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5일 월요일

천안함 침몰과 관련된 소동을 보며

지금까지 나온 정보들을 가지고 천안함 침몰의 원인에 대해 뭔가 그림을 그려낼 재주는 없다. 다만 그 원인에 대한 '평범한 네티즌'들의 갑론을박과 수많은 음모론들이 횡행하는 걸 보면서 한 가지 드는 생각은,

...예를 들어 진화는 지질학, 고생물학, 식물학, 동물학, 파충류학, 곤충학, 생물지리학, 해부학, 생리학, 비교해부학 따위에서 나온 증거가 하나로 수렴되면서 증명된 현상이다. 이 다양한 분야에서 나온 증거를 하나만 떼어 내서는 '진화'가 있다고 말할 수 없다. 화석 하나는 스냅 사진과 같다. 그러나 어느 지층에서 나온 화석 하나를 같은 종의 화석과 다른 종의 화석들과 함께 연구하고, 다른 층에서 나온 종들과 비교하고, 현대의 유기체들과 대조하고, 다른 장소에서 발견된 종들, 과거와 현재의 종들과 병치시켜 연구하면, 처음에는 스냅 사진에 불과했던 것이 일종의 활동 사진으로 바뀌게 된다. 각 분야에서 모은 증거들이 한데 모여 결국 하나의 웅대한 결론 -진화- 으로 도약하는 것이다. 홀로코스트를 증명하는 과정도 전혀 다르지 않다. 홀로코스트의 경우 수렴되는 증거는 다음과 같다.

-마이클 셔머.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바다출판사. p396.

...부정론자들은 그 과정에 총 4분이 걸렸다는 브로트의 얘기가 다른 사람들의 진술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이를테면 수용소장 회스는 20분쯤 걸린 것 같았다고 주장한다. 그런 불일치 때문에 부정론자들은 그 이야기를 완전히 무시한다. 열 몇 개의 보고서마다 독가스로 죽기까지 걸린 시간이 다르다는 이유로, 부정론자들은 독가스로 처형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믿어 버리는 것이다. 이게 말이 될까? 당연히 말이 안 된다. 독가스 처형 과정은 주변의 여러 변수에 따라 걸리는 시간이 다르다. 이를테면 기온(시안화수소산 가스가 고체 상태의 환에서 기화하는 속도는 기온에 따라 다르다), 방 안에 들어간 사람 수, 방의 크기, 방으로 부어 넣은 치클론 B의 양에 따라 차이가 난다. 관찰자마다 시간을 다르게 지각한다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만일 그들이 말하는 시간이 모두 정확히 똑같았다면, 우리는 그들 모두 어떤 단일 진술을 듣고 자기들 이야기로 지어냈다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경우에는 불일치가 바로 증거의 신빙성을 뒷받침한다.

-마이클 셔머.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바다출판사. p427-8.

제발, 제발 조금만 기다리자. 배가 인양되고 자세한 조사가 가능해지면 지금까지 찾지 못했던 퍼즐 조각들이 하나씩 튀어나올 것이고, 그걸 맞춰보면 지금까지 나왔던 엇갈리는 진술들과 수많은 의혹들 중에 뭐가 맞고 뭐가 틀리는지 알 수 있게 되겠지. 그리고 잘못된 추측들에 대해서는 어디서 무엇 때문에 그런 추측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향했는지까지도. 

...그런 의미에서,

軍 "천안함 인양후 절단면 공개계획 없다"

으아악. 아주 불에 기름을 붓는구나. 하기사 이러나저러나 음모론의 불길을 잡기는 이제 역부족일 것 같긴 하지만, 이쯤 되면 아예 대놓고 '모두 창의력을 한껏 발휘해서 환타지소설을 써봐요' 라는 거잖아. 어쩌라고...orz

사고 후 초기에 여론에 휘둘리던 일이나, 초기 구조 과정에서 손발이 안 맞았던 것들은 어떻게 잘 봐줘서 대응체계가 미숙해서 그랬나 보다 하고 넘어가 줄 수도 있겠는데, 이쯤 되면 이건 정말이지 멍청한 거다. 이렇게 멍청할 수가 없다. 답답하다. 그래도, 음모론이 그 중에서 제일 나쁘다.



댓글 2개:

  1. 기사제목이 제대로 기억이 안 나는데, 미국 네티즌들은 911때 생존자들이 있을거라고 믿어주었다. 그런데 우리 네티즌들은 뭔가. 음모론이나 세우고.... 라는 뉘앙스의 글이 있더군요. 그걸 보면서 처음 든 생각은, 넌 물속에서 일주일 살아있을 수 있냐!! 였고 그 다음으로 든 생각은, 최소한 추론할만한 진실이라도 공개해야 음모가 안 될 거 아냐! 였습니다. 참말로 답답한 정부, 덩달아 덜떨어진 언론이죠....

    초면에 말이 많았나요? 부두인형에서 환골탈태한 스텔라라고 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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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LaStella17 - 2010/04/06 12:38
    최근 나오는 얘기들(환풍기라던가...)을 보면, 사고가 나자마자 달려가서 구조작업을 했더라도 안타깝지만 실종자들을 구할 수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에요.

    그나저나 수색작업 완료 후, 정부나 군의 공식입장이 발표되고 나서 그걸 가지고 옳고 그름을 다퉈도 늦지 않을 것 같은데, 정보가 부족한 것보다도 그걸 해석하겠다는 사람들의 비뚤어진 가치관이 더 문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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