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15일 수요일

신종플루 검사 체험기

어제 오후부터 열이 나면서 머리랑 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간간이 기침도 나고...

흔한 감기증상이니 웬만하면 해열제랑 진통제 대충 사 먹고 끝냈겠지만, 어제가 미국에서 돌아온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는 게 마음에 걸려 저녁때 동네 병원에 갔다. 뭐... 이틀 전에 미국에서 돌아와서 혹시나 해서 왔다고 얘기했지만 동네의 조그만 병원에서 특별히 해 줄 수 있는 건 없었고, 어쨌든 아프니까 그냥 감기약 처방해주고 걱정되면 가까운 보건소에 가보라는 얘기만 들었다.

 

사실 미국에서 두 달 동안 있었는데 그 동안은 멀쩡했고, 돌아오는 인천공항에서의 검역도 무사통과했는데 뜬금없이 이틀 지나서야 증상이 나타나서 신종인플루엔자 같은 거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침에 보건소에 가 봤다.

 

'난 병자니까!'라고 생각하면서 모처럼 대중교통 대신 택시를 탔는데, 택시기사님이 거기가 어딘지 모른다는 매우 사소한 문제가 발생했다. 무려 승차거부(...는 아니고. 탔다가 내렸으니까-_-;;; )도 한 번 당했다. 두 번째 기사님도 잘 몰라서 네비게이션 찍고 갔다...-_-;;

 

보건소 앞에 가니 신종플루때문에 온 사람은 들어오지 말고 옆에 있는 직원호출벨을 누르라고 돼 있었다. 좀 서러웠다(뭐 그게 잘못됐다는 건 아니지만). 누르고 좀 기다렸더니 직원 한분이 나와 옆에 있는 차량으로 안내받아 몇 가지 설문과 체온검사를 했다. 신종플루의 임상적 진단기준 중 하나가 체온 37.8℃라는데(관련기사), 재 보니까 37.5, 37.3, 37.6이 나와 어제 갔던 동네병원의 선생님이나 오늘 갔던 보건소의 직원분 모두 고민이 많은 눈치였다-_-;

(사실, 보건소에 가봐야겠다고 마음먹고는 혹시나 정확한 진단을 방해할까봐 어제 병원에서 처방받은 감기약을 먹지도 않고 밤새 그냥 앓으면서, 나 좀 착한 환자인듯ㅎㅎ 하고 생각하고는 살짝 뿌듯했는데, 12시간 내 해열제나 감기약 먹은 경우는 그냥 발열로 간주되는 모양이다. 괜히 약 안 먹고 애매한 체온을 띄워서 보건소 분들에게 쓸데없는 고민을 안겨준 것 같다. 그보다 끙끙 앓느라 아무것도 못하고 허비한 내 시간은...ㅜㅜ)

 

아무튼, 좀 미심쩍지만 두달간의 미국체류사실이 워낙 강력했던지, '의심사례'로 분류돼 버렸다. 그리고는 검체를 채취해야 된다고 뭔가 통을 들고 왔는데, 얼핏 보기에 피뽑는 통같이 생겨서 살짝 긴장하면서 팔을 걷었는데, 그냥 면봉으로 목구멍 안쪽을 쓱쓱 긁더니 그 통 안에 집어넣는 거였다. 이래서 어설프게 알면 고생하고, 괜히 넘겨짚으면 쪽팔리는 거다. 에이...

 

검사결과는 이틀 후에 알려 준다고 하는데, 무려 전염병예방법 29조 4항 규정에 의거하여 자택에서 격리해야 된단다. 무려 7일간... 신종플루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검사결과가 나올 이틀 후까지는 집에 있어야만 될 것 같다. 같이 미국 갔다온 사람들은 다 멀쩡해서 좀 눈치보이는데-_-;; 약 먹고 좀 괜찮아지면 나가면 안될까;;; 이공계 대학원생은 3일씩이나 집에서 쉴 여유 따위 없단 말이다ㅜㅜ

귀하의 격리 및 건강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보건소 담당자가 매일 전화로 확인하고 있으며, 연락이 되지 않은 경우는 전염병예방법 제29조 제3항의 규정에 의거, 수용시설에 강제격리될 수 있으며, 위반시에는 처벌받을 수 있으므로 연락을 항시 유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무서운데. 정말 전화 올까? -_-;;

 

 

 

p.s.1. 그나저나 그 귀하다는 타미플루를 받아왔다. 무려 공짜로...

p.s.2. 신종플루에 대해서 예전에 대충 찾아보곤 나 갔다온데는 괜찮은 덴줄 알았는데, 미국 CDC의 최근(7월 10일자) 자료를 보니 아니었나 보다. 메릴랜드(686/2)(확진+의심환자수/사망자수). DC(45/0). 중간에 잠깐 머물렀던 펜실베니아(1794/6)랑 매사추세츠(1328/4)를 보면... (자료출처)

p.s.3.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인데, 이거 냉방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여름의 실험실은 너무 춥다-_-;;;;

댓글 1개:

  1. 결국 신종플루 아니라고 연락이 왔다. 그럼 난 그냥 단순감기에 무려 타미플루씩이나 먹고 있었던 건가... 근데 그럼 그 귀한 타미플루를 무려 3일치나 먹었는데 아직도 떨어지지 않고 있는 이놈의 정체는 도대체 뭐냐. 내 면역체계가 바보가 된 건가, 아니면 애초에 바이러스 감염이 아니었단 말인가. (항생제! 항생제를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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