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꾼은 일을 나갔다 오면 저절로 차려져 있는 밥상의 비밀을 풀기 위해 몰래 숨어서 관찰을 했고, 그 결과.
"애당초 이 댁에 몸을 의탁하기로 작정하고 왔으니 때가 되면 무엇을 망설이겠습니까? 그렇지만 천상에서 죄를 짓고 내려온 몸이라 아직 때가 되지 않았으니 며칠만 기다려 주십시오. 때가 차지 않고 같이 살게 되면 반드시 슬픈 이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총각은 한사코 색시를 잡고 놓아 주지를 않았다. 못 보았다면 모를까, 이왕에 모습을 본 다음에야 이 고운 색시를 농 안에 들여보내고는 한시도 못 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치맛자락을 틀어쥐고 놓아 주지를 않으니 어떻게 할 수 없어 색시는 그 날부터 총각하고 같이 살기로 했다.
그러나 총각은 한사코 색시를 잡고 놓아 주지를 않았다. 못 보았다면 모를까, 이왕에 모습을 본 다음에야 이 고운 색시를 농 안에 들여보내고는 한시도 못 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치맛자락을 틀어쥐고 놓아 주지를 않으니 어떻게 할 수 없어 색시는 그 날부터 총각하고 같이 살기로 했다.
몰래 밥을 차리고 다시 우렁이로 변하던 각시의 생활 패턴이, 그리고 그 둘의 운명이 '변했다'.
관찰하는 행위가 관찰 대상을 변화시킨다는 양자역학의 핵심 개념이 이 동화 속에 녹아 있는 거다. 그러니까 우리 조상들은 이미 그 옛날부터 양자역학을 관념적으로 이해하고 있었기는 개뿔, 여기까지 진지하게 읽었다면 낚인 것임.
음...양자역학이 아니라 불교철학의 내용이네요.
답글삭제뭐 물론 이 둘이 비슷하기는 하지만요..
@goldenbug - 2010/03/28 10:04
답글삭제네. 고등학교 졸업한 후에는 물리를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는 관계로 잘 모릅니다^^;;
아무튼, 낚이셨습니다! :D