이라도 그러면 바로 퇴출이라고? 무의미한 가정은 관두자. 중요한 건, 박재범이 그 글을 쓴 시기와, 그 글이 문제가 된 시기 사이에 상당한 시간차가 있고, 그 사이에 박재범을 둘러싼 상황이 너무 많이 변해서 박재범의 생각에 변화가 있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거다. 그런데, 변희재는 이 글에서 인용한 두번째 문단에서는 대놓고 시제를 현재로 바꿨다. 그러니까 변희재의 글은, 박재범이 '돈만 벌면 미국에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지금도 갖고 있다는 의미이며, '박재범은 자신이 활동하는 국가를 비하했던 적이 있다'가 아니라 '박재범은 자신이 활동하는 국가를 (지금도) 비하하고 있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4년 전, 데뷔하기도 전에 별 생각없이 쓴 글 하나가 한 연예인을 나라에서 쫓아내야만 하는 일인가? 적어도 그 정도면, 진정성있(어 보이)는 사과 한 마디면 끝나야 하는 일이다. 실제로 사과도 했다. 제발로 나간 거라고? 그럼 안 나가고 버티고 있었으면 용서해 줄 생각들이었나? 그렇게 돌아가지 않으니까 어쩔 수 없이 나간 건 아니고?
혹시나, 사과하면서도 속으로는 아직도 한국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근데, 실제로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다. 들키지 않으면 장땡이다. 우리는 관심법을 사용하지 못한다.
그리고 다시, 4년 전, 데뷔하기도 전에 별 생각없이 쓴 글 하나가 문제가 되어 활동하던 나라를 떠나야 하는 상황이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종종 발생하는 상황이라고 해서 그게 문제가 안 되는 게 아니다. 그들은 시간능력자다. 과거의 사건을 현재로 치환시켜서 언제나 방금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게 감정을 느끼며, 또한 한번 가졌던 감정은 절대 변하지 않고 변해서도 안 되는 사람들이다. 이런 현상은 존재 자체가 문제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다고, 만연한 현상이라고 해서 그게 정당한 일이 되는 게 아니란 말이다.
그게 우리나라 사람 중 일부이든 대다수이든 상관없고, 그게 영국 사람이든 미국 사람이든 상관없다. 혹시나 60억 지구인이 모두 다 그런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런 식의 시간능력자들이라면 어디에 사는 누구건, 그 수가 몇이건 정신을 좀 차려야 되는 거다.


...그래서, 길게 썼는데, 세줄로 요약하자면,

JYP는 이번 기회에 그냥 2PM 해체하고 원더걸스같은 그룹 하나 더 만들자.

SM도 이번 기회에 그냥 동방신기 해체하고 소녀시대같은 그룹 하나 더 만들자.

YG도 이번 기회에 그냥 빅뱅 해체하고 2NE1같은 그룹 하나 더 만들자.





...살려줘요.

댓글 1개:

  1. 보니 그 포스터는 오늘까지도 그대로 붙어 있었다. 익일 자진철거는 개뿔... 설마 날짜가 안 적혀있다는 점을 이용해서 매일 뗐다가 다시 붙이고 뭐 그러고 있는 건 아니겠지...-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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