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17일 토요일

'정부가 외면한 미국 쇠고기'라는 뻘드립

최근에, 몇 군데 정부청사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하나도 안 먹었다던가, 어디어디 전경들에게 미국산 쇠고기를 먹였다던가 하는 얘기들로 시끄러운 모양이다.

정부 ‘미국산 쇠고기’ 전경들만 먹였다 (경향신문)

어디어디 정부청사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하나도 안 먹었다던가, 어디 전경들은 미국산 쇠고기를 먹었다던가 하는 것들이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 혹은 위험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부터 일단 짚고 가자. 쇠고기의 안전성은(미국산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 것이든) OIE 등급이라던가, 동물사료 관련 조치의 수준, 위험부위의 제거, 월령 제한, 해당국가의 광우병 발생 빈도 등을 고려해서 판단할 문제다. 당연한 것 같은데 의외로 헷갈리는 사람들이 많은 듯...

구내식당이나 급식소가 딸린 기관/시설에서 그걸 직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거의 대부분이 업체에 위탁해서 해당 시설을 관리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정부청사들도 그런 것 같다.

(전략) 8개월간 중앙청사 2161.2㎏, 과천청사 3325.5㎏, 대전청사2265.5㎏, 제주청사 474.6㎏ 춘천청사 8㎏ 등 5개 정부 청사 구내식당에는 호주산 쇠고기만 공급됐다. 지난해 7월부터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본격 재개된 뒤 정부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시중에서는 본격적으로 유통됐지만, 정작 공무원 급식에는 한번도 공급되지 않은 셈.

 

이들 청사 대부분은 구내식당을 외부 업체에 위탁하고 있다. 중앙청사와 과천청사 구내식당을 담당하고 있는 위탁급식업체 E사의 업소 관리 담당자는 "우리가 쇠고기를 공급받는 거래처가 축협인데, 축협에서 미국산을 취급하지 않고 호주산만 쓰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자연히 호주산만 취급하게 된 것 같다"고 미국산 쇠고기를 쓰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후략, 강조는 인용자)



급식서비스를 맡기는 쪽에서 위탁업체에 어느 정도까지 요구할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다만, 기껏해야 식사의 가격대 정도, 잘 해 봐야 메뉴 구성에 몇 마디 할 수 있는 정도겠지. 업체가 서비스를 한두 군데에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면야 분명 대량거래를 통한 비용절감 혹은 안정적인 공급 등의 이유로 식재료의 공급원과 경로 등은 정해져 있을 거다. 수많은 고객들 중 하나가 원한다고 해서(설사 그게 정부청사라고 해도) 재료 공급라인을 늘리거나 혹은 바꾸는 게 쉬울까? 아니 가능하기나 할까? 혹시 가능하다고 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느 기업이 그걸 하려고 할까?

더군다나 다른 재료도 아니고, 무려 '미국산 쇠고기'다. 실제 위험한 정도와 관계없이 그 많은 사람들이 위험하다 위험하다 주문을 외워대는 바람에 웬만한 사람은 그냥 찝찝해서라도 안 먹고 말지 하는 바로 그것. 근데 그걸 단 하나의 고객을 위해서 새로 수입해서 공급하라고?

 (전략) 급기야 한 국회의원이 정부 청사 구내식당에 미국산 쇠고기를 등장시키는 건 어떠냐는 제안에 정장관은 단비라도 만난 듯 선뜻 좋은 아이디어라고 화답했다.

그러나 정작 과천정부종합청사와 정부중앙청사에 위탁급식을 맡고 있는 풀무원계열의 위탁급식업체 ECMD(이씨엠디) 관계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급식업체로서 브랜드 이미지 관리가 가장 중요한 데 미국산 쇠고기를 식재료로 사용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설사 고객사가 미국산 쇠고기 사용을 요청한다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는 게 기본 원칙이라고 했다. (후략, 강조는 인용자)


[기자수첩]농식품부장관의 애처로운 답변 (머니투데이)

당시 2MB나 정운천 장관이 너무나도 억울한 나머지, '그렇게라도 해서 안전성을 입증하겠어!'라며 정말 강력하게 밀어부쳤다면 어떻게 됐을까. 물론 대부분의 급식업체에게 퇴짜를 맞았겠지만 어찌어찌해서 결국 급식업체 하나를 잡아서 미국산 쇠고기를 들여오기 시작했겠지.

...그리고 몇 개월 후 그 업체는 정의의 네티즌들에게 미국산 쇠고기 들여오는 악덕업체로 찍히게 되고, 그 업체에 대한 불매운동이 일어난다... 뭐 대충 이런 식으로 흘러갔겠지.

그래도 뭐, 이명박의 의지가 정운천보다는 조금 더 강했던 것 같다. 아니면 이명박이 청와대에 미국산 쇠고기를 들여 오기 위해 컨트롤해야 했던 사람 및 기타 일들이 정운천보다 적었거나. 어쨌든 최소한 청와대에서는 미국산 쇠고기를 먹었다는 거다.

(전략) 청와대는 2일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지난 상반기 구내식당에서 소비된 쇠고기 3천 81kg 가운데 원산지별로 가장 많이 소비된 쇠고기는 1천614kg을 차지한 '호주산'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산은 1천156kg으로 국산 소비량인 311㎏의 3.72배에 달했다. 지난해 하반기 역시 호주산, 미국산, 국산의 순서를 보였다.(후략)


청와대 "미국산 쇠고기, 한우보다 3.7배 더 먹는다" (노컷뉴스)

 
문제는, 미국산 쇠고기를 먹을 필요가 전혀 없었다는 거다. 아니, (아마도)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청사라면 미국산 쇠고기를 먹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왜냐면 미국산이 호주산보다 비싸거든. (물론 한우는 훨씬 더 비싸다) 이건 몇 군데 수입업체 홈페이지만 둘러봐도 보이는 거다.
http://www.bestwoo.kr/shop/goods/goods_list.php?category=007
http://www.beef.co.kr/2006/bbs/board.php?bo_table=notice

물론 수많은 회사가 쇠고기를 다룰 테고, 개중에는 미국산을 호주산보다 싸게 들여오는 데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최소한 미국산이 호주산에 비해 가격면에서 그리 큰 강점이 없다는 거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청사에서 요구한다고 미국산 쇠고기를 들여 올 용가리 통뼈 수입업자가 있을까? 작년 여름의 촛불시위를 보고도?

이쯤 하면 대충 예상되는 게, '싸고 질좋은 쇠고기' 드립. 그러니까, 이명박이 지 입으로 분명 ★싸고★ 질좋은 쇠고기라 했는데 왜 안 싸냐는 거지. 이쯤 되면 정말 이것들이 농담따먹기를 하자는 건가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텐데, 뭔가 우기다가 잘 안되면 '싸고 질좋은 쇠고기라고 했는데 왜 비싸냐'고 드립치는 인간들이 의외로 많았다. 그럼 어떡할까? 미국산 쇠고기를 '싸게' 유지하기 위해서 고정환율제라도 할까? 아니면 국가에서 독점해서 싼 값에 공급할까?

도대체 이게 무슨 깜이라고 생각한건지 대서특필해 댄 언론들은 반성 좀 하자. 또, 이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뒷조사까지 해서 자료랍시고 공개한 민주당 모 의원은 특히 처절하게 반성 좀 하자. 도대체 미국산 쇠고기와 광우병 문제에 있어서 아예 뇌 사용하는 걸 포기한 ㅈㅂㅅ당이나 ㅁㄴ당이야 그렇다 치고, 민주당 이름 걸고 그 짓거리를 하고 있으면 도대체가 쪽팔려서 난 앞으로 어딜 찍으라는 거냐. 정말이지 내가 한나라당이라도 찍는 꼴을 봐야 이것들은 속이 시원할까?

정말이지 죽은 사람 두고 이런 말 하기 싫은데, 노통이 참 원망스럽다. 왜 쇠고기를 끝까지 끌어안고 있다가 일을 이렇게 만들어. 보면 결국 광우병 사태에서도 제대로 된 지식과 근거를 가지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었던 사람은 좌우를 막론하고 극소수였고, 피디수첩을 앞세워서 괜히 좌파들이 날뛰는 바람에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에 대한 의견은 과학적인 근거보다도 개개인의 정치성향에 의해서 갈렸다. 피차 잘 모르기는 똑같은 상황(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게 아니라, 미국산 쇠고기가 왜 안전한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얘기다)에서 줄 잘못 선 한쪽만 완전 병신된 상황이고, 더 최악인 건 아직까지도 지들이 잘못 찍은 줄 모르고 점점 안드로메다를 향해 가고 있다는 것,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목소리는 그들이 제일 크다는 거다.

...그러니까 애초에 노통이 쇠고기까지 깔끔하게 열고 갔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 아냐. 물론 작년의 촛불시위를 주도했던 세력이 주축이 되어 선동을 시도했겠지만 그 타겟이 이명박과 한나라당이었을 때보다는 그 선동의 파괴력과 전염력이 훨씬 떨어지지 않았을까? 게다가 임기말에 열어놓고 퇴임해버렸다면 (정치적인 이유로) 이명박 정권에서 쇠고기로 노무현을 까고 있었을 사람은 우리가 겪었던 것보다 적었을 테고. 어차피 허황된 상상인 걸 아니까 좀 더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자면, 노무현이 쇠고기를 풀어놓고 낙향했다면 지금 좌빨이니 촛불좀비니 하며 낄낄대고 있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오히려 촛불을 들고 난리치고 있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제발, 광우병 떡밥은 이제 유통기한이 지나도 한참 지났단 말이다. 그래 가지고 언제 집권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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